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중심지? 처참할 뿐… 엑스포 실사단, 여기 오지도 않았다"

김종철 2023. 8. 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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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부산이전 논란②- 르포] 부산 문현동 국제금융센터를 가다

정부가 추진중인 KDB 산업은행 본사의 부산 이전을 둘러싸고, 정치권 뿐 아니라 금융과 경제전반에 걸쳐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산업은행 이전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을 짚어봅니다. 불법적인 강행 추진의 배경과 쟁점, 부산현지 취재와 전문가 등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김종철 기자]

 부산 남구 문현동에 위치한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지상 63층 건물로 지난 2014년에 완공됐으며, 한국주택금융공사를 비롯해 자산관리공사, 예탁결재원 등 금융공기업 등이 입주해 있다.
ⓒ 김종철
 
그는 연신 부채질을 했다. 승객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애꿎은 차량 에어컨 다이얼만 돌렸다. 지난 7월 26일 부산은 말 그대로 찜통 더위였다. 차량 계기판에 적힌 외부온도는 37도였다. 

이날 낮 부산역 주변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목적지는 남구 문현동에 있는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였다. 60대 택시기사는 "날씨가 너무 더워, (차량) 에어컨이 시원찮다"면서, 손부채를 꺼내 들고 흔들어 댔다.

기자가 "괜찮다"고 하자, 그는 "조금만 참으시라, 금방 도착한다"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직업이 은행원인지 묻더니, "거기(금융센터)가 63층인데, 서울 63빌딩을 본따서 만든 거라"고 말했다. 이어 부산은행(본점)도 있고, 서울서 내려온 금융 회사들도 더러있다고 했다.

'KDB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온다면) 문현동에 들어온다고 하던데, 언제 내려올지는 모르고..."라면서 "그거보다는 엑스포나 김해공항 이전이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사실 택시를 타기에 앞서 부산역 인근에서 만난 다른 시민들 반응도 비슷했다.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와요? 그냥 경기나 좀 살아났으면..."

직장에 다니다가 배달기사를 하고 있다는 김아무개씨(38)는 "산업은행 이전 이야기는 들어본 것 같은데, 별 관심 없다"면서 "엑스포도 우리가 딸 수 있을지 모르고, 그냥 경기나 좀 살아났으면..."이라고 말했다. 음식배달 콜(call) 수가 몇 달 새 크게 줄어, 수입이 작년에 비해 반토막 수준이라고 했다. 

옆에 있던 동료 전아무개씨(32)도 "부산역 중심으로 북항 개발이다, 뭐다 하면서 부산 웬만한 곳이 공사판"이라며, 되레 기자에게 "산업은행 본사가 부산으로 온다는 것이냐, 언제 내려오는거냐"며 묻기도 했다. 그는 "대학 친구 중에 부산에 내려온 공기업에 취업했는데, 지역 할당 때문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면서 "친구는 사실 '서울로 가고 싶다'고 하던데..."라고 했다. 
 
 부산 남구 문현동의 부산국제금융센터 앞. 향후 부동산 개발을 위해 토지조성 작업이 끝난 곳이다. 주변에선 2단계 금융센터 개발 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
ⓒ 김종철
20여 분 만에 부산국제금융센터에 도착했다. 머리 위로 땡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눈앞엔 거대한 빌딩이 서 있었고, 그 앞쪽으론 널찍한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으로 잡초와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그 옆으론 두 번째 금융센터(?)가 건설 중에 있다. 산업은행 본사가 부산으로 옮길 경우 유력한 후보지로 꼽히는 곳이다.

금융센터는 지난 2014년에 지어졌다. 말 그대로 '국제금융센터'를 바라본다. 동남권 금융허브라는 거대한 목표도 항상 따라붙는다. 하지만 금융 쪽에서 들어봄 직한 글로벌 금융회사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 자리에 금융 공공기관이 들어서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HF), 한국자산관리공사(KAMKO), 예탁결원, 한국거래소 등이다. 심지어 전력회사인 한전과 남부발전도 입주해 있다.

사실 부산은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분산의 최대 수혜 도시다. 지난 2005년 이후 모두 29개의 금융공기업이 부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9년에는 아예 법으로 서울과 부산을 종합금융중심지로 지정했다. 부산을 동남권의 금융허브로 키운다는 목표였다. 과연 이들 공기업들은 부산에서 그들의 경쟁력을 더 키워냈을까. 

지방분산 최대수혜 부산... 금융허브 중심지? "처참하다"
 
 부산국제금융센터에서 내려다 본 금융단지. 부산은행 본사 건물을 비롯해 한국은행 부산지점 등이 위치해 있다.
ⓒ 김종철
 
김승태 자산관리공사(캠코)노조 위원장의 어조는 분명했다. 그는 "아직도 1주일에 5일을 서울로 업무차 출장 가는 직원이 허다하다"면서 "정부가 그동안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했던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사실상 실패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동남권 금융중심지로 부산은 더 처참하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얼마 전 부산 엑스포 준비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국제실사단이 (부산에) 왔는데, 정작 금융허브라는 이곳 금융센터는 오지도 않았다. 왜? 보여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63층짜리 빌딩 하나 덩그러니 놓고, 그 주변은 황량한 공터에다, 공사판인데... 실사단에 무엇을 보여 줄 수 있었겠나."

자신이 부산 출신이라고 밝힌 김 위원장은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내려오는 것 역시 전형적인 정치논리만 있을 뿐, 국가경제 차원의 고민이나 국책은행의 경쟁력에 대한 미래에 대한 생각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부산국제금융센터 건물 앞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큰 규모의 토지가 있다.
ⓒ 김종철
 
강민태 주택금융공사노조 위원장은 부산으로 내려온 지 10년째다. 그 역시 비슷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특히 회사가 부산으로 내려온 지 10여 년이 다 돼 가도록 정작 부산에 정착하는 직원들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는 "아직도 상당수의 직원들이 서울에 집을 두고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매년 인사철 때만 되면, 직원들 사이에서 부산을 떠나 서울로 발령을 내달라는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직원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공기업 지방이전의 진정한 승자는 '코레일'이라고 한다"면서 "급여는 크게 나아지지 않고, 교통비뿐 아니라 주거생활비 등은 크게 늘면서 직원들의 생활 만족도는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10년 돼가는데, 직원들 대부분 주말부부... "코레일이 승자"

노동인 캠코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동남권 금융중심지는 환상일 뿐이라고 했다. 현실은 정반대라고도 했다. 금융업의 특성상 같은 업종과 주요 고객, 업체 등과의 유기적인 소통이 중요하지만, 부산에 본사가 내려오면서 그같은 기능이 크게 훼손됐다고 했다. 

일부 공기업은 서울 출장 인원과 근무시간이 늘어나면서, 별도의 조그마한 사무실을 서울역 주변에 마련했다고 한다. 하지만 건물 입구에 서울사무소 간판조차 제대로 달 수 없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서울사무소 개설을 인정하지 않는 정부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부산국제금융센터 주변에선 2단계 금융센터 개발을 위한 빌딩 건설이 진행 중이다. 산업은행 본사가 부산으로 내려올 경우, 이들 지역이 유력한 곳으로 거론되고 있다.
ⓒ 김종철
 
노 부위원장은 "산업은행처럼 캠코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을 상대로한 업무 미팅과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면서 "국제금융센터라고 하지만 제대로 된 포럼이나 세미나를 위한 공간조차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국제금융단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그냥 건물만 지어놓고, 기관들만 밀어 넣으면 된다는 생각 뿐인 것 같다"고도 했다. 

금융센터 주변의 생활인프라 등도 턱없이 부족하다. 지방 다른 도시에 비해 교통 등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평일 저녁이나 주말 등은 인근 몇몇 주민들을 빼고는 거의 인적이 드물다고 한다. 노 부위원장은 "평일 점심도 대체로 인근 서면 쪽으로 나가 식사를 하는 경우도 많고, 저녁이나 주말에는 거의 비어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직원들 사이에선 '유령도시 같다'라는 말도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금융센터와 바로 이어진 상가건물의 경우 1층을 제외하고 2, 3층의 상당 부분은 비어 있거나 일부음식점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1층도 대부분 단순 음료나 샐러드 등을 파는 카페 중심으로 돼 있었다. 

"서울사무소 문 열어도 간판도 못 달아... 주말엔 '유령도시'"
 
 부산국제금융센터 옆 쇼핑몰 내부. 2층과 3층의 많은 부분이 비어있는 상태였고, 일부 음식점의 경우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나마 1층 상가들 대부분이 카페로 영업 중이었고, 아침과 점심식사 위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 김종철
 
인근 A 부동산의 김아무개 대표는 "10년 전 처음 상가 분양 당시에 비해 가격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상가동 2, 3층은 비어있는 곳이 좀 있지만, 1층은 거의 찼고, 주로 아침과 점심시간에 커피나 샐러드 가게 중심으로 영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융센터 자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산업은행도 이 곳으로 들어온다고 한다"면서 "오히려 지금처럼 가격 조정이 있을 때 투자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또 다른 부동산 관계자도 "산업은행이 언제 내려올지는 모르지만, (부산)시에서도 온다고 하니까 기대하고 있다"면서 "지금 금리 때문에 상가도 예전 같지 않지만, (상가 주인들은) 대체로 최대한 버티면 나중에 다시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시와 의회,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 등은 산업은행 이전을 기정사실화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물론 부산 시민사회쪽도 나름 공공기관 지방이전 대책위를 꾸려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엑스포와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등으로 산업은행 이슈가 크게 다뤄지지 않는 분위기다.

도한영 부산 경실련 사무처장은 "지역균형발전 등을 고려해서 산업은행 본사의 부산 이전에 긍정적인 입장"이라며 "서울본사 내부 구성원의 반대와 우려도 잘 알고 있으며, 정부와 부산시 등에서 이들 직원들과 적극 소통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미숙 부산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얼마전 서울 여의도 산은 본사 주변의 반대 플래카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지난 10년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대한 실패요인을 극복할수 있는 방안을 정부와 부산시가 적극 마련하고 노조 등을 설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KDB 산업은행 부산지점 전경. 회사는 올 1월 본점 일부부서를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내부 직원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 김종철
 
산업은행은 부산을 비롯해 울산과 경남 등 동남권에 6개의 지점을 두고 있다. 다른 어떤 지역보다 많다. 굳이 본사까지 내려갈 이유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회사 쪽에선 올해 초 기존 부산 지점 건물에 급하게 사무실을 만들어 본사 직원을 내려 보냈다. 갑작스러운 인사발령에 직원들 사이에선 본사 이전에 앞선 조치라는 추측이 나왔다.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최근 기자와 만난 김현준 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단호했다. 회사가 내부 직원들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오로지 총선 승리에 매몰된 용산 대통령실과 정부 쪽 입장을 충실하게 대변하고 움직인다고 했다. 

"보세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법에 규정돼 있는 본사 근무지를 자신들 마음대로 무시하고… 정말 산업은행이라는 우리 경제의 핵심 정책금융기관을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최소한 내부 직원들과의 대화나 소통은 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미 10년 전에 (부산으로) 내려간 공기업들이 어떤 상황인지 뻔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누굴 위한 이전입니까. 이제 갓 1년 지난, 4년도 채 남지 않은 정권이 우리의 10년, 20년 미래를 무책임하게 결정해도 됩니까."

이날 저녁 늦게 부산역으로 돌아왔다. 열차 플랫폼에서 서울로 향하는 KTX를 기다리며 김 위원장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그의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은 아직도 찾는 중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날 기자가 만난 이들에게서 얻은 생각은 이렇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더 이상 부산은 아니다'.  

[관련기사] 
- 국힘 입당 전후, 180도 달라진 윤석열 대통령의 '이 말' https://omn.kr/24zdt 
- "산업은행 부산 이전, 금융위기 수준의 손실 초래" https://omn.kr/250k5
 
 KDB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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