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시장 허찔렸다…美 신용등급 또 강등
아시아 증시 줄줄이 하락
[한국경제TV 김종학 기자·조연 기자·서형교 기자]
<앵커> 미국이 2011년 이후 처음으로 국가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습니다.
국채 시장과 주식, 외환시장이 사태에 촉각을 세워야 했던 하루였습니다.
글로벌콘텐츠부 김종학 기자와 이슈 정리해보겠습니다.
미국 경제가 완만하게 회복하고 있다는데 신용등급은 내려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피치가 밝힌 등급하향 이유가 뭡니까?
<기자>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가 현지시간 1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상위 아래 단계인 AA+로 내렸습니다.
피치의 전문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어 있는데, 내용은 미국이 부채한도 협상의 정치적 이유로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와 부채 문제 해소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지난 5월 바이든 행정부와 공화당간의 부채한도 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학자금을 비롯한 지출을 삭감하고 시한을 6개월 유예한 걸로는 부족하다는 겁니다.
지난해 미국 정부가 안고 있는 재정적자가 GDP대비 3.7%였는데 이게 해마다 늘어 앞으로 3년간 정부가 재원을 마련하는 이자 부담을 키우고, 고령화로 인한 지출 부담까지 더해 신용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고 피치는 주장합니다.
*피치 신용등급 변경 발표 원문 ☞ https://www.fitchratings.com/research/sovereigns/fitch-downgrades-united-states-long-term-ratings-to-aa-from-aaa-outlook-stable-01-08-2023
<앵커> 미국 경제가 또 휘청일 수 있다는 진단인데, 이런 신용등급 강등 결정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비슷한 일로 2011년에도 한 차례 큰 충격이 있었는데, 시장이 우려하는 건 이 대목이죠.
<기자> 발표 시점만 놓고보면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처음 하락한 12년 전, 2011년 당시와 등급하향 이유와 상황 전개가 매우 비슷합니다.
당시 부채한도 협상이 타결에도 그해 8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역사상 처음 미국의 신용등급을 내렸는데, 이 여파로 주식과 채권시장이 10% 넘게 조정을 받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2011년과 유사한 상황인데, 오늘 피치의 발표 역시 부채한도 협상 이후 재무부의 추가적인 조치가 이어지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줄어드는 시점에 공개가 됐습니다.
이 여파로 10년물 국채금리가 일순간 8bp가량 하락하는 등 시장이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고, 개장 전 선물 지수도 나스닥 0.7%, S&P 0.5% 등 약한 흐름을 기록 중입니다.
<앵커> 미국 신용등급 강등 여파로 국내 증시도 큰 폭의 조정을 받았습니다.
오늘 시장 상황은 증권부 조연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피치의 미 신용등급 강등 발표 이후 개장한 우리 증시, 코스피는 1.90%, 코스닥은 3.18% 하락 마감 했습니다. 개장 이후 시간이 더해질수록 낙폭을 키우는 모습이었는데요.
오늘 하루 외국인이 약 4천억원 순매도했고, 기관은 9천억원 육박하는 매도 우위를 나타냈습니다. 특히 선물시장에서 외국인이 2조2천억원 가량 투매에 나섰는데, 2010년 이후 역대 최대치입니다.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약세였습니다. 일본 니케이가 2.30%, 상해종합지수 1.05%, 홍콩항셍이 2.53%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오늘 장은 예고편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전망이 일각에서 나오는데요. 일단 차익 실현의 매물이 먼저 나왔고,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이에 대한 불확실성 자체에 경계감이 뚜렷했다는 진단입니다.
그렇다면 2011년으로 돌아가 신용평가사 S&P가 미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처음 강등했을 당시 국내 증시는 어떻게 움직였을까요.
8월 초 2170선까지 올랐던 코스피 지수는 일주일간 17% 폭락하며 1800선으로 떨어졌습니다. 당시 코스피 시장에서 빠진 거래대금만 13조원이 넘었습니다.
여파는 10월까지 이어졌습니다. 코스피가 1650선 저점 이루면서 500포인트 정도가 미 신용강등 여파로 증발했고, 2000선을 회복하기까지는 약 7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2011년 한 해 한국 주식시장에서 이탈한 외국인 자금은 91억8천만달러, 11조원이 넘는 규모였습니다. 2010년 이후 코로나 팬데믹 시기 다음 2번째 규모입니다.
전문가들은 일단 증시 대내외적 상황이 2011년과 견주어 봤을때 훨씬 나은 편이어서 시장의 파장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2011년은 미 정치권 정쟁이 극한에 달했고, 이후 유로존 신용리스크가 더해지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 전체적으로 위기감이 컸는데, 지금은 미 금리 인상 사이클에도 신용리스크가 진정되는 분위기라는 겁니다.
또 국내 증시가 잘 버텨낼 수 있을지 체력을 보자면, 코스피 지수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98배로 세계 주요 증시보다 상당히 저평가된 수준입니다.
코스피가 급락했던 2011년(1.11배), 2012년(1.08배)과 비교해도 현재 밸류에이션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보니 추가적인 하락이 크지 않을 것이란 거죠.
실제로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사태때도 국내증시는 큰 영향받지 않고 오름세를 나타냈으니까요.
다만 2차전지로 업종 쏠림이 뚜렷하고 변동성이 커진 코스닥 시장의 경우 단기적인 조정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 미국 신용등급 강등은 악재가 분명한 만큼, 얼마나 그 파장이 이어질지 대비가 필요해보입니다.
정부도 필요하다면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뜨거웠던 증시가 예상치 못했던 변수를 만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앵커> 다시 분석 이어가겠습니다.
이런 충격들이 있다보니까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 정부 입장에선 가만히 있을 입장이 아닐 겁니다.
백악관이 곧바로 강력한 반박 성명이 나왔죠?
<기자> 백악관은 물론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피치의 강등 조치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에서 피치가 적용한 평가 모델이 트럼프 행정부 때 하락했다가 바이든 정부들어 상승한 걸 간과했다고 지적합니다.
재닛 옐런 장관은 한술 더 떠서 '자의적'이고 '이미 지난 데이터를 토대로 했다'며 깎아내렸습니다.
미국 국채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유동자산이고, 인플레이션을 극복하며 강력한 회복을 보이고 있는 경제 상황을 피치가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반박 성명 원문 ☞ https://home.treasury.gov/news/press-releases/jy1665
<앵커> 미국 민주당은 부채한도를 빌미로 협상하자던 공화당탓을 하고 있기도 하죠. 이런 걸 떠나서 경제 석학들까지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 중인데 어떤 입장들인 겁니까?
<기자> 전 미국 재무장관인 래리 서머스, 경제 석학인 폴 크루그먼,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고문 등은 일제히 피치의 판단이 틀렸다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래리 서머스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미국 경제가 장기적 부채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최근의 경제 상황을 감안하지 못한 것 같다"면서 "기이하고 무능한 결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폴 크루그먼도 지난해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올려둔 것이 피치 아니냐, 국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신평사의 허점을 노출한 것이라면서 굉장히 서투른 결정이라고 조롱하고 있기도 합니다.
피치는 지난해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 그리고 올해 부채한도 협상당시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바꿨는데 마땅한 예고도 없이 등급을 내렸다는 겁니다.
<앵커> 시장이 간밤 충격을 소화하는 과정에 있습니다만, 채권 시장에서 이런 충격이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는 진단도 있던데 이건 무슨 얘기입니까?
<기자> 전세계 중앙은행들의 금고 역할을 하는 곳이 미국 중앙은행. 그중에서도 미국 국채가 대표적이죠.
시장이 위기 상황에 놓일 때를 대비한 투자 수단으로 미 국채 수요 줄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과거 2011년 당시에도 신용등급 강등 충격이 가라앉은 이후 투자자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피난처로 미국 국채를 사들이면서 연말 강세로 마감한 전례가 있습니다.
전문가 설명을 참고하자면 "액면 그대로 보면 미국의 명성과 위상에 먹칠을 한 것이지만, 반대로 시장의 불안과 위험 회피 성향을 촉진했다", "미국 국채와 달러매수를 자극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와 있습니다. (데이비드 크로이 / 호주·뉴질랜드 뱅킹그룹 수석전략가)
이 말처럼 현재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오후 4시 기준 2.8bp 내린 4.019%, 30년물은 0.8bp 하락한 4.095%로 큰 변화없이 거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 재무부가 적자를 충당하기 위해 이날 추가적인 장기 국채를 발행할 예정이어서 시장에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앵커>
정부와 금융당국도 오늘 긴급 회의를 열고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점검했습니다.
채권이나 달러 같은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질 것으로 내다봤는데, 그 영향은 과거에 비해 적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일각에선 우리나라도 가계부채나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방치할 경우 신용등급 강등을 피하지 못할 것이란 지적도 제기됩니다.
서형교 기자입니다.
<기자> 미국 신용등급 강등 소식에 경제 관련 부처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오늘 오전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 관계기관은 긴급 회의를 열고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점검했습니다.
방기선 기재부 차관은 “2011년 신용등급 강등 때보다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면서 시장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2011년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내렸던 당시, 안전자산인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원·달러 환율은 요동친 바 있습니다.
또 주식에서 채권으로 매수세가 옮겨가면서 미국 국채 금리와 우리나라 국고채 금리는 하락했습니다.
다만 S&P가 갑작스럽게 신용등급을 조정했던 것과 달리, 피치는 지난 5월 미국을 ‘부정적 관찰 대상’에 올리고 강등 가능성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진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 분석입니다.
[정부 관계자: (2011년에) ‘불확실성이 커졌다, 안전자산으로 가자’ 그러면서 국채랑 달러에 몰렸던 것 같더라고요. 지금도 그럴 공산은 있어요. 근데 변동폭이 그때처럼 크지는 않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고…]
한편 세계 1위 경제대국인 미국의 신용등급이 내려가면서 우리나라 등급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 S&P와 무디스는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상위 세 번째, 피치는 상위 네 번째 등급으로 매기고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대체로 안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가계부채나 저출산·고령화 등을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우리나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세계 주요국 중 3위 수준.
미국은 재정적자 심화로 정부부채가 증가하면서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했는데, 우리나라 역시 가계부채 문제를 방치할 경우 신용등급 강등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황세운 /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는 것이 가장 문제점이라고 봐야 하고요.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외 가서 외화자금 조달을 많이 하는데 여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국경제TV 서형교입니다.
김종학 기자·조연 기자·서형교 기자 jhkim@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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