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시선] 애플이 스포츠를 먹는다면

정제원 2023. 8. 2.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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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원 스포츠디렉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최강 팀 맨체스터 시티가 한국에 왔다. TV로만 보던 괴물 공격수 엘링 홀란을 한국에서 볼 수 있다니 ‘꿈인가’ 싶다. 더구나 스페인의 명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맞대결을 펼친다는 소식에 가슴이 뛴다. 그런데 이 경기를 어떻게 봐야 하나. 일단 TV에서는 볼 수 없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도 중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하나. 답은 ‘쿠팡’이었다. 로켓 배송 전문업체 쿠팡이 유럽 최고 프로축구팀들의 빅매치를 중계한다니 좀 낯설다. 단, 돈을 내고 회원 가입을 하지 않으면 중계를 볼 수 없다. 지난달 30일 일어난 일이다.

「 스포츠 중계도 스트리밍이 대세
손흥민·메시 경기도 돈내고 봐야
콘텐트 통한 ‘소프트 파워’ 확보전

스포츠 중계는 ‘스트리밍’이 대세다. 말 그대로 스포츠 콘텐트는 유무선 통신망을 타고 소비자의 곁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든다. 쿠팡이 그렇고, 포털 사이트의 중계가 그렇다. 스마트폰을 통해서 스포츠를 즐기는 건 이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스포츠 중계를 시청하기 위해 TV 수상기 앞으로 몰려가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에도 스포츠 콘텐트가 넘쳐난다.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동영상 서비스(OTT) 기업이 지구촌 곳곳의 스포츠 이벤트를 생생하게 중계해주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스포츠를 접하기 위해선 유료 채널과 OTT 등 복수의 업체에 각각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리미어리그 손흥민이나 메이저리그 류현진의 경기를 시청하려면 케이블 채널 SPOTV에 돈을 내야 한다. 그런데 내일 부산에서 열리는 파리생제르맹과 K리그 전북 현대의 경기를 보려면 쿠팡플레이에 가입해야 한다. 스포츠 팬 입장에선 여간 답답하고 불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국민 영웅 손흥민과 류현진의 경기를 돈을 내고 보라고?

이런 상황은 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에서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하려면 위성방송 스카이스포츠에 가입해야 한다. 그런데 스카이스포츠도 전 경기를 다 커버하지 못한다. 스카이스포츠가 중계하지 않는 다른 경기는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봐야 한다.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하려면 또 돈이 든다.

넷플릭스·디즈니 플러스를 비롯한 OTT의 약진은 괄목할 만하다. 이들은 드라마나 영화로는 모자라 최근엔 스포츠 중계권 시장에 뛰어들었다. 세계 최고의 빅테크 기업 애플이 운영하는 애플TV도 예외가 아니다. 애플TV는 특히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의 독점 중계권을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이 축구 경기를 중계한다니 어딘가 어색하다. 스마트폰 판매 매출이 아직도 전체 매출의 50%를 넘는다는 애플, 최근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돌파한 애플이 왜 스포츠 중계권 시장에 뛰어든 걸까.

애플은 더는 제조 기업(스마트폰)이 아니다. 플랫폼 기업(애플TV)에 안주하지 않는다. 소프트 파워로 승부하는 콘텐트 기업으로 진화 중이다. 애플 스토어, 애플 뮤직, 애플 뉴스 등으로 소비자를 향해 다가서고 있다.

‘축구 황제’ 리오넬 메시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제안을 뿌리치고 미국 인터 마이애미로 이적한 배경을 살펴보면 애플의 빅픽처가 보인다. 메시는 사우디의 알힐랄이 내건 4억 유로(약 5700억원)의 연봉을 포기하고 미국 행을 선택했다. 그가 마이애미에서 받는 연봉은 7분의 1 수준인 6000만 달러(774억원)다. 그는 대신 메이저리그사커 중계권을 가진 애플TV로부터 수익을 배분받기로 했다. 애플TV가 가입자로부터 받는 구독료의 일정 부분은 메시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애플은 세계적인 스타 메시를 앞세워 메이저리그사커를 띄우겠다는 심산이다. 소셜미디어 팔로워가 4억명을 넘는 메시의 스타 파워를 통해 애플TV의 가입자를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더구나 아르헨티나 출신 메시가 활약하는 메이저리그사커의 인기가 높아지면 아이폰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애플은 특히 남아메리카의 안드로이드폰 사용자들이 애플TV 중계를 보기 위해 아이폰으로 갈아타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모자라 애플은 최근 증강현실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비전프로’를 출시했다. 헤드셋을 쓰면 가상현실이 눈앞에 펼쳐지는 최첨단 기기다. 스포츠 콘텐트를 즐기기에 이보다 적합한 기기가 있을 수 없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매체 디애슬레틱은 최근 스포츠 미디어 분석가 에드 데써와의 인터뷰를 통해 “애플이 메이저리그사커를 통한 실험에 성공하면 미국프로농구(NBA)나 미국프로풋볼(NFL)의 문을 두드리는 건 시간문제”라고 주장했다. 스포츠를 통한 애플의 땅따먹기 전략은 이제 막 첫 삽을 뜬 셈이다.

정제원 스포츠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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