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처형에 아들과는 생이별, 슬픈 사연 담긴 이 곳

문운주 2023. 8. 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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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11코스 ②] 올레길에서 만난 정난주의 인생 이야기

[문운주 기자]

▲ 산방산 산방산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산. 높이는 해발 395m이며, 남쪽 해발 150m 쯤에 해식동굴이 있어서 산방산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함. 명승으로 지정됨
ⓒ 문운주
 
옛날 어떤 사냥꾼이 한라산에 사슴을 잡으러 갔다. 마침 사슴을 한 마리 발견하여 활을 치켜들고 쫓았는데, 사슴을 쏘려고 하다가 잘못하여 활끝으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드리고 말았다. 한라산이 높은데다가 활을 높이 들어 쏘려 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옥황상제는 화가 나서 한라산의 봉우리를 뽑아서 서쪽으로 던졌는데, 그것이 지금의 산방산이다. 봉우리를 뽑아버린 자국은 움푹 패어져 백록담이 이루어졌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백록담의 분화구와 산방산의 크기가 같다'는 가이드 말은 자신감이 넘쳤다. 오래전 여행사를 통해 제주 여행을 할 때였다. 가이드말에 우리들은 고개를 덩달아 끄덕였다. 제주도 방언과 해녀, 돌, 바람 이야기까지, 지금으로 말하면 '스토리텔링'이다. 산방산을 한라산과 엮어 놓으니 그럴듯하게 들렸다. 어렸을 때 이웃집 아저씨가 들려주던 옛이야기처럼. 지난달 25일 다녀온 올레길 이야기다(관련 기사: 제주도를 걸어서 여행하면 보이는 것들).

올레길 11코스 트레킹, 모슬봉을 내려오면서부터 좌표가 바뀐다. 줄곳 내 눈을 떠나지 않던 형제섬과 가파도, 마라도는 사라지고 산방산이다. 모슬포항에서는 거대한 종 모양으로 보이더니, 뒤에서 보니 머리 쪽은 두툼하고 꼬리 쪽은 얇다. 돔처럼 보인다.

밭길을 따라 걸으니 고향에 온 기분이다. 산소에 들려 성묘를 하고 산을 내려올 때 느끼는 고즈넉한 마을풍경이랄까. 대부분 마늘 농사를 짓지만 수확이 끝난 뒤라 빈 땅이거나 잡풀만 무성하다. 발길이 멈추는 곳은 천주교 대성성지 정난주 마리아 묘다. 돌담이 쌓여 있고 야자수가 식재되어 있다.
 
▲ 천주교 대성성지 정약용의 조카딸 정난주의 묘가 있는 곳이다
ⓒ 문운주
 
▲ 천주교 대성 성지 정난주 마리아 묘역이 있다
ⓒ 문운주
1801년 신유박해로 남편 황사영은 처형되었다. 가산은 몰수당하고 그의 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에, 아들 경한은 추자도에 남겨졌다. 정약전은 흑산도,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되고 정약종도 처형된다. 기막힌 한 집안의 이야기다. 

제주도에서 관노로 전락했지만 이들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교화에 힘썼다. 정난주는 이곳 대정에서 노비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서울할머니'라 불리며 이웃들의 칭송을 받으며 살다가 1838년 음력 2월 1일 병환으로 사망했다.

아들이 죽임을 당할까 봐, 노비가 될까 봐 제주 섬 하추자도에 내려놓았던 그 심정은 어땠을까. 남편은 능지처참, 아들과는 생이별, 자신은 노비가 되어 살아남아야 했던 이유는 그가 어머니였기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마음이 숙연해졌다.

오후 2시, 이곳에서 신평사거리까지는 2km 거리다. 신평리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기로 했다. 조용한 마을 깊은 곳에 식당이 있다. 콩물 국수를 주문했다. 뼛속까지 시원하다. 올레길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신평·무릉 곶자왈로 향했다. 

친구와 함께 걸은 곶자왈
 
▲ 신평 무릉 곶자왈 다양한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 문운주
  
▲ 신평 무릉곶자왈 나무와 덩굴이 우거져 터널을 이룬다
ⓒ 문운주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어수선하게 된 곳이 곶자왈이다. 용암분출로 만들어진 원시의 숲이다. 열대북방한계식물과 한대 남방한계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이라고 한다.

곶자왈 입구에는 간세와 리본이 보인다. 간세는 제주올레의 상징인 조랑말의 이름이다. 리본의 파란색은 제주의 푸른 바다를, 주황색은 제주의 귤밭을 상징한다.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그 밖에도 화살표, 표지석 등 다양한 안내표지들이 있다.

곶자왈에 들어서니 시골 뒷동산에 올라온 기분이다. 작은 나무와 덩굴 들 사이를 걸어 들어간다. 조금 습하지만 산길이라 그늘이 많다. 들어갈수록 숲은 어두워지고 다양한 나무, 식물들이 눈에 띈다. 모슬봉에서 만난 현지 친구와 동행하고 있다.

간혹 들리는 새소리가 산의 정적을 깬다. 친구는 연신 감탄이다. 올레길이 아니라 원시림길로 바꿔야겠다느니 하면서 연신 셔터를 누른다. 나무와 덩굴이 길게 원통을 만든다. 나무 터널을 통과하는 것 같다.

새 왓이 보인다. 새 왓은 띠밭을 가리키는 제주어다. 새는 제주도의 초가지붕을 이는 주재료다. 벼종사를 짓지 못하기 때문에 새는 제주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풀이다. 옛날에는 2년에 한 번씩 지붕을 이었다고 한다. 

한참을 얼마나 걸었을까. 정개밭이다. 정개밭은 정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들어와 곶자왈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다. 지금은 탱자, 개복숭아, 벚나무 등 여러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돌담 등 흔적이 남아 있다.

무릉 곶자왈에는 참가시나무들도 자생하고 있다. 검은 참가시나무, 흰 참가시나무, 붉은 참가시나무  등이며 흰 참가시나무는 결석에 좋다고 하여 약재로 쓰인다. 그 밖에도 형제가 들어와 숯가마를 만들어 살았다는 성제 숯 굿터가 남아 있다. 

버섯, 고사리, 쥐똥마무, 참죽나무, 억새 등 다양한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신평·무릉 곶자왈은 비밀의 숲이다. 무릉곶자왈은 2008년 아름다운 숲길부문 우수상으로 수상되기도 했다. 

아침 9시경에 모슬포 하모 체육공원을 출발 무릉 외갓집까지 8시간 여가 걸렸다. 느림의 미학이다. 천천히 걷다보니 보인다. 올레길 트레킹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조상들의 일상도 들여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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