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낯섦을 환영하는 마음
선명한 다양성이 보장되고
빛나는 사회가 ‘건강한 소셜’
“너, 유튜브 첫 페이지 보여줄 수 있어?” 친구를 만나면 농담조로 물어보는 질문이다. 유튜브 추천 페이지는 꾸며낸 이력서보다 솔직하게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관심사가 무엇인지, 누굴 좋아하는지, 정치 성향은 물론 심지어 경제 상황까지도 드러난다. 맞춤 알고리즘은 놀랍다. 코카콜라의 맛 이후로 이토록 미스터리하면서도 모두가 그 위대함에 공감하는 비밀이 또 있을까? 도대체 어떤 마법의 코드가 첨가됐는지 모르겠지만 유튜브는 언제나 자신만만하게 나를 홀릴 콘텐츠를 추천한다.
소셜 네트워크의 어디가 ‘소셜’한 건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알고리즘 추천으로 뜨는 콘텐츠들이 촘촘히 나와 관련한다. 내가 가고 싶을 만한 카페, 실패 없이 웃긴 콘텐츠, 팔로우 한 적 없지만 선망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인플루언서가 추천된다. 알고리즘은 관상에도 능해 추천하는 새로운 셀럽이 모두 내 스타일이다. 모든 피드가 독심술사의 꾀처럼 느껴진다. 정말이지 ‘소셜 네트워크’를 ‘에고 네트워크’로 바꿔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어쩌면 현대인의 자의식은 알고리즘과 나의 합작품일지도 모른다. 네트워크의 편협한 울타리에 갇혀 나와 같은 것들만 보기 쉬워진 세상이다. 소셜 네트워크에 오래 머무를수록 사회성은 떨어지고 에고만 짙어질까 걱정이 된다.
관심 경제에서는 ‘내 관심사’가 아닌 것들을 제안하지 않는다. 내 관심을 끌 확률이 낮다면 비즈니스적으로 실패한 모형이다. ‘취향’과 ‘커뮤니티’가 비즈니스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뒤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이어주는 ‘취향 커뮤니티 플랫폼’이 흥행했다. 관심사 기반의 독서 모임, 취향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모임, 동종 업계 커뮤니티 등 공통점을 바탕으로 설계된 커뮤니티들은 느슨한 연대라는 트렌드 뒤에서 다양성보다는 유사성을 강조했다. 비슷한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은 확실히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지만 개인화되는 사회의 대안인 커뮤니티가 오히려 개인을 더 고립시킬지도 모른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교환되는 ‘나’에 대한 정보는 사실 나와 유사한 성향의 ‘남’이 관심 가질 만한 것들이다. 비슷한 것들의 전투가 된 관심 경쟁 속에서 희미해지고 희귀해지는 개인의 고유함이다. 나로 꽉 찬 세상에서 ‘진짜 나’를 모르겠는 아이러니를 극복하기 위해선 나로부터 나와야 한다. 나와는 먼 세상을, 내가 아닌 다른 것을 보아야 한다. 외부 세계에 반응하는 성질인 감수성은 개인을 더 고유하게 만드는 성질이다. 낯선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개개인의 감수성이 풍부한 사회, 선명한 다양성이 보장되고 빛나는 사회야말로 ‘건강한 소셜’이다.
윌바 칼손의 ’내가 아닌 누군가를 생각해’는 주인공 올리비아가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시작되는 그림책이다. 올리비아는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을 하는 어느 곳에도 있는 누군가를’ 생각한다.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사람이 된다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본다. 자신이 아닌 여러 다른 사람이 되어 보고 나서야 올리비아는 ‘나는 나야, 나는 세상에 내가 있어서 좋아’라고 확신한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지만 마지막 장을 넘길 땐 만세를 하며 ‘그래 나는 나야’라고 외치게 된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이, 네가 너일 수 있기 때문임을 알게 되면 낯선 타인과 우리로 엮일 가능성이 생긴다. 그 가능성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 같다.
나를 생각하기를 멈추고 낯선 것들을 생각하는 여름을 보내고 싶다. 미술관에서 다른 시대의 세계를 탐미하거나, 모르는 작가의 소설 속 악당이 되어 보고, 뉴스나 신문에서조차 들을 수 없었던 어떤 억울한 마음들을 듣고 싶다. 내 시선이 미지로 향할수록 다름 아닌 나를 더 잘 보게 되고 알게 될 것 같다. 낯섦을 열렬히 환영하는 마음과 미지의 세계를 이유 없이 사랑하는 마음. 이 마음의 빛으로 아름답고 건강하게 물든 여름을 보내고 싶다.
정유라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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