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간판만 특별한 ‘특별 자치도’

2023. 8. 2.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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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혜수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전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원장

무늬가 화려한 비단도 재질이 받쳐주지 못하면 소비자가 외면한다. 비단의 가치는 다채로운 색상과 문양에 더해 특유의 질감에 의해 매겨지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지방정부의 간판을 바꿔도 실질적 법적 권한이 부족하면 지역 발전에 제대로 기여하기 어렵다.

소멸 위기에 내몰린 지방정부는 ‘특별자치’에 주목한다. 강원도는 지난 6월 특별자치도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전라북도는 내년 1월 출범한다. 충청북도는 준비 중이고, 경기도는 지난 6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추진을 위한 도민 숙의 공론화를 시작했다. 제주도(2006년)와 세종시(2012년)를 포함해 4개가 이미 특별자치 지위를 얻었고, 2개는 준비 중이다.

「 강원도 이어 전북·충북 등 준비
중앙정부 권한·예산 이양 작아
지역특성에 맞는 ‘특례’ 도입을

김지윤 기자

특별자치도는 ‘특별히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가진 도’를 뜻하는데, 2006년 출범한 제주도가 원조다. 특별자치도 작명에 관한 에피소드 한 토막이 떠오른다. 제주도 연구진은 ‘분권 특별도’와 ‘분권 시범도’를 유력하게 검토했으나, 보고를 받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특별자치도’를 제안해 지금처럼 결정됐다.

서울특별시는 수도에 근거해 특별한 지위(지위 특례)를 갖기 때문에 서울시장은 다른 시·도지사(차관급)보다 높은 장관급이다. 제주도는 높은 자치권(권한 특례)을 누리지만, 지위가 동일해 특별도의 명칭을 쓰기 어려웠다. 그래서 살짝 비튼 특별자치도는 ‘신의 한 수’였고 2012년 세종시에 대해서는 큰 고민 없이 특별자치시로 할 수 있었다.

제주도는 기획재정부 등의 반대에 부딪혀 국세(부가가치세)를 지방세로 이양하는 특례를 얻지 못했으나 그야말로 특별한 자치권을 받았다. 첫째, 행정 특례다. 조례에 의한 자율적 조직 설치권을 비롯해 특별행정기관의 이관과 자치경찰제 도입이 가능했다.

둘째, 재정 특례는 더 파격적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1.57%에다 지방교부세의 3% 특례까지 받았다. 지방교부세는 인구수에 의해 결정되는데, 당시 제주도 인구는 56만 명으로 전국의 1% 남짓 됐으니 대단한 특례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국제자유도시를 위한 산업 진흥과 규제 완화 등의 특례도 받았다. 이런 특례에 힘입어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올해까지 인구 20.7%, 지방세수 4.3배, 지역총생산(GRDP) 2.4배 증가라는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수도권 집중 억제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추진된 세종시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법적 지위였다. 중앙정부는 ‘교육 명품 도시’를 위해 교육자치권을 갖는 광역단체를 역설했으나 충청남도는 기초단체로 해야 한다고 맞섰다. 세종시는 우여곡절 끝에 광역단체가 됐으나 간판에 어울리는 기본 특례를 받지 못했다.

지방교부세 수요보정 특례(기준재정수요액-기준재정수입액의 25%를 기준재정수요액에 더해 줌)를 받았으나 기준재정수입액이 늘어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세종시의 조직 설치 특례는 조례에 의한 자율 결정이 아니라 행정 수요에 따른다는 모호한 규정에 갇혀 있다. 더구나 지역 발전을 위해 필요한 산업 진흥 특례는 아예 없다. 이 때문에 세종시는 전국 인구 비율이 0.75%에 그쳐 수도권 인구 분산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 수준에 비하면 강원도와 전라북도의 특례도 한참 밑돈다. 간판에 어울리는 권한과 재원을 대폭 넘겨야 한다. 기본적으로 특별자치도의 조직과 정원을 조례로 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재정 특례 강화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주도에 주어진 지방교부세 특례뿐 아니라 지방소비세 특례도 필요하다. 지방소비세를 계산할 때 지역별 가중치를 수도권 100, 광역시 200, 도 300으로 차등 부여하고 있는데, 특별자치도는 400의 가중치를 줘야 한다. 지역 경제를 옥죄고 있는 규제를 완화하는 특례도 필요하다. 군사·첨단산업·산림·농업·환경 등에 관한 과잉 규제를 정비해 지역 자립과 경쟁력 강화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특별자치는 동전의 양면이다. 앞면에는 이름이, 뒷면에는 특례가 있다. 특별자치는 지역 특성에 맞는 풍성한 특례를 가져야 이름값을 할 수 있다. 간판과 외양만 화려한 특별자치로는 지역 소멸의 위기를 넘을 수 없다. 무늬만 특별자치는 곤란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전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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