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리딩 클럽 되겠다" 홍명보-울산의 동행 제2막
[이준목 기자]
▲ 홍명보 감독 계약 연장 |
ⓒ 울산 현대 |
프로축구 울산 현대가 홍명보 감독과 3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울산 현대는 2일 홈페이지 등 구단 공식 채널을 통해 홍명보 감독과의 재계약 소식을 전하며 "구단 역사상 첫 리그 2연패와 두 시즌 연속 리그 조기 우승을 목표로 하는 울산에게 시즌 중 홍명보 감독의 연장 계약 소식은 후반기에 새로운 동기부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21시즌 팀 체질 개선을 표방하며 울산의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 감독은 지난 시즌 팀과 함께 17년 만의 리그 우승컵을 가져오며 팬과 선수단 그리고 관계자들에게 신뢰와 가능성을 심어준 바 있다"며 홍명보 감독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이로서 홍명보와 울산의 새 계약 기간은 2026 시즌까지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시간이 팀을 파악하고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울산이 K리그를 대표하는 리딩클럽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무엇보다 팬분들은 나와 우리 선수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이자 원동력이다. 울산을 사랑하고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을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 축구의 전설인 홍명보 감독은 현역 시절 4회 연속 월드컵 출전과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서 런던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사상 첫 동메달, 2014 브라질월드컵 A대표팀 감독, 중국 슈퍼리그 항저우 뤼청의 감독을 역임했다. 2017년부터 11월부터는 대한축구협회 전무를 역임하며 행정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홍 감독은 2021시즌을 앞두고 울산의 지휘봉을 잡으며 항저우 뤼청 시절 이후 3년 7개월 만에 지도자로 복귀했다. 국가대표와 연령대별 대표, 해외리그 감독에 행정까지 축구인들끼지 꿈꾸는 모든 것을 경험했던 홍명보였지만 K리그 팀 지휘봉을 잡는 것은 처음이었다.
결과적으로 홍명보 감독과 울산의 만남은, 양측 모두에게 '신의 한 수'가 됐다. 홍명보 감독은 2021년 울산 사령탑으로 부임하며 첫 시즌에는 무관에 그쳤으나, 2년 차인 2022시즌 마침내 전북의 5년 연속 장기 집권을 마감시키고 K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울산은 2005년 김정남 감독 시대 이후 번번인 리그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던 울산은 무려 17년 만에 한을 푸는 데 성공했다.
홍명보 감독은 울산을 맡기 전까지 화려한 축구 인생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도자로서는 '실패한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브라질 월드컵과 중국 리그에서의 실패로 인한 인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대표팀 감독을 사임하기 직전에는 마지막 기자회견에 'K리그 폄하' 논란도 있었기에, 홍 감독이 K리그 사령탑으로 돌아오는데 비판적인 반응이 적지 않았다.
이를 의식한 듯, 홍명보는 울산 부임 당시 "마치 숙제를 다 마치지 못한 것처럼 마음 한 켠에 불편함이 있었는데, 그게 K리그 감독직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K리그에 감독으로 공헌할 수 있게 된 점과 그 팀이 K리그를 선도하는 울산이라는 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울산이 K리그를 선도하는 구단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홍명보 감독은 약속을 지켰다. 울산은 홍 감독 체제에서 우승을 탈환한 데 이어, 이제는 리그를 선도하는 새로운 왕조를 목표로 발돋움해나가고 있다. 2023 시즌에는 2위 포항(승점44)과 승점 12점 차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단독 1위(승점56, 18승 2무 4패)를 질주하고 있어서 2연패가 유력하다. 울산은 24경기 만에 벌써 49골(전체 1위)을 기록하는 화끈한 공격 축구를 선보이며 성적과 재미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가고 있다는 평가다.
지도자로서 감독 홍명보만의 최대 장점은 '선수단 매니지먼트'에 있다는 평가다. 올림픽과 A대표팀 시절부터 팀 성적과는 별개로, 홍명보 감독은 자신이 지휘하는 선수단을 확실하게 장악하는 능력만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타 구단에 비해 압도적인 울산의 선수층이나 투자 규모를 감안하면 당연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뛰어난 선수들을 팀으로 조합하여 성과를 내는 것도 엄연히 감독의 능력이다. 설사 다른 팀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개성강한 스타급 선수나 악동이라도 홍 감독과 함께할 때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홍 감독의 개인적 위상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선수의 마음을 사로잡는 홍 감독만의 용인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홍명보 감독은 항상 '하나된 팀'을 유독 강조한다. 이는 물론 다른 감독들과 마찬가지지만, 홍 감독은 유난히 팀의 결속에 집착하고 그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성향을 보인다. 올림픽팀 시절 '죽어도 팀이고 살아도 팀이다', A대표팀 시절 '원팀-원골-원스피릿', 울산 현대의 슬로건인 'ALL FOR ONE, ONE FOR ALL' 등의 구호들은 모두 사실상 동일한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홍 감독은 팀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되, 자신이 한번 믿음을 준 선수에게는 확실한 로열티와 존중으로 보상해준다. 자신의 선수들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비판하지도 않으며 전체적인 팀분위기를 관리하는데도 능하다. 이러한 보스 기질이 바로 팀 내 주축 선수들의 절대적인 지지도와 동기부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원동력으로 꼽힌다.
지도자 경력 초창기에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부분 전술과 임기 응변도 연차가 쌓이면서 점점 나아지고 있다. 뒷심 부족이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받던 울산은 우승을 차지한 지난 시즌 리그에서만 9번의 역전승을 거둿으나, 올 시즌도 리그 총 24경기를 소화한 상태에서 벌서 4번의 역전승을 거두며 위닝 멘탈리티를 강화해나가고 있다.
다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올시즌의 울산은 리그에서도 압도적인 성적에도 불구하고, 축구보다는 경기 외적인 악재로 여러 차례 몸살을 앓았다. 비시즌 축구계에 큰 화제를 몰고온 아마노 준의 전북 이적 논란에서 홍 감독은 불필요하게 선수의 국적까지 끌어들이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자신이 정해놓은 '원팀'의 가치를 흔든다거나, 자신의 권위를 거스르는 선수에게는 한없이 비정해지는 홍 감독의 또다른 면모를 보여준 장면이다.
6월에는 선수단 내 '인종차별 발언'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울산의 몇몇 선수들이 소셜미디어(SNS)에서 대화를 주고받다가 K리그에서 뛰었던 선수의 실명과 피부색을 언급하며 인종차별성 발언을 저질러 물의를 일으켰고, 결국 연맹으로부터 징계까지 받았다. 선수단을 대표하는 홍명보 감독으로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홍명보 감독은 소속팀 선수들의 인종차별 논란에 공식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구단의 솜방망이 처벌에 이어, 홍 감독도 짧은 징계가 풀리자마자 해당 선수들을 곧바로 경기에 기용했다. 이는 자숙과 거리가 먼 모습으로 사과의 진정성을 두고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내 편에게만 관대한' 홍명보식 원팀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앞으로도 울산에 큰 흑역사로 오래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울산이 진정한 명문클럽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성적만이 아니라 그에 걸맞는 품격과 사회적 책임감을 갖춰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앞으로 울산은 K리그 2연패에 이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 우승 탈환, 유소년 선수 육성과 팬 프렌들리 강화 등 명문클럽으로서의 도약을 목표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홍명보 감독과의 연장 계약은 그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홍명보 감독은 그간 축구계에서 쌓아온 지도자-행정가로서의 종합적인 경험과 능력을 바탕으로 명가 울산을 한 단계 더 진화시켜야한다는 새로운 숙제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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