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칼럼] 우주항공청 하나 못 만드는 ‘일하는 국회’
하지만 항공우주산업 현장은 자본과 인력 부족에 시달려
국회, 말로만 민생 외치지 말고 당장 급한 법안부터 처리해야
항공우주산업에 물이 들어온다. 몇몇 선진국이 100여년 전부터 독점했던 시장에 드디어 끼어들 틈이 생겼다. 우리의 기술력은 미국에 비해 50~60% 수준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진정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다국적컨설팅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생산거점으로서 한국이 가진 매력을 세계 4위권으로 평가했다. 글로벌 시장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2021년 8000억 달러였던 매출액은 2030년 1조3400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과 기술의 진입장벽이 높은 장주기 산업의 생산 사이클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노를 저어야 한다.
누리호 3차 발사 성공, 경전투기 FA-50 수출 계약체결, 차세대전투기 KF-21 개발 성공 소식이 겹쳐지면서 항공우주산업은 새로운 미래먹거리로 급부상했다. 보잉 등이 장악한 여객기 제작은 일본마저 실패하고 접은 분야지만 미래항공모빌리티(AAM)는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뉴 스페이스 시대 만큼은 그냥 쳐다보며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누리호가 저궤도위성 수십기를 쏘아올려 6G 통신시스템을 구축하고, AI 시스템으로 자율운항이 이뤄지는 AAM이 한강 상공을 줄지어 날아다니는 미래 조감도가 전혀 낯설지 않게 됐다.
그런데 정작 항공우주산업의 현장은 이런 장밋빛이 아니다. 경남 사천 항공국가산업단지에는 나사 스페이스센터나 보잉팩토리가 보여주는 화려함은 없다. 대부분 공작기계로 가득찬 평범한 공장이다. 한 곳에서 냉장고만한 알루미늄 덩어리를 깎아 비행기 날개에 들어갈 부속을 만들고, 다른 곳에서 그것을 받아 도금하는 식이다. 이렇게 전문 분야가 다른 기업들이 공정을 이어가며 보잉에 납품할 비행기 날개 한쪽을 만든다. 엄격한 품질 기준도 당연히 통과해야 한다. 전형적인 기술·자본 집약적 소부장 산업이다. 비행기 1대에 들어가는 부품이 200만개, 역대 최고라는 올해의 보잉 수주량이 550여대이니 대량생산은 없다. 한대에 수십억원씩하는 기계를 수십대 들여와야 하고, 그것을 다룰 숙련된 기술자를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도 아직 납품에 목을 매는 협력업체 단계여서 수익률이 형편없다.
공장이 없으면 미래먹거리는 허상이다. 세계 4위권 생산거점이라는 PwC 평가는 이런 중소기업들이 40년 가까이 노력한 결과가 드디어 빛을 볼 가능성이 생겼다는 뜻이다. 외국 것을 돈으로 사서 쏘아올리는 아랍에미리트 방식의 우주탐사를 바라는 게 아니라면 기계를 돌려 금속을 깎는 게 항공우주산업의 본질이라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우주항공청을 만드는 이유가 여기 있다. 화려함 뒤에 숨은 구슬땀을 효과적으로 지원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세계 최초로 화성에 유인우주선을 보내는 게 아니다. 하지만 미래기술을 확보해 기업이 활용케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관련 산업을 세계 최고로 키우자는 현실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
21대 국회는 개원 첫해에 ‘일하는 국회법’이라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더불어민주당이 당론 1호 법안으로 추진한 개혁 법안이다. 모든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매달 3회 이상 열도록 의무화한 것이 핵심이다.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가 합의한 법안은 대부분 본회의까지 신속하게 처리된다. 그렇기에 꼭 필요한 민생법안이 정쟁에 미뤄지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를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개정 이후 일하는 국회법은 철저하게 무시됐다. 알고 보니 일 안하는 국회였다는 냉소가 쏟아졌다. 지금도 국회에는 밀린 숙제가 쌓여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당장 고쳐야 할 법안이 42개다.
하지만 의원들은 관심이 없다. 자신들에게 적용되는 공직선거법조차 헌재가 정한 시한을 넘겼다. 야간옥외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은 13년 전에 고쳤어야 했다. 이런 직무유기에 우주항공청이라고 무사할 리 없다. 새로운 정부조직이 생겨 업무 이관이 예고되면 기존 조직은 손을 놓는다. 인지상정이니 그러지 말라고, 더 잘하라고 닦달할 수도 없다. 지금 우주항공산업이 그 함정에 빠졌다. 현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언제 끝날 지 모른다”고 발을 구른다. 의원들이 서로 싸우고 욕하는 것은 안 보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할 일 안 하고 버티는 건 곤란하다. 눈물을 삼키는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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