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의 신(信)] 김동수 "투수를 알고, 투수를 믿어라"

안희수 2023. 8. 2.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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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데뷔 20시즌 포수의 길
골든글러브 7회 수상, 1990년대 포수 계보 이어
이상적인 리드는 투수 '역량' 극대화
한국 야구 포수 계보를 잇는 김동수 위원이 전한 포수의 길. 사진은 1994년 LG 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 순간 동료들과 기뻐하는 김동수 위원. 사진=한국프로야구20년사

KBO리그 역대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최다(7회) 수상, 역대 최초 포수 신인왕(1990년) 그리고 LG 트윈스의 마지막 한국시리즈(KS) 우승을 이끈 주전 포수. 김동수(54) 한국야구위원회(KBO) 전력강화위원이 선수 시절 새긴 이정표다. 

1990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김동수 위원은 프로에서 20시즌 동안 안방을 지켰다. 선수 생활 마지막 시즌(2009)엔 리그 야수 최고령(마흔두 살)으로 그가 첫 번째 KS 무대를 누비던 해(1990년) 태어난 강리호와 배터리 호흡을 맞췄다. 그렇게 1990년대 한국 프로야구 포수 계보를 이었고, 히어로즈 야구단과 친정팀 LG, 그리고 국가대표팀에서 지도자 길을 걸으며 후진 양성에도 큰 힘을 썼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야구 유니폼을 입은 김동수 위원은 “초등학교 야구부 입단 테스트에 포수 미트를 갖고 있던 지원자가 나밖에 없었다”라고 웃으며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야구인으로 먹고 살 수 있었다. 포수의 삶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 시절 담배는 입에도 안 대고, 음주도 자제했던 김동수 위원은 모범적인 자기 관리만큼 정석대로 포수 임무를 수행했다. 포수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을 포구로 여겼고, 데이터 공부도 열심히 했다. 무엇보다 투수와의 관계에서 ‘믿음의 리드’를 실현했다. 김 위원은 “투수가 자신이 가진 역량을 자신 있게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게 포수의 역할”이라고 했다. 

1990년 신인왕을 수상한 뒤 정규시즌 MVP 선동열(왼쪽)과 포즈를 취한 모습

'나만의 데이터'를 만들다

‘데이터 야구’가 정착하지 않았던 시절, 김동수 위원은 전력분석원과 가까이 지냈다. 현대 야구 분석 자료와 비교하면 부족했지만, 기록지 등 페이퍼 안에서 유의미한 데이터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김동수 위원은 “지금처럼 포털 사이트에서 경기 영상을 확인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다른 팀들의 경기 분석 자료를 보며) 투수와 타자 사이 승부 양상을 파악해 보려고 했다. 특히 바로 다음 상대하는 팀 타자들이 이전 3연전에서 초구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집중해 봤다”라고 전했다. 

김동수 위원은 타자 구종에 상관없이 배트가 나왔으면, 최근 컨디션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판단, 가급적 포심 패스트볼(직구) 대신 변화구 사인을 냈다고 한다. 타자와의 승부에서 가장 중요한 초구의 구종·로케이션 선택에 데이터를 적용하려고 했던 것. 김 위원은 이후 점점 세밀해지는 전력분석 자료를 잘 이해하고 활용했다. 훗날 친정팀 LG에서 세이버메트릭스 등 데이터 활용 책임자인 퀄리티컨트롤 코치를 맡기도 했다.

데이터 야구를 맹신한 건 아니다. 1993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PO)를 돌아본 김동수 위원은 “패스트볼(직구) 타이밍 때 변화구 또는 그 반대로 하는 공 배합이 잘 통하다가, 경기 후반 치명적인 홈런을 맞았던 기억이 있다. 머리 회로가 멈춰버리더라. 30년 전 기억인데 생생하다”라고 했다. 이어 김 위원은 “실패한 승부에서 타자 또는 상대 벤치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기억하고, 데이터와 다른 말을 하는 결과도 복기해야 한다. 그래야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 결국 포수는 공 배합의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자신의 데이터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경험이 많은 포수는 공 배합만으로 상대 타자를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도 덧붙였다. 

2003년 10월 25일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투수 정민태와 기뻐하는 모습. IS포토

투수를 믿고 인정하라

김동수 위원은 한양대 재학 시절, 구대성·정민태, LG 시절 김용수·이상훈 등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대표하는 투수들과 호흡을 맞췄다. 한국과 일본 리그 대표 선수들이 나선 ‘한일 슈퍼게임’에서는 당대 최고의 투수였던 선동열의 공도 받아봤다. 

김동수 위원은 정상급 투수들과 배터리를 이루며 한 가지 확신을 가졌다. 이상적인 투수 리드는 결국 끈끈한 소통과 서로를 향한 믿음에서 나온다는 것. 

김동수 위원은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투수를 한다. 그만큼 자부심도 크다. 대체로 포수의 마음이 (투수를 향해) 열려 있는 게 낫다. 선배 투수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어 김 위원은 “나는 (프로 저연차 시절부터) 이광환 감독님이 포수에게 힘을 많이 실어주셨고, 선·후배 투수들도 나를 잘 따라줬다.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건 포수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라운드 밖에서 대화로 속내를 나누거나, 공 배합 오판을 인정하는 가벼운 제스처가 투수와의 관계에서 큰 도움이 됐다"라고도 귀띔했다. 

김동수 위원은 투수의 능력뿐 아니라 승부 성향, 그리고 성격까지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과거 김시진과 조계현, 유인구 위주의 승부를 즐겼던 투수들을 언급한 김 위원은 “두 선배는 별명이 ‘투 앤드 투(2볼-2스트라이크)’였다. 대체로 승부가 길었다. 포수가 ‘승부를 내자’고 사인을 해도, 자기 스타일을 고수한 것으로 안다. 그럴 땐 리드의 정석을 떠나, 투수의 스타일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투수가) 더 좋은 공을 던진다”라고 했다. 

현대 유니콘스 소속 시절. 홈에서 블로킹을 준비하는 모습. IS포토

기량이 부족한 투수를 리드할 때도 투수의 자신감을 믿으려고 했다. 김동수 위원은 “변화구가 약한 타자와 승부하는데, 우리 투수 변화구도 좋은 편이 아니면, 아무리 변화구 사인을 낼 타이밍이라고 해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럴 땐 투수가 던지고 싶은 공을 선택하는 게 바람직할 때도 있었다"라고 돌아봤다. 승부 결과를 확신할 수 없을 때, 투수가 원하는 공을 구사하도록 믿어주는 게 통했다는 의미다.

선수 생활 말년에도 김동수 위원은 후배 투수들을 향해 "내 리드를 따르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불편하면, 다른 포수와 호흡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김 위원은 "마음이 약한 선수는 대체로 '괜찮다'라고 하는데, 그게 능사가 아니다. 투수는 편안한 마음으로 던지는 게 중요하며, 그렇게 이끌 수 있는 포수가 안방을 지키는 게 맞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 위원은 여러 방식으로 투수의 자신감을 끌어내는 게 포수라고 강조한다. 

승부 결과에 포수를 향해 볼멘소리를 하는 투수도 있다. 감독도 결과만을 두고 평가할 때가 있다. 김동수 위원은 "그게 당연한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그렇고 욕먹고, 혼나면서 야구를 보는 눈이 깊어진다. 감독의 얘기를 투수에게 다 전할 수도 없기 때문에 '내가 더 잘 이끌어야 한다'라는 책임감도 생긴다"라고 말했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일간스포츠가 8회에 걸쳐 '포수의 신(信)'을 연재합니다. 한국 야구 대표 포수들이 투수와의 배터리 호흡을 통해 새긴 자신만의 '리드의 정석'을 소개합니다. 정답이 없는 공 배합, 누구도 답을 주지 않는 투수와의 관계에 대해 얘기합니다. 포수가 전하는 '인문학'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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