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감독이 할아버지 춤꾼 다큐를 찍은 까닭
[김성호 기자]
이누도 잇신이란 영화감독이 있다. 1960년생으로 어느덧 예순이 훌쩍 넘은 이 감독은 중년에 내놓은 단 한 편의 작품으로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제 존재를 새겨 넣었다. 그 영화가 바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다.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은 이 영화는 사랑의 피고 짐에 대하여, 그 미숙함과 성숙함, 열정과 당당함에 관해 섬세하게 그렸다는 극찬을 받았다. 이누도 잇신이 단박에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출자 반열에 오른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 이름 없는 춤 포스터 |
ⓒ GATE6 |
이누도 잇신의 이색적 다큐멘터리
9일 개봉을 앞둔 <이름 없는 춤>은 여러모로 낯선 영화다. 주로 극영화에 매진해온 이누도 잇신이 다큐멘터리를 찍어냈다는 점이 그렇고, 관찰의 대상이 독특한 춤꾼이라는 점 또한 그러하다. 다큐는 1966년부터 현재까지 춤꾼으로 살아온 다나카 민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예술세계를 들여다본다. 이누도 잇신이라는 사연 있는 영화감독의 시선으로 독특하고 치열한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라니 흥미롭지 아니한가.
다나카 민은 깡마른 노인이다. 앙상한 몸을 가진 노인이 유럽의 어느 거리에서 느리고 비틀린 동작들을 취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오래된 춤꾼이며 영화배우이기도 한 그이지만 대중적 명성을 얻지는 못했으므로 지나치는 사람들은 이 노인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춤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동작들을 멈추지 않는다.
▲ 이름 없는 춤 스틸컷 |
ⓒ GATE6 |
나이든 예술가가 독특한 춤을 이어가는 이유
다나카 민의 춤은 독특하다. 그에게 춤은 음악을 타고 움직이는 리듬감 있는 멋진 몸짓에 한하지 않는다. 그의 춤사위는 대개 기괴하고 특이하며 불편하고 어색하게까지 보인다. 음악이 없을 때도 잦고, 아름답지 않을 때도 많다. 그가 추는 춤은 우리가 알던 춤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유는 곧 드러난다. 영화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해 관객을 수시로 다나카 민의 과거로 데려간다. 키가 작고 가난하며 혼자였던 그의 유년으로,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와 또 폭격이 남긴 폐허로 데려가는 것이다.
그에게 춤이란 사물 사이에, 시간 사이에서 비어져 나오는 무엇이다. 춤을 추는 자는 시간의 진행과는 전혀 다른 속도를 지닐 수가 있다는 믿음을 그는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세계 밖에선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다나카 민의 예술관이 그러나 제게 맞는 관심과 평가를 맞아들인 순간이 있다. 1978년, 파리였다.
▲ 이름 없는 춤 스틸컷 |
ⓒ GATE6 |
성공 뒤 이어진 제안을 걷어차고 거리를 떠돈 춤꾼
성공 뒤 그는 여러 제안들을 받았다고 말한다. 어느 대학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그렇게 후진을 양성해 하나의 유파를 창설하라는 둥의 제안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제안으로부터 혐오를 느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계속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동작들을, 저만의 춤사위를 이어간다.
그 춤사위가 포르투갈과 프랑스, 또 일본의 도쿄와 후쿠시마, 히로시마 등지에서 거듭 펼쳐진다. 관객들은 숨죽여 집중하고 노인이 된 춤꾼은 육체의 고통을 참아내며 동작 하나하나에 혼을 심어낸다. 이누도 잇신의 시선이 성실하게 다나카 민의 동작을 따르니 이 다큐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순간이 제법 담기게 되었다.
<이름 없는 춤>은 낯선 방식으로 낯선 예술가를 담아낸 보기 드문 작품이다. 그 낯섦이 한계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없지는 않지만, 어느 예술은 형식의 낯섦으로 수용자의 평온을 흔들기도 하는 법이다.
▲ 이름 없는 춤 스틸컷 |
ⓒ GATE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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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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