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김용화·김성훈을 감독으로 살게 하는 힘 [홍종선의 연예단상㉑]

홍종선 2023. 8. 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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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더 문’ ‘비공식작전’, 감독을 보면 영화가 보인다
감독 류승완, 김용화, 김성훈(왼쪽부터) ⓒ

여름 극장가가 다양한 장르의 한국영화들로 성찬이 차려진 가운데, 선두에서 작품을 공개한 감독 류승완, 김용화, 김성훈을 연이어 만났다. OTT 시대, 시간과 장소 구애 없이 혼자 영상콘텐츠를 관람하는 게 문화소비 패턴이 되어가는 시대에 ‘극장으로 나와 같이 보자’고, ‘함께 눈물과 웃음과 감동의 공기를 만들어 그 속에서 호흡해 보자’고 손짓하는 감독들이다.

세 감독은 나이로는 김성훈·김용화·류승완 순, 데뷔 연도로는 그 반대다.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나 오십 줄에 접어든 세 감독은 나이를 잊게 하는 열정, 작품을 거듭할수록 농익은 완성도로 똘똘 뭉친 작품을 2023년 여름 극장가에 내놓았다.

코로나19로 위축된 영화산업이 좀처럼 활개를 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OTT(Over The Top, 인터넷TV)의 약진 속에서, 한국영화 산업의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하는 세 감독이 출사표를 던졌다는 게 반갑다. 가장 반가운 건 세 감독이 각자 가장 잘하는 것으로 만든 영화라는 것, 각자 구축헤온 세계관의 확장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먼저, 액션영화의 대가 류승완 감독은 특기이자 장기인 ‘지상에서 벌이는 남성액션’을 배우 조인성과 박정민을 내세워 유감없이 보여 줌과 동시에 김혜수와 염정아 등 여섯 해녀의 활약을 바탕으로 ‘수중에서 벌이는 여성액션’으로 외연을 확장했다.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 제작 ㈜외유내강, 제공·배급 ㈜NEW)로 한국영화 관객을 본격적으로 ‘수중액션의 세계’로 데려갔다. 영화 ‘강철비2’에도 똑같이 바닷속을 배경으로 멋진 수중액션이 나오지만, 잠수함끼리의 싸움인데 ‘밀수’에서는 사람들이 액션한다. 수영을 전혀 못 하거나 물에 대한 공포를 지닌 배우들이 해낸 결과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유려하고, 누구 하나 믿을 사람 없이 뒤통수에 뒤통수를 치는 스토리 전개도 흥미를 돋운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과 인물의 감정, 그것을 담아내는 카메라와 기술에 진심인 김용화 감독은 달로 공간을 확장했다. 범이면 우리 눈앞에 떠오르는 밝은 달, 지구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인력’이 작용하는 관계에 놓인 위성이지만 쉽사리 인간의 착륙을 허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다. 과거 20세기, 공상과학영화의 상상력이 항공우주과학의 발전에 아이디어를 주어왔듯이 영화 ‘더 문’(감독 김용화, 제작 CJ ENM STUDIOS·블라드스튜디오, 제공·배급 CJ ENM)이 2029년을 배경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주과학의 미래를 앞당긴다. 전작 영화 ‘신과 함께’ 1·2편을 통해 사람이 죽어서 가는 ‘저승’을 생생하게 형상화하더니 이번엔 지구 밖 ‘달’이다. 새로운 도전에 설경구와 김희애가 도경수를 감싸 안아 진일보의 용기를 냈다.

어느 곳, 무엇인가에 갇힌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에 뛰어난 김성훈 감독은 이번엔 21개월 동안 생사도 몰랐던 외무부 서기관, 레바논 베이루트에 갇힌 한 남자를 구하러 간다. ‘오재석 구하기’에 전작 영화에서 ‘터널’에 갇혔던 하정우, 무력한 임금과 재상의 폭정 아래, 나라로부터 버려지고 가난의 굴레에 갇혀 좀비가 된 조선의 민초들을 구한 ‘킹덤’의 주지훈이 동행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영화계가 인정하는 지독한 완벽주의, 그보다 더 지독한 준비력과 성실성으로 액션과 눈물, 웃음과 감동이 공존하는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 제작 와인드업필름·와이낫필름, 제공·배급 ㈜소박스)을 공식적으로 완성했다. 전작들을 뛰어넘는 배우들의 열연은 기본, 스토리와 액션이 하나 되어 쾌감을 증폭시키고, 웃다가 우는 게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지 알게 한다.

지난해 여름에 이어 이번 여름에도 관객의 큰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한국영화의 미래는 어둡다는 절박함으로, ‘내 영화가 흥행했으면’이 아니라 ‘모두 함께 잘됐으면’의 희망으로 여름 극장가에 나선 세 감독, 김성훈·김용화·류승완.

영화 ‘밀수’의 감독 류승완 ⓒ ㈜NEW 제공

세 감독이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감독으로 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먼저 류승완 감독은 자유를 창작자의 생명으로 꼽았다.

“창작자는 자유로움이 생명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 일을 오래 한 사람인데, 관객들이 제 영화를 봐주시니까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거잖아요. 제가 할 일은 제 영화를 잘 만드는 것이에요, 정책을 내고 문화산업에 발언권을 가지는 것보다는요. 물론 창작자로서 어느 순간 딜레마에 빠질 수 있어요, 저는 제작환경 등에서 창작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편인데, 제가 의식하지 않고 자유로이 만든다는 말이, 제 말이 족쇄가 돼서 제가 하고자 하는 걸 못 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러함에도) 정책이나 산업을 잘 챙기는 분들은 따로 계신 것 같아요, 저는 잘 못 해요. 따라서 제가 책임감 느낀다, 저 스스로 과대평가하는 거라고 봐요. 제가 있는, 제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일 뿐이에요.”

창작자의 자유로움을 말하는 감독 류승완은 나이 들지 않는 소년처럼 보였다. 영화 ‘밀수’만 해도 매끄럽게 잘 빠진 영화가 아니라 거칠어도, 과해도, 새롭기를 바라고 생기 넘치는 영화를 지향했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잘하는 일로 관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면서도, 그런 줄 모른 채 ‘저는 제 일만 열심히 해요’라고 말했다.

류승완 감독은 또, 그 새로움을 위해 자신의 전작들에서 ‘멀리 가는’ 길을 ‘실패하더라도 한 걸음만 더’의 마음으로 걷고 있었다.

“류승완 영화는 이럴 것이다, 규정하기 힘들다고들 하세요. ‘배테랑’ 좋아히시는 분 많지만, ‘베를린’ 반기시는 분도 있고, ‘다찌마와 리’ 팬도 있고. 영화가 다 달라요, 어디에 초점을 맞추기 어려워요. 아니, 뭐 내가 다 저질러 놓은 건데(웃음) 필모그래피가 갈지자예요. 리얼 베이스였다가 판타지로 가고, 코미디도 있고 어두운 영화도 있고요.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제가 해놓은 것으로부터 멀리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영화 좋아하니까 만드는 일을 꿈꿨을 거잖아요. 성공을 재탕하지 않는 것, 익숙한 것 재탕도 한두 번아자 어떻게 가도 결국 침몰해요. 익숙함과 새로움의 밸런스를 맞추는 문제도 중요해요. 너무 새로우면, 저 혼자 멀리 가면 안 되고 관객과 같이 가야 해요. 매번 새로운 것을 낸다는 게 저도 두렵지만, ‘실패하더라도 한 걸음만 더’라는 마음으로 합니다. 구력이 쌓이니 시간이 쌓이니 공도 실패도 해보니, ‘안 되면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뭐’ 하는 마음이 생겼달까요.”

영화 ‘더 문’의 감독 김용화 ⓒ CJ ENM 제공

김용화 감독에게 영화를 만들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많은 관객분이 자신이 만든 영화를 사랑해 주셔서 오늘의 제가 있고, 그 사랑에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까지는 류승완 감독과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실행방식이다.

“(어느 감독이든, 영화든 관객께) 정서적으로 드리고 싶은 선물은 같단 말이죠. 저는 포장을 정성스럽게, 잘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느라 전작 이후 이번 신작 낼 때까지 5년이 걸렸어요. 저는 사실 시간이 이렇게 간지도 모르고 만들고 있었던 것 같아요. 더 빨리 보여드리고 싶죠. 자본의 문제예요. ‘더 문’에 500억 원, 1000억 원 있었으면 1년 당길 수 있겠죠. 정해진 예산 내에서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어요. 예전엔 조급함이 있었는데, 이제는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드리자,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극장에서 이 정도의 화면, 한국에서 이런 걸 볼 수 있구나! 샷의 화려함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제일 중요한 것은 제 나이에 맞는 샷, 경박하지 않게, 하나하나의 해상도에 품위가 있는 영화. 극장에서 와서 보실 때 ‘접대 잘 받고 있구나’ 느끼시게 하고 싶습니다. 할리우드만큼 충분한 예산은 아니지만, 한국영화 여건에서는 최대한 진짜 진짜 대접해드리고 싶었어요.”

‘밀수’ 안에 뭐가 있을까 소년 같은 호기심을 가지고, 해나가는 과정에서 좋은 것들이 담길 것이라 믿고 시작하는 류승완 감독과 달리. 김용화 감독은 꼼꼼한 설계도를 갖고 시작한다. 영화라는 선물을 준비하되, 마지막 포장까지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영화기술에 공을 들인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 김용화를 감독으로 살게 하는 힘에는 소년이 깃들어 있었다.

“어린 시절, 유년 시절의 그 열악한 상황에서 저를 꿋꿋하게 키워 주셨던 어머니 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저를 감독으로 살게 하십니다. ‘고통스러워도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을 거야!’, 말씀으로는 안 하셨으나 삶으로 보여 주셨어요. 돌아가신 지 30년이 넘는데 부쩍 두 분 생각이 납니다. 사실 제 영화들은 다 같은 감정, ‘위로’를 얘기해요. 제 이야기, 제 인생의 키워딩이 위로니까요. 잘 정립되지 않은 감정을 얘기하는 거는 저는 좀 부끄럽거든요. 위로라는 얘기를, 기왕이면 재미있는 위로로, 그래도 벌써 일곱 번째 위로니까 관객분들이 지치실 수도 있죠. 그런데 사실 그게 다예요, 영화는. 다만 공간은 또 하나의 포인트 오브 뷰(point of view, 관점)이고, ‘관계를 조명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 수 있는 게 공간이거든요. 같은 감정, 같은 위로라서 더욱 다른 공간으로 모셔가 이야기를 펼치는 겁니다. ‘더 문’의 경우, 달은 지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인력을 가지고 있잖아요.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인데, 관계라는 것에서 문제 생기고, 관계를 회복하려면 용기가 필요해요. 용서가 아니라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비공식작전’의 감독 김성훈 ⓒ ㈜소박스 제공

달라도 많이 다른 감독들의 생각과 연출 스타일 덕에 우리는 다채로운 접근 방식과 색깔의 영화를 보는 행운을 누린다. 여기 또 다른 연출 스타일의 감독, 또 한 명의 설계자가 있다. 영화 ‘비공식작전’의 김성훈 감독이다. 우선, 김성훈 감독의 디렉팅 스타일은 배우 주지훈의 설명을 통해 들여다보면 더 선명하다.

“김성훈 감독님 존경해요.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생각 들 정도로 준비도 현장도 완벽하고, 그에 발맞추자면 배우나 스태프나 고될 수밖에 없는데 털끝만큼도 밉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가 가장 열심히 하고, 어떤 요구를 예쁜 단어를 써서 예쁜 문법으로 청하시거든요. ‘비공식작전’ 촬영 끝난 뒤 어떻게 그러실 수 있나 물었어요. 첫 작품이 잘 안되고, 7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영화가 실제 내 아이 같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내 눈에만 보이는 실수, 그러나 남에게 하면 안 되는 행동이 있으면 자식에게 ‘그래도 돼’ 할 수 없듯이, 영화의 미흡한 점을 내가 본 이상에는 그냥 내보낼 수가 없다는 마음으로 임하신대요. 최고예요.”

김성훈 감독은 겸손으로 응수했다. “(최고라기보다는)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작품이다, 가창 최대의 노력은 했다, 가장 덜 나태하려고 노력했다, 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은 현재까지 ‘비공식작전’입니다. 제 능력이 늘어날 순 없으니까 제가 투자하는 시간을 늘린 거죠. 화학적으로 바뀔 순 없으니까 물리가 늘어나야 합니다. 이번 작품을 하루 14시간 썼다면, 다음번엔 15시간 해야 비슷한 결과가 될 거예요. 빼놓을 수 없는 건, 현장에서 주변 최고의 스태프로부터 최고의 얘기를 들으려 했습니다.”

답변에 쓰는 단어, 표현만 봐도 매사 얼마나 치밀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가늠이 선다. 건축설계나 안전성 평가를 맡아도 잘할 것 같은 김성훈을 감독으로 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게 뭘까요, 복잡한 건 잘 모르겠고요. 저의 직업은 영화감독이잖아요. 이런 얘기를 많이 물어와요, 사적으로. 영화 찍지 않으면 뭐 해? 영화 해서 돈 많이 벌면 조기 은퇴해, 힘들게 살지 말고. 저는 반대 생각이에요. 세상에서 제일 재미난 일을 돈이 막을 수 없어요. 돈이 있으면 더 큰 일(영화작업)을 하지, 왜 은퇴해요. 현재까지 살면서 가장 재미있는 일은 영화 만드는 거, 준비하는 거예요. 그거 하지 않을 때는 영화 보는 거. 저의 꿈은 오늘의 꿈도, 내일의 꿈도 영화를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오늘 영화를 찍었잖아요, 행복한 삶이죠, 감사한 삶이죠. 꿈과 일이 같이 있다는 것. 물론 만들 때, 개봉 앞두고, 너무 힘들죠. 악몽이죠. 그러나 그 악몽을 꿈으로 만드는 일이 영화예요. 꿈이 감독이고 현실도 감독이고, 계속 꿈꾸려면 영화감독 해야 하는 거죠. 현실에서 꿈을 꾸는 일이 되는 거죠. 현장 가면 두렵지만 신기하고 설레요. 제가 영화감독 하는 게 신기해요, 제 영화가 극장 벽면에 포스터로 붙어 있는 게 신기해요. 일상이 신기한데 어찌 또 안 할 수 있겠어요.”

김성훈, 김용화, 류승완, 세 감독을 연이어 만나며 느낀 생각 두 가지. 먼저, 일가를 이룬 감독에게는 소년과 어른이 공존하는구나. 자유로움을 얘기할 때는 소년이었다가 성공을 재탕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일 땐 어른인 류승완. 포장까지 정성스럽게 마무리한 영화로 관객을 극진히 대접하겠다고 할 땐 어른이었다가 힘의 원천을 가난했던 유년 시절의 부모님 기억에서 찾을 땐 소년이 되는 김용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가며 완벽주의를 추구할 때는 어른이다가 잠을 자지 않아도 꿈을 꿀 수 있는 감독으로 사는 오늘을 신기해할 때는 소년으로 보이는 김성훈.

또 하나의 생각은,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스스로 모든 걸 바쳐 영화를 만드는 장인들이 있어 OTT 시대에도 극장 갈 이유가 유효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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