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리뷰] ‘콘크리트 유토피아’ 혐오의 혐오의 혐오

정진영 2023. 8. 2.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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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우리 아파트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살기 좋은 아파트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김영탁(이병헌)은 이 같이 말한다. 대지진 속에서도 살아남은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영탁의 이 말에 환호한다. 폐허로 변해버린 삭막한 풍경 속에서 신명나게 울려 퍼지는 노래 ‘아파트’는 섬뜩한 이질감을 만들어낸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배경은 대지진이 일어난 서울이다. 모든 곳이 무너졌지만 황궁 아파트만은 어쩐지 무너지지 않고 서 있다. 운이 좋다고 생각했던 주민들은 곧 자신들이 선택받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부터 고민이 생긴다. 행운은 타인과 나눌 수 있지만 하늘로부터 받은 선택은 그렇지 않다.

특히나 가진 것을 나눠야 할 대상이 평소 자신을 차별하고 미워했던 이라면 고민은 더 깊어진다. 황궁 아파트 사람들에게 건너편 드림팰리스 주민들이 그렇다. 그들은 평소 황궁 아파트를 무시하고 교류를 차단해왔다. 황궁 아파트로 몰려오는 드림팰리스 생존자들을 보면서 ‘과연 무너지지 않은 게 드림팰리스라면 그들은 우리에게 쉴 곳을 나눠줬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건 일견 당연하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배경은 아파트다. 아파트가 어떤 존재인가. 집값이 떨어져도 아파트만은 굳건하리라는 ‘아파트 불패신화’의 주인공, 한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주거 형태다. 이제는 아파트 안에서 온갖 커뮤니티 활동이 이뤄지고 단지 내에 초등학교가 있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만큼 삶에서 떼려야 떼기 어려운 장소인 것이다. 때문에 아파트를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짙은 현실감을 부여하고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며칠 전엔가 뉴스에서 봤던 것만 같은 내용들이 스크린에서 펼쳐진다.

대지진이라는 극단적 재난 상황 속에서도 “아파트는 주민의 것”을 외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주민들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실소를 터뜨리게 한다. 이 작품은 재난 영화의 외피를 쓴 블랙코미디다. 배우들의 능청스런 연기와 우스꽝스러운 연출로도 결코 웃을 수 없는 날카로운 코미디.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도대체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왜 매서운 추위 속에 외부인들을 내몰지 말지를 고민하게 됐을까. 드림팰리스 주민들이 평소 황궁 아파트 주민들을 무시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왜 드림팰리스 주민들은 집 하나를 가지고 알량한 자부심을 행사하게 됐을까.

혐오는 누가 끊어내지 않는 이상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혐오의 대상이 된 사람에게 대응할 명분을 주기 때문이다. 과연 누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용기를 먼저 낼 수 있을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130분 동안 관객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병헌을 위시한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김도윤 등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 실제 아파트 세트를 구축해서 촬영했다는 이 작품은 구석구석이 현실적이고, 엄태화 감독은 이 배경을 때로는 섬뜩하게,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활용한다. 한 번은 이야기의 스토리를 따라가고, 한 번은 곳곳의 디테일을 찾으며 봐도 재미있겠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현실감 있어 때로 거부감이 드는 것은 문제 아닌 문제다. 오는 9일 개봉. 15세 관람가. 130분.

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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