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정담]손병두 이사장 "온통, 내 최대 히트작이죠"…해변 산책서 엿본 소통경영
3대째 관료 집안…행시로 관료 입문
'금수저' 편견 싫어 집안 함구
거래소 본사 부산 소재…부산시장 지낸 아버지에 이어 부산과 인연
이사장 취임 후 소통 강화, 클라우드 시스템 구축 성과
편집자주 - '만보정담(萬步情談)'은 ‘하루만보 하루천자’ 운동의 하나로, 걷기를 사랑하는 명사와 함께 하는 코너입니다. 일과 삶, 건강과 행복 등을 주제로 함께 걸으면서 하는 인터뷰입니다.
"처음부터 행정고시를 볼 생각은 없었어요. 공직자 가족이라 제약이 많아 불만이 있었거든요. 할아버지는 행정가이지만 선출직인 정치를 하셨고, 아버지는 평생 공직에 계셨어요. 늘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게 부담이었지만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코스를 생각하다 보니 결국 행정고시밖에 없더라고요."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전형적인 엘리트 관료다. 그를 인터뷰한다고 하자 지인이 손 이사장의 프로필을 보고 '너무 뻔해서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만보정담' 코너에서 만난 그는 달랐다. '엘리트 관료'라는 수식어만으로 그를 평가했다고 하기에는 박하다. 부산 청사포에서 송정해수욕장까지 약 80분 동안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화려한 경력에 가린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3대째 관료 집안, 남의 시선 의식하는 삶에 거부감
손 이사장은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제33회 행정고시 재경직에 합격해 총무처 행정사무관으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할아버지(손영도 초대 대전시장), 아버지(손재식 전 국토통일원 장관)에 이어 3대째 공직자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 외화자금과장, 국제금융과장을 거쳐 금융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위에서 금융서비스국장, 금융정책국장, 상임위원, 부위원장(차관)까지 오른 후 2020년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취임했다. 올해 12월 임기가 만료된다.
-왜 불만이던 관료 생활을 시작했나요?
"할아버지가 낙선하고 집안이 풍비박산 났어요. 아버지는 당신이 대학 때부터 권리관계를 해결하러 다니셨죠. 정치에 혐오증이 있었어요. 공직에 있는 동안 이른바 '업자'들과 엮이기 싫어서 약속도 잡지 않고 도시락을 들고 다니셨죠. 그런 공직자 집안에서 자라다 보니 늘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게 불만이었어요. 처음에는 관료 생활에 뜻이 없었죠. 그런데 공직 외에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공부를 잘했는데 의대에 진학할 생각은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난 수학을 못 했어요"라며 웃었다. 그때 부산 청사포의 파도가 부서지며 바다 냄새가 진하게 밀려왔다.
-그렇다면 사법고시는 왜 안 봤나요?
"사시는 나랑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관심도 두지 않았어요. 또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재경직이 사시 못지않게 인기가 있었어요."
사실 최상목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도 서울대 법학과(82학번)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사법고시 대신 행정고시 재경직을 치렀다. 행정고시 재경직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린 시절부터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 싫다던 그는 결국 관료가 됐다. 다만 임관 후에도 자신의 집안 등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손 이사장은 "집안 등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고위직에 올라가면서부터였고 과장 때까지는 사람들이 몰랐다"며 "집안 이야기를 할 이유도 없고 남들이 '금수저'라고 편하게 살았겠다고 여기는 것도 싫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금수저'라는 단어가 불편하다는 손 이사장의 성품을 드러내는 일화가 있다. 기자가 8년 만에 다시 금융위를 출입했을 때 한 직원이 거래소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병두 형 잘 있냐"고 물었다. 그는 손 이사장이 금융위를 나갈 때 근태가 좋고 성실한 무기계약직 직원이 같은 보직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는 일화가 금융위 직원 사이에서 유명하다고 전했다.
아버지 따라 초등학교 4곳, 고교 3곳 다녀
한국거래소 본사가 부산에 있기 때문에 손 이사장은 1~2주에 한 번은 업무차 부산에 간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빡빡한 일정이 적지 않아 건강 관리를 위해 서울에서는 일주일에 두세 번 웨이트를 하고 달리기를 한다. 부산에 내려가면 좀 다르다.
손 이사장은 "걷는 것을 좋아한다"며 "부산에 오면 꼭 걷는다"고 말했다. 그는 "남들은 큰맘 먹고 한 번 올까 말까 한 곳을 자주 들러 산책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며 "마린시티 있는 곳에서 동백섬 지나 엘시티까지 걸으면 왕복 1시간 10분? 1만4000보 정도 나온다"고 말했다. 취임 초에는 같은 길을 가족들과도 자주 걸었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 하는 동안 걷고 또 걸었지만, 숨 한 번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와 걸은 부산 해운대 블루라인파크(청사포역)는 동해남부선 옛 철도시설을 친환경적으로 재개발한 해운대 관광특구의 핵심 관광 시설이다. 미포~청사포~송정에 이르는 4.8km 구간에 관광 열차와 걷기 좋은 산책로를 조성했다.
업무 때문에 부산에 자주 오지만 부산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손 이사장의 아버지는 19대(1980~1981년) 부산시장과 관선 경기도지사(1976년~1980년)를 지낸 손재식 전 통일부(국토통일원) 장관이다. 손 이사장의 공식 프로필에는 '인창고-서울대'라고 나오지만, 부산 동래고등학교에 1년 3개월 동안 다녔다.
-고등학교 때 전학을 두 번 갔다는데 힘들었겠어요.
"힘들었지. 아버지가 자식들을 데리고 다니길 원했어요. 보통 서울에 가족을 두는데, 자식들 케어를 못 했다고 생각하셨는지 둘째부터는 데리고 다니자고 생각하신 듯해요. 형은 서울에 머물고, 나와 여동생은 아버지를 따라다녔죠. 덕분에 초등학교도 4곳이나 다니고 고등학교도 3곳 다녔죠. 그래도 적응은 비교적 잘했어요."
덕분에 그는 국회 정무위에 각기 다른 고등학교 동창이 두 명이나 있다. 국민의힘 김희곤 의원은 부산 동래고,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은 인창고 동창이다.
성악 배워…거래소 이사장 취임 후 '평생 취미' 만들어
청사포에서 만난 손병두는 마치 해무를 품은 부산 같았다. 해무가 나타나면 순식간에 산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지며 자유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바뀐다. 그에게 취미 생활이 따로 있냐고 묻자 "지난해부터 성악 공부를 시작했다"고 답했다.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배워보니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았다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최고위 과정을 들었는데, 취미반으로 성악반을 택했죠. 의미를 잘 몰라도, 이탈리아 가곡을 외워서 부르면 성취감도 있더라고요. 우리끼리 만족할 공연도 두 번이나 했어요. 독일어를 외우고, 연기도 했죠. 5부 합창이라 남의 음 따라가지 않으려면 남들 노래도 알아야 하고, 정신줄도 놓지 않아야 하고. 전공자들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그래도 너무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금융위에 있을 때보다 표정이 더 밝아 보입니다.
"관직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죠. 자기 내공이 꽉 찬 사람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잖아요."
그에게 웃음이 많아졌다고 말하자 "금융위 부위원장 이임사를 할 때 그간 역할 연기하느라 힘들었다"며 "사회생활은 역할 연기인데, 금융위에서는 장관과 1급을 모셔야 해서 맘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래소에서는 엔터테인먼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治'에서 '營'으로…태블릿 보급, 익명 게시판 신설
손 이사장은 거래소 취임 이후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소통을 늘리는 데 힘을 쏟았다. 태블릿 보고, 익명 게시판 신설 등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관료 출신인데도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관심이 많다. 형식이 실질을 좌우하지 않습니까. 관료 생활하면서 지극히 형식적인 것에 불만이 좀 있었어요. 거래소는 민간기업으로 기대하고 왔어요. 그런데 나름 보수적이고 계급사회 같은 분위기가 있었어요. 공적인 업무를 하고, 당국과 밀접한 조직이라 그런지 경직적인 문화가 있어 직원 개개인이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형식을 바꾸면 실질이 바뀌겠다고 생각했죠.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요."
특히 그가 취임 후 클라우드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다. 한국거래소는 손 이사장 취임 전까지 클라우드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불과 3년 전까지 인사 발령이 나면 직원들이 PC를 들고 이동하거나 모니터를 들고 가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재택근무도 사실상 휴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클라우드 시스템 도입 이후 스마트 PC로 업무를 보고 진행 상황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익명 게시판을 만든 효과는?
"사람들은 대개 할까 말까 고민하다 하지 말자고 결론을 냅니다. 보수적이라서 그런 걸까요? 모든 게 소통 부재 탓이라 생각합니다. 거래소는 충분히 좋은 직장입니다. 그런데 취임 당시 직원들이 화가 나 있다고 느껴졌어요."
거래소 이사장은 거래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의전을 받고 정제된 이야기를 듣는 자리이기에 '어떤 지점에서 어떠한 경로로 그런 부분을 느꼈나'라고 물었다.
손 이사장은 "비서실 직원을 통해 들었고, 초반에는 블라인드도 봤다"고 답했다. 지금도 블라인드를 보냐고 묻자 그는 "익명 게시판인 '온통'을 만들었기 때문에 안 본다"고 말했다. 그는 "블라인드를 탈피해 건전하게 에너지를 끌어와 소통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온통을 만들었다"며 "개인적으로 온통을 최대 히트작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그가 거래소 이사장으로 왔을 때 관료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달라졌다. 다만 오는 12월에 그의 임기가 만료된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그는 금융 관련 민간 기업에는 3년간 취업할 수 없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그래서 '연봉 100억의 세상을 바꿀 혁신 기업 CEO' vs '연봉 3000만원의 유엔 사무총장' 중 어떤 것을 택하겠느냐고 묻자 "누구나 같은 대답을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12월 임기 마치고 평생 백수' vs '다시 공직자로 돌아가기'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고 묻자 "나는 노는 것도 좋아하고 잘한다. 다만 일 시키면 해야죠"라고 답했다.
그는 평생 제도를 만드는 관(官)에서 시장을 지원하는 기관에서 3년째를 보내고 있다. 그는 "한국거래소는 증시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만족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금융당국에 있을 때 비해서는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말 큰 이슈는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예컨대 공매도 문제는 이제 정치 이슈로 변해 금융위도 홀로 결정할 수 없고 범정부 차원의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산=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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