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혜수·염정아의 바닷속 활극…내가 당장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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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밀수'는 박정희 정권이 5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망국적 사치와 허영심을 조장시키며, 국가 경제를 파탄시키는 가장 악질적인 범죄행위"(국가기록원 영상 중 발췌)로 단속한 중범죄였다.
그리고 '밀수'는 여성 투톱 영화라기보다는 두 명의 여성 캐릭터가 극을 이끌긴 하지만 엄진숙(염정아)을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이 변화하는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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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디슈' 이후 2년 만에 '밀수'로 복귀
바닷속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액션 선보여
1970년대 ‘밀수’는 박정희 정권이 5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망국적 사치와 허영심을 조장시키며, 국가 경제를 파탄시키는 가장 악질적인 범죄행위”(국가기록원 영상 중 발췌)로 단속한 중범죄였다. 경제는 고도성장을 거듭한 반면 물자는 턱없이 부족한 시대, 밀수는 그 빈틈을 채우는 가장 효율적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 잡지 ‘미스테리아’에서 본 부산 근거 여성 밀수단 이야기와 영화사 동료가 군산 로케이션 헌팅 중 지역 박물관에서 본 밀수에 가담한 해녀들의 사료 기록에서 영화 ‘밀수’의 초안을 떠올렸다는 류승완 감독은 “내가 본 적 없는 바닷속 해녀들의 활극,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드릴 수 있겠다 싶어 직접 연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류 감독과의 일문일답.
-영화는 과거 ‘짝패’에 이어 가상 도시인 군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가상의 도시로 설정 영화 배경을 설정한 것은 장르의 세계란 의미다. 현실에 묶이지 않고 마음껏 익스트림하게 이야기를 펼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유년 시절부터 매혹된 영화들, 또 197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기억, 화려했던 음악과 패션 등등 단순한 기억을 복원하거나 재현하는 데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래서 더 편한 마음으로 재미있게 작업에 임했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룰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밀수’였나.
▲사회는 계속 무언가를 금지하고 또 강요하고, 개인은 이를 벗어나려 하고.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길에서 미니스커트 길이를 자로 재고, 장발 단속한다고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부모님 옛날 사진 속 넓은 카라에 나팔바지,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까지 1970년대의 패션과 음악, 내 어린 시절의 안락하고 편안한 느낌이 떠올라서 좋다.
또, 당시의 밀수는 지금의 밀수와 완전히 다르다. 1970년대엔 다방에 가면 007 가방에서 양담배, 해외잡지, 라이방 선글라스 이런걸 꺼냈고, 남대문 시장에는 ‘탱’이란 주스가루, 중국에서 들여온 청심환 등이 몰래 거래됐다. 생활 속에 익숙한 물건들이었지만 범죄였던 셈이다. 지금은 마약이나 금괴 등 센 것들이 밀수품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먹고살기 위한 방법으로 ‘이정도야’하면서 밀수를 큰 범죄로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게 선을 조금 넘고, 더 넘으면서 욕망이 인간을 위험한 쪽으로 몰아가는 과정 또한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여성 투톱 영화인데, 부담은 없었는지.
▲나는 21년 전에 이미 ‘피도 눈물도 없이’(전도연, 이혜영 주연)라는 멋진 영화를 만들지 않았나. 흥행은 완전히 실패했지만.(웃음) 전작인 ‘모가디슈’도 아프리카에 간 민간인이 고립된 이야기가 무슨 흥행 요소가 있었겠나. 물론 흥행도 중요하지만, 감독으로서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반응이 내겐 더 중요하다. 당대에 흥행하지 못해도 좋은 작품은 언젠가는 반드시 그에 맞는 평가를 받는다고 믿고 스스로 확인이 들면 실행한다.
그리고 ‘밀수’는 여성 투톱 영화라기보다는 두 명의 여성 캐릭터가 극을 이끌긴 하지만 엄진숙(염정아)을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이 변화하는 서사다. 해녀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여성이 주요 배역이었고, 이를 이끄는 두 친구에는 본능적으로 김혜수와 염정아를 떠올렸다. 이 두 사람이 나온다면 나라도 당장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리고 내가 생각보다 모험적인 사람이 아니다.
- 본 적 없는 해녀들의 수중 액션은 판타지에 가깝게 연출됐는데, 어떤 고충이 있었나.
▲물에만 들어간다면 뭔가 새롭고 재미있는 게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전작들에서 칼싸움, 총싸움, 주먹싸움 다 해봤는데 지상에서의 싸움에는 중력이 주는 한계가 명확하다. 수중 액션이 흥미로운 건 중력의 영향을 덜 받는 점이다. 대신 물의 저항이 강하기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는데, 일부러 멋있어 보이려 슬로우 모션 효과를 주기도 하는데 괜찮겠다 싶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물속에서 남성과 여성이 육체적 대결을 펼치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숨을 못 쉬는 제약 또한 속도감 있는 액션 대신의 서스펜스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에 익숙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유리하니까. 무술감독과 싱크로나이즈드 팀을 이끄는 김희진 코치의 도움을 받아 조춘자(김혜수)가 뒤로 공중제비를 도는 동작과 같은 비범한 동선을 구현할 수 있었다.
- 극 중에서 권 상사(조인성)는 조춘자(김혜수)와 어떤 관계가 없음에도 그를 지켜주는데.
▲지금은 사라져가는 태도이자 가치인 ‘기사도’를 표현하고 싶었다. 요즘엔 남성이 여성을 보호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그땐 그런 낭만이 있었다.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오히려 둘 사이의 로맨스를 배제했을 수도 있다. 권상사는 동료이자 동지로서 이 사람이 내 편인데, 내가 좀 더 세니까 뒤로 숨게 하고 자신이 앞에 나서서 싸우는 전형적인 옛날 사람이다. 그 속에서 로맨스보다 훨씬 큰 가치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영화 마지막 춘자가 권 상사를 다시 찾아와서도 사랑 아닌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나. 그리고 내 의도 이상으로 배우들이 그 매력을 십분, 백분 끌어냈기에 그 감정이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장기하의 선곡은 매력적이지만, 전작 대비 과잉이고 넘친다는 평가도 있다.
▲일부러 의도한 거다. 나는 과거 이렇게 과잉된 영화들을 좋아했는데, 마틴 스코세이지의 ‘카지노’나 ‘비열한 거리’를 보면 음악이 계속 흐르면서 정서가 증폭되지 않나. 나는 ‘밀수’가 매끄러운 영화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넘쳐흐르더라도 개성이 강한 영화이길 바랐다. 매끄럽고 무난한 영화보다는 거칠고 기울어있더라도 개성 넘치는 영화가 나는 더 좋고, 관객들도 이 영화를 그렇게 기억해줬으면 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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