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폐지 우리가 보고하래요ㅠ"…한수원 탈원전 강요한 김수현
문재인 정부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월성1호기 조기 폐쇄의 절차적 위법성을 수차례 인지하고도 폐쇄를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2일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김 전 실장 공소장에 따르면 2017년 5월 시민사회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김 전 실장은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 에너지전환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아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등 탈원전을 핵심으로 하는 에너지전환 정책을 이끌었다. 대전지검 형사4부(부장 김태훈)는 지난달 19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업무방해 혐의로 김 전 실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2017년 6월 15일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을 앞두고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 중단은 건설 허가를 취소할 법적 근거가 없지만 월성 1호기 폐쇄 공약은 지킬 수 있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월성 1호기 폐쇄를 위해선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지만, 김 전 실장은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서 특별법 제정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월성 1호기 폐쇄가 가능하다고 보고를 올렸다. 결국 산업부는 입법조치 대신 한수원의 자발적인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탈원전 정책 방어에 급급하던 김수현 전 실장
김 전 실장은 정책 추진 과정에서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며 방어 논리를 펼치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김 전 실장이 주관한 2017년 9월의 에너지전환TF 회의에서는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공사중단 여부 공론조사 여부 관련 결과발표’를 앞두고 공사재개 권고가 탈원전 정책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며 “탈원전 정책 추진 좌절로 인해 대통령의 리더십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천지 원전 1·2호기 백지화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라는 대책도 논의됐다. 또 김 전 실장은 “공론화위원회 결과에도 불구하고 가동 원전 전수 조사로 원전 안전 문제를 집중 부각해야 한다”라는 에너지전환TF 보고 내용도 승인했다고 한다.
이후 한수원의 자발적인 조기 폐쇄 결정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수정하자는 산업부 실무진의 의견도 묵살됐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산업부는 상위 계획인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원전 확대 부분을 배제한 뒤 한수원의 조기폐쇄 이행계획 제출→제8차 전력수급기본 계획 수립 방안을 제시했지만,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은 “에너지기본계획 수정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예상치 못한 논란 발생으로 국정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라며 반대했다. 결국 김 전 실장은 2017년 10월 ‘에너지 전환(탈원전) 로드맵’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며 이를 근거로 한수원의 조기 폐쇄 의향을 제출받도록 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백 전 장관은 2017년 10월 에너지 전환 로드맵 추진과 관련해 문 전 대통령에게 “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서 공사재개로 결정될 경우 뒷감당은 산업부가 책임지고 하겠다”라며 “월성1호기는 조기에 가동중단을 하고, 이를 위해 제8차 전력 수급기본계획에서 제외하겠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한수원 측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 하고 싶다” 토로
김 전 실장은 또 한수원의 조기폐쇄 의향을 제출받아 월성 1호기를 가동을 중단하는 방안이 한수원 경영진 법적 책임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와 한수원이 조기 폐쇄 의향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는 내용도 사전에 보고 받은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산업부는 에너지전환 로드맵 계획에 따라 한수원에 월성1호기에 대한 설비현황조사표 작성을 요구하며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신규원전 건설 백지화’ 문구를 포함하라고 요구했다. 일부 한수원 실무자는 “20기에 가까운 원자력발전소 폐지 결정을 저희 부서에서 보고하라고 하네요ㅠㅠ 몇십조 몇백조 결정사항인데, 저는 못한다고 하고 나왔습니다. 누구라고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습니다”라는 문자를 지인에게 보내며 부당한 지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검찰은 공소장에 김 전 실장이 에너지전환TF를 이끌면서 월성1호기 조기 폐쇄를 주도한 과정을 두고 “법적 근거 없이 국정과제인 월성1호기 조기폐쇄를 조속히 추진하기 위한 방편으로 한수원 관계자들에게 월성1호기 조기폐쇄 의향이 담긴 ‘설비현황조사표’를 제출하라고 지속해서 지시하고, 이에 응하지 아니할 경우 인사상 불이익 등을 가할 듯한 태도로 압박했다”라며 “직권을 남용하여 한수원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고, 위력으로써 피해자 한수원의 ‘설비현황조사표’ 작성 제출 업무를 방해했다”고 적시했다.
김 전 실장은 검찰의 기소에 대해 “정책전환과 개혁 노력에 형사적인 직권남용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정치보복’에 버금가는 ‘정책보복’”이라며 “2017년 2월 법원이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이 절차적 문제와 안전성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취소 판결을 내려 문재인 후보가 조기폐쇄를 공약으로 채택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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