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를 위한 예습... 두 개만 보면 된다
[김상화 기자]
▲ B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EBS '인물사담회' |
ⓒ BTV, EBS |
모처럼 극장가가 관객들로 북적이는 가운데 초대형 화제작 한 편이 관객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그 주인공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새 영화 <오펜하이머>이다. <다크 나이트> 3부작을 비롯해서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테넷> <인셉션> 등 IMAX 초대형 화면의 효과를 극대화시킨 작품들로 전 세계 영화팬들을 사로 잡은 놀란 감독이 이번엔 실존 인물을 소재로 신작을 마련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 '맨해튼 계획(Manhattna Project)'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물리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영상으로 옮겼다. 한국보다 먼저 개봉된 미국을 비롯한 해외 극장가에선 이미 흥행 돌풍과 평단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영화팬들을 더욱 설레게 만들고 있다.
오펜하이머라는 인물 자체는 물리학, 전쟁사에 관심 있는 분이 아닌 한 다소 생소할 수 있기에 많은 영화팬들은 그의 생애, 영화에 대한 사전 예습 차원에서 다양한 정보를 속속 취득하고 있다. 그런데 알려진 것처럼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 교수의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을 토대로 제작된 영상물이지만 무려 11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기에 일반적인 독자 입장에선 접근하기 어려운 진입 장벽을 갖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영화팬들의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영상물들이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다. EBS <인물사담회>, B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최신편에서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소재로 방송을 내보낸 바 있는데 영화 <오펜하이머>를 기다리는 분들을 위한 사적 학습물로는 가장 최적의 내용물로 채워졌다. (해당 방영분은 모두 유튜브에 풀버전으로도 공개되었다, 기자주)
▲ EBS '인물사담회' |
ⓒ EBS |
MC배성재-장도연의 진행으로 세계적인 인물들을 소재로 그를 둘러싼 역사적 배경, 사실들을 흥미진진하게 전달해주고 있는 <인물사담회>에서 <오펜하이머>를 그냥 지나쳐 버릴 리 있겠는가? 지난 7월 17일 방영분에선 미국 정부의 핵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 종전 이후 고초를 겪기도 했던 오펜하이머 교수의 굴곡 많던 삶을 과거의 영상 자료와 더불어 김상욱 교수, 곽재식 작가의 입을 통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독일 나치군을 무찌르기 위해 준비했던 핵폭탄이 왜 유럽이 아닌, 일본에 투하되었는지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80도 달라진 오펜하이머의 행동, 그를 둘러싼 공산주의자 논란 및 청문회에 얽힌 사연 등을 40여 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인물사담회>는 전문가들의 설명을 빌어 핵심 요소만 꼭 집어 소개해준다.
물리학, 과학 등에 익숙지 않은 두 MC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어서 일반 시청자들의 시각에서도 비교적 편한 분위기 속에 각종 정보, 역사적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각종 방송 출연을 통해 친숙한 김상욱-곽재식 박사의 재치 넘치는 설명에 힘입어 딱딱할 수 있는 핵융합, 핵분열 반응 등 원자폭탄과 관련된 온갖 과학적 지식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준다.
▲ B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
ⓒ BTV |
반면 <이동진의 파이아키아>는 방영 시점(7월19일) 당시 언론 시사회 등 영화 공개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관계로 <오펜하이머>의 원작에 해당되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꾸몄다. 다독을 하기로 유명한 이평론가 답게 방대한 분량의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혀졌다는 소개로 시작된 이 방영분은 깔끔하게 정리해준 그의 언변에 힘입어 베개 만한 두께의 책이 마치 얇은 시집처럼 느껴지게 한다.
세계적인 석학 아인슈타인 대신 왜 노벨상 한 번 받지 못했던 오펜하이머가 핵개발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게 되었는지를 비롯해서 교수를 독사과로 암살하려고 했던 학창 시절 기이한 행동, 불륜 등 감추고 싶은 그의 사생활 등이 이번 방송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소개되었다.
<인물사담회>가 현직 과학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의 삶을 다뤘다면 <파이아키아>에선 영화적인 관점에서 문제적 인물 오펜하이머의 명암을 냉철하게 바라봤다는 다소의 차이점을 내포하고 있다. 1930~1940년대의 국제사회와 관련된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로버트 파인만,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 그 시대 유명 과학자들의 뒷 이야기 등 생소하지만 소설, 영화 이상으로 극적인 삶을 살았던 오펜하이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알찬 시간을 마련해준다.
▲ EBS '인물사담회', B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
ⓒ EBS, BTV |
인류에게 불의 존재를 알려준 프로메테우스는 결국 신들로부터 영원한 형벌을 받고 말았다. "핵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는 종전 이후 자신이 이룬 업적의 반대편에서 해악을 막기 위해 여생을 바쳤던 인물이었다. 이로 인해 불의 이점과 해악을 동시에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 마냥 인류에게 핵으로 인한 근심과 혜택을 함께 건네준 장본인으로 불리운다.
그의 일생을 담은 책의 이름이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로 명명되는 건 가장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에겐 그저 과거 <무한도전> 속 하하가 무심코 서점에서 골랐던 두꺼운 책의 주인공 정도로 인식되어온 인물이지만 놀란 감독의 영화를 통해 뒤늦게나마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 핵개발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
이에 발맞춘 <인물사담회>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등 정보성 프로그램을 통한 오펜하이머 재발견은 영화에 대한 사전 학습 뿐만 아니라 잠시나마 간과했던 현대사의 어두운 이면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비단 이런 종류의 영상물이 아니더라도 오펜하이머에 관한 다채로운 콘텐츠들이 속속 제작, 소개되고 있는 요즘인 만큼 과학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굵직한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 그의 이야기는 영화 개봉과 맞물려 한동안 새로운 논쟁과 고민을 동시에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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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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