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경제전문가 6人 "저성장 장기국면…금리인하·재정투입 고려해야"
수출 의존도 높은 韓
경기 예측 변동성 확대
기업들 보수적 투자 결정
과도한 민간 부채 발목
하반기 '상저하고' 유효
"통화당국 정책운용 필요"
수출 회복 지연과 소비 위축이 올 하반기 한국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전 세계 제조업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의 저성장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업 실적 악화에 따른 민간부채 증가 및 고금리 부담 역시 투자와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한국경제의 이런 추세가 장기화할 경우 저성장 국면이 구조적으로 고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당국의 단기적 금리 인하와 기업의 투자 확대를 위한 강력한 감세 정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2일 아시아경제가 경제 전문가 6인에게 하반기 한국경제를 긴급 진단한 결과 이 같은 의견이 주를 이뤘다. 김영익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교수는 "세계경제 전망과 달리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진 근본적인 원인은 수출이 어려운 가운데 소비마저 뒷받침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의 미약한 리오프닝 효과와 반도체 수출 부진의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이 커지면서, 한국 경제 회복 시점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경기 변동성 확대…기업 투자 제한 악영향
높은 수출의존도는 한국 경제의 진폭을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진폭이 커진다는 건 그만큼 경기 예측의 변동성이 확대된다는 의미다. 박양수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 원장은 "최근 세계경제가 블록으로 분열되고 개별 국가들이 위험 분산을 위해 우호적 국가로 물자를 재배치하는 '프렌드쇼링(friendshoring)' 등의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수출 의존성이 높은 한국의 경제 진폭이 커질 경우 기업은 위기 시 생존의 위협을 받아 투자 결정에 있어 안정성 위주의 보수적인 행태를 보이고, 결국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주요 정책의 목표를 호황과 불황 사이의 경기 진폭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도한 민간 부채 역시 하반기 경제성장을 제약하고 있다. 김 교수는 "가계부채 증가로 소비가 줄고, 기업부채가 늘면서 투자가 어려워지고 있다"며 "예를 들어 가계에서 한 달 100만원의 수입이 생기면 이 중 40만원을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역시 "한국 경제는 올해 1, 2분기 각각 전년 동기 대비 0.9%의 성장을 기록했고, 하반기 최소 1.9%를 성장해야 IMF의 전망치(1.4%) 달성이 가능하다"면서 "기업들의 투자와 소비를 고려할 경우 전망치 달성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고금리와 민간 부채로 인한 줄어든 투자와 소비가 성장률 회복의 주요 하방 위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문제는 한국의 저성장 기조가 장기적인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원장은 "현재의 저성장에는 경기 순환적인 요인과 구조적인 요인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며 "경기 순환적인 측면에서 올 하반기 이후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갈 것이지만 구조적 요인으로 과거만큼 높은 성장률로의 복귀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조적 요인으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 투입의 저하, 낮아지는 자본의 성장기여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뚜렷하게 성장하는 산업이 없고, 생산가능 인구가 줄면서 중국 시장에서 우리가 부가가치를 창출할 기회가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이미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면서 "중국에서의 수출 비중이 줄어드는 대신 합산 비중이 21%에 달하는 아세안과 인도에서 대신 채워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저성장 국면을 해결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금리 인하와 기업 투자 확대를 위한 정부의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 원장은 "금리 격차 확대에 따른 자본유출 위험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지만, 통화당국이 경제 및 금융 안정을 도모하는 측면에서 기업 부채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 실장은 "통화당국은 금리를 인하하고, 재정 당국은 단기적으로 재정 투입과 중장기적으로 산업역량을 확충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특히 국내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보조금 정책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당국과 재정당국으로는 저성장 문제는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며 "세계적인 산업재편에 맞춰 한국도 늦었지만, 적극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장 시급한 정책으로는 불필요한 절차 및 규제 철폐와 신규 투자 확충을 꼽았다. 정부가 기업들이 진입 타이밍을 놓쳐 경쟁우위 선점에 실패하지 않도록 신규투자와 행동 변화를 촉진하는 인센티브 메커니즘을 설계하는 등 산업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양질의 일자리 확충에도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산업지원은 일자리를 얼마나 늘릴 수 있느냐를 고려해야 한다"며 "높은 실업률로 정부의 부담이 증가하는 것을 고려하면 양질의 일자리 확충은 곧 정부 부담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반기 '상저하고' 유효…수출이 관건
하반기 한국 경제의 상저하고(경기가 상반기 저조하다 하반기 나아질 것이라는 예상) 기조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다만 체감 효과는 제한적으로 봤다. 김영익 교수는 "올해 4분기 지난해 기저효과로 중국 중심의 반도체 수출이 늘어나면서 성장률이 소폭 상승하는 흐름이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도"한국의 잠재성장률 2%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한국의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곡물 협정 등 변수가 여전히 살아있다"며 "대외적 요인에 의해 한국 성장률이 상당히 좌우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박 원장은 "고금리 여파 등으로 세계 경제와 수출이 빠르게 회복되기 힘들 것"이라며 "성장률이 상반기 대비 높아지더라도 기업과 가계가 체감하는 경기는 '상저하저'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세종=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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