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전 4000억 금융사고…'562억 횡령' 경남은행에 무슨 일이
BNK경남은행에서 직원에 의한 56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700억원대 횡령 사건이 발생한 이래 두 번째로 큰 규모다. 경남은행으로선 2010년 발생한 4000억원대 금융사고 이후 13년 만에 부실한 내부통제시스템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거듭된 금융사고에도 수백 억원대의 횡령 사건이 또다시 발생하면서 경남은행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한 지적도 커지고 있다.
15년간 PF 담당, 총 560여억원 횡령…검찰 금융정보조회 요청에 뒷북 감사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경남은행 부동산투자금융부장 이모씨(50)는 2007년 12월부터 2023년 4월까지 약 15년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업무를 담당하면서, 2016년 8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총 562억원을 횡령·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경남은행이 지난 4월 검찰로부터 이씨에 대한 금융거래 정보 조회 요청을 받으면서 가시화됐다. 경남은행은 이를 금감원에 보고했고, 금감원에서 지시한 자체감사를 통해 77억9000만원 상당의 PF대출 상환자금 횡령을 인지해 지난 7월 20일 보고했다.
이후 금감원은 7월 21일 실시한 긴급 현장점검을 통해 이씨의 횡령·유용사고 혐의 484억원을 추가 확인했다. 금감원은 이씨가 약 15년간 동일 업무를 담당하면서 가족 명의 계좌로 대출 자금을 임의 이체하거나 대출서류를 위조하는 등 전형적인 횡령 수법을 동원했다고 보고 있다.
경남은행은 이씨를 직무에서 배제하고 고소하는 한편, 횡령액을 회수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경남은행 측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금융사고 방지를 위한 현장 간담회를 실시해 전 직원에 대한 윤리의식 교육을 강화했다"며 "내부통제 분석팀을 신설해 객관적인 조사와 세밀한 분석을 통해 전면적인 시스템 정비 등 강도 높은 추가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년 전, 13년 전 대형 금융사고와 판박이
이번 경남은행에서 발생한 횡령 사고는 횡령이 수년 전부터 발생했지만,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과 가족이 연루됐다는 점, 한 부서 장기 근무 경력, 규모가 수백 억원대에 달한다는 점 등에서 지난해 우리은행 횡령 사고, 13년 전 같은 은행에서 벌어진 금융사고와 비슷한 지점이 많다.
현재 700억원대 횡령 혐의로 기소된 우리은행 직원 전모씨(44)는 본점 기업개선부에서 근무하면서 2012년 10월부터 2018년 6월까지 회삿돈 약 614억원을 빼돌려 주가지수옵션 거래 등에 쓴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전씨가 10년 이상 기업개선부에서 장기 근무한 경력이 횡령의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 많았다.
경남은행에서 13년 전 벌어졌던 사건도 마찬가지다. 당시 구조화금융부(해체) 소속 직원(부장·과장)들은 고객의 신탁자금을 개인적으로 비상장기업 지분인수 등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자 행장 명의의 지급보증서 등을 위조, 제2금융권·기업으로부터 자금을 끌어들여 돌려막기 하다 적발됐다. 당시 사고금액은 4136억원으로 역대 최대 금융사고란 오명을 얻기도 했다.
이 같은 대규모 금융사고의 원인으론 신탁업무를 담당한 직원이 2명에 그쳐 상호 간 감시·견제가 미약했던 점, 사고를 일으킨 직원이 장기간에 걸쳐 동일한 업무를 담당하고 전권을 보유하고 있었던 점 등이 꼽혔다.
이번 이씨의 사례도 앞선 대형 금융사고와 비슷하다. 1990년 입행한 베테랑 은행원인 이씨 역시 2007년 투자금융부에 배속됐고, 올 초 투자금융기획부로 이동했다. 내부적으론 부동산 PF분야의 전문가로 통했고, 성과 측면에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씨 역시 15년간 한 부서에서 장기 근무하면서 횡령 규모를 키웠고, 그 과정에서 가족 명의 계좌를 이용하거나 대출서류를 위조하는 방법을 썼다.
부실한 내부통제 여전 “조직문화-내부통제제도 동시 개선을”
업계에선 이번 사고로 경남은행의 부실한 내부통제 및 감사시스템이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BNK금융 한 관계자는 "전문성과 인적 네트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한 투자은행(IB) 분야, 특히 PF 분야에선 마땅한 대체자를 찾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 않았을까 한다"면서도 "그럼에도 한 부서에 15년이나 연속으로 근무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전문성'이 내부통제 소홀의 정상참작 사유가 될 순 없다는 평가다. 은행연합회가 마련한 '은행권 표준 내부통제기준' 제33조엔 고위험사무의 직무 분리 기준으로 사고 발생 우려가 높은 단일거래에 대해선 복수의 인력 또는 부서가 참여토록 하고 있으며, 인력 부족이나 사안의 시급성 등으로 직무 분리 적용이 어려운 경우에도 별도의 보완통제 장치를 운영할 수 있게 돼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도 "시중은행의 경우 부동산 PF 사업과 관련해서도 기획, 대출 승인, 대출 등 권한이 여러 곳에 분산돼 있어 상호 감시·견제가 한층 수월한 측면이 있다"라며 "문제가 된 은행의 경우 PF 사업담당자에게 권한이 쏠려있어 사안을 키운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의 근본적인 내부통제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우리금융그룹의 경우 지난해 횡령 사고 이후 전 직원이 지점장 승진 이전 내부통제 업무를 필수적으로 경험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내부통제 혁신안을 만들었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감사도 모든 샘플을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맹점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조직 문화 개선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부통제 부서를 한 번씩 거치면 교육이 강화되는 것이고, 교육받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며 "(만약)주위 직원이 횡령한다고 했을 때 이상한 점을 알게 되는 등 이런 문화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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