‘카르텔’ 지목당한 LH의 ‘반카르텔 선언’...이번엔 성공할까?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 배경에 ‘전관(前官) 특혜’ 의혹이 나오면서, LH가 이를 차단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이한준 LH 사장은 2일 ‘LH 카르텔(유착관계) 근절을 위한 긴급회의’에서 “이번에 건설안전을 제대로 확립 못 하고 LH 건설공사 전 과정에서 전관 특혜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면 'LH의 미래는 없다'는 각오로 고강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우선 LH는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를 설치하기로 했다. 설계·심사·계약·시공·자재·감리 등 건설공사 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관예우, 이권개입, 담합, 부정·부패 행위 등을 근절하는 역할을 맡는다.
건설 카르텔과 연루된 부실시공업체는 바로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모든 단계에서 전관이 개입할 수 있는 업무의 전면적인 개편도 추진한다. 이 사장은 “시공사, 설계사, 감리사 등의 LH 전관을 모두 사업제안서에 기록해 제출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전관이 없는 업체에게 가점을 주는 방안도 검토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철근 누락’이 확인된 15개 단지의 설계업체 중 13곳, 감리업체 중 8곳이 LH 퇴직자가 재취업해 전관 특혜가 의심되는 회사다. 이한준 사장은 “설계권, 감리권을 따내려고 심사위원들에게 로비하는 사례가 아직도 많다고 들었다”며 “입찰담합, 전관예우 등의 문제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LH는 지난달 31일 발표된 무량판 구조 철근 누락 15개 아파트 단지의 설계, 시공, 감리 관련 업체와 관련자를 무량판 구조 설계오류와 시공누락에 따른 부실시공을 문제 삼아 오는 4일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또 전관업체 간 담합 의혹에 대해선 정황이 의심되면 즉시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이번에 부실시공 문제가 제기된 15개 단지의 무량판 구조와 관련해선 입주민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보강공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3개 지구는 보강이 완료됐으며, 8개 지구는 이달 말 보강이 완료될 예정이다. 입주가 완료된 4개 지구는 다음 달 말까지 보강공사를 완료하기로 했다. LH는 입주민이 원하는 점검업체로 정밀안전점검을 하고, 검증된 공법으로 보강하는 한편 보강 과정에 LH가 입회해 정밀시공이 이뤄질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문제 생기면 튀어나오는 '혁신안' … 되풀이되는 LH 사태
다만 이번 대책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붙는다. 그동안 LH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혁신안’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해왔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LH는 2021년 임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한 사실이 적발되자 대대적인 조직 혁신안을 발표했다. 특히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 퇴직 후 취업제한 대상자를 대폭 늘리고, 전관업체와 5년간 수의계약을 금지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서진형 경인여대 MD비즈니스학과 교수는 “눈앞에 보이는 문제를 우선 해결하는데 급급하다 보니,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고 문제가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영철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은 “2021년 땅 투기 사태 때도 그랬지만, LH는 그동안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은 대책을 혁신안이라며 내세우고 있다”며 “내·외부에서 끊임없는 견제와 감시를 통해 LH가 스스로 자기 혁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LH라는 거대 조직이 가진 독점적 지위가 문제의 원인”이라며 “LH가 영위하는 사업에서 경쟁을 유도하는 등 독점의 부작용을 타파해 나가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H는 신도시 조성, 공공주택 건설, 주거복지 등 정부 정책사업을 독점하는 공기업으로 임직원 8885명이 일하는 거대조직이다.
LH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이날도 ‘철근 누락’이 확인된 15개 LH아파트 단지 중 3곳의 감리를 한꺼번에 맡은 한 감리회사에 LH 출신 수십 명이 근무하는 게 밝혀졌다. 특히 이 감리업체 부사장은 2015년까지 LH에서 개발 업무를 담당했으며 퇴직 후 3기 신도시 예정지의 땅도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정부는 이번에 '철근 누락'이 집중된 무량판 구조를 특수구조 건축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특수구조물은 구조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건축 기준, 절차를 강화한 건축물을 뜻한다.
인천 검단 LH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의 건설사고조사위원회도 지난달 사고 원인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특수구조 건축물에 무량판 구조를 추가해 심의 절차를 강화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LH도 무량판 구조 적용을 가급적 지양하겠다고 밝혔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하나님 맹종은 실수였을까” 테레사 사후 공개된 충격 편지 | 중앙일보
- 남친과 놀려던 비정한 日엄마…"딸에 변비약 먹여 43차례 입원" | 중앙일보
- '피로회복제'라며 직장 동료에 마약류 먹여 성폭행한 40대 구속 | 중앙일보
- "주호민 아들에 '고약하다' 발언? 교사가 받아쓰기 따라 읽은 것" | 중앙일보
- 아이에게 집안일만 가르쳤다…부족 같은 이 가족이 사는 법 | 중앙일보
- 충격의 맨손 20초…아파트 3층까지 기어올라 순식간에 훔쳐갔다 | 중앙일보
- [단독] '600억 매출' 연예인 출신 사업가, 직원 성추행 1심 유죄 | 중앙일보
- "서울 5성급 호텔서 남성 직원이 문 벌컥…나체로 눈 마주쳤다" | 중앙일보
- '1조 기부왕' 99세 이종환, 가사도우미 성추행 무혐의 결론났다 | 중앙일보
- 가지도 못한 한국 학교에 연봉 넘는 돈 떼였다…베트남인 무슨 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