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어린이와 놀이공간] 한 가지 놀이라도 재료를 풍성하게

문정임 2023. 8. 2.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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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놀이 공간을 만들 때 생각해야 할 것들②
제주의 한 병설유치원 원아들이 흙놀이장에서 즐겁게 놀고 있다. 제주도교육청 제공

놀이 현장에선 의도하지 않았던 재료가 아이들의 사랑을 받기도 하고 그 반대의 상황이 생겨 교사들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제주의 여러 유치원을 방문해 보면 교사들이 야심차게 설치한 놀이 시설보다 모래나 흙, 물이 있는 곳에 아이들이 몰린다.

제주 함덕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유치원 앞 아담한 학교 숲을 놀이 공간으로 적극 활용하기로 하고, 동물 촉감 놀이대와 건너기 등 기성 제품을 설치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흙더미를 붓고, 해체한 물레방아를 재활용한 돌 탁자와 돌 의자를 가져다 두었다.

결과는 흙과 물레방아의 승리였다. 아이들은 흙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물을 부어 물길을 만들거나 흙을 끝없이 파헤쳤다. 물레방아 탁자 위에선 소꿉놀이를 했다. 주변 나무에서 떨어진 잔가지와 이파리 등을 가져와 흙과 함께 놀이 재료로 사용했다.

개당 200만원넘게 주고 산 고비용 동물 촉감 놀이대는 한두 번 타고는 더 이상 이용하지 않았다. 건너기 제품은 지나치게 안전을 고려해 흔들림 없이 고정된 형태로 제작되면서 이 역시 아이들이 찾지 않는 시설이 됐다.

함덕초 병설유치원 바깥 놀이 공간에 설치된 동물 촉감 놀이대. 고정된 형태이다 보니 아이들이 금방 흥미를 잃어 구입 이후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사진은 해당 유치원 교사가 놀이 기구 이용 방법을 보여주는 모습.


제주의 한 사립유치원에 설치된 3단 물놀이대. 배수구가 좁아 자주 막히면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


3단 물놀이대도 유치원 현장에선 애물단지다. 모래와 나뭇잎 등 이물질이 배수구를 막고, 외부인이 물을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도를 매번 잠갔다 열기를 반복해야 해 결국 사용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 공간을 크게 할애해 설치했는데, 막상 하고 나니 손이 많이 간다는 이야기다. 고가의 제품을 몇 번 사용한 뒤 버릴 수도 없고, 학교 입장에선 쓰기도 버리기도 어려운 제품이 되어 버린다.

서귀포 도순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아이들이 유치원 흙놀이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주도교육청 제공


아이들이 좋아하는 필승 아이템은 단연 흙과 모래다. 특히 흙산은 유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 공간이다. 도순초 병설유치원처럼 단단하게 형태를 잡아 잔디를 덮은 언덕형과 함덕초 병설유치원처럼 굴착기에서 막 내린 듯한 흙더미형 모두 인기가 좋다. 흙과 물이 만나는 곳에서 아이들은 과학적 상상력을 키우고 친구와 협동 놀이를 할 수 있다.

놀이터, 어떻게 채울까 고민되나요?
유치원 현장을 다니다보면 어떤 시설을 어느 만큼 들여야 할지 놀이공간 조성 형태를 두고 고민하는 교사들을 자주 보게 된다. 공간은 넓지 않은데 넣고 싶은 것은 많고, 예산은 부족하고, 교사들의 고민이 시작된다.

좁은 공간에 여러 시설을 들여놓으려고 하면서 문제는 시작된다. 놀이공간을 새롭게 구상할 때에는 공간의 규모와 특징부터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의 수도 중요하다. 원아가 많다면 여러 반이 함께 나와서 놀 수 있게 놀이 영역을 분류해 설치해야 한다. 원아가 적고 공간도 작다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할 놀이재료를 한두 가지라도 풍성하게 제공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게 낫다. 모래장 하나를 설치하더라도 형식적으로 만든 경우와 모래놀이에 사용할 수 있는 재료를 두루 갖춘 곳은 재미가 다르다.

8호까지 문을 연 순천 기적의 놀이터는 매 호 콘셉트는 다르지만 매번 모래장 설치에 공을 들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질 좋은 모래를 1m 이상 깊이 부어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모래장을 만드는 식이다. 모래 위에 테이블을 놓고, 가까이 물을 설치하는 것도 다양한 모래 놀이가 가능하게 하기 위한 장치다. 모래장 위에 햇빛 가림막을 설치하거나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펌프 형태로 설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생각한다는 건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놀이의 종류는 무궁무진하고 모든 것을 유치원이 제공할 수는 없다. 놀이터가 알록달록 예쁘고 화려해야 한다는 것도 어른들에게나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은 즐겁지만 어른들의 눈엔 심심해 보이는 놀이 공간도 있을 수 있다.

넓은 장소가 있다면 그곳을 비워 집단놀이의 장소로 활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학원가기에 바쁜 요즘 아이들에게 유치원과 학교는 여러 친구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골목이 사라지면서 넓은 공간을 발견할 수 있는 곳도 유치원과 학교가 유일해졌다.

중요한 건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놀이 재료를 쥐여주는 일이다. 그리고 놀이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관리자에게 보고할 때 교사들에게 필요한 건 확신이다. “이런 공간이 아이들에겐 더 재미있어요!”라고 말을 꺼낼 수 있어야 한다.

40년간 세계 각지의 놀이터 제작에 참여해 온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는 지난 2016년 순천시가 주최한 제1호 기적의 놀이터 오픈 기념 국제 심포지엄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어른들은 자신이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은 윤색되고 퇴색되어 오늘에 이르렀죠. 우리는 어른의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관찰해 그것을 놀이터에 담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놀이터를 만들기 전에 우선 아이들의 생각을 먼저 들어보라는 이야기다. <끝>

글·사진=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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