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무의 휴먼 & 펫] 책임지는 자세
집에 들어가면 루미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소파나 거실 한가운데 편안하게 누워 있다. 이 고양이의 이름이 처음부터 루미는 아니었다. 8년 전 진눈깨비가 휘날리던 어느 날 어둠을 뚫고 퀵 아저씨가 내가 일하고 있는 동물병원으로 보냉백을 하나 배달했다. 보냉백에는 ‘박종무 원장님께’라는 편지 봉투가 하나 붙어 있었다. 편지의 사연은 집 근처에 재개발이 진행되는데 그곳에서 새끼 고양이를 구조했단다. 너무 예쁘게 생겨서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은 취준생이라 돌볼 형편이 아니지만 나중에 꼭 데리러 올 테니 잘 돌봐달라는 내용이었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던 새끼 고양이를 치료하고 여차여차 함께 살게 되었다. 그렇게 루미는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지만 그 이후로 엘리자베스를 맡긴 사람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은 없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길고양이는 구조 대상이 아니다. 그냥 길에서 살아가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어미를 잃었거나 상태가 안 좋은 새끼 고양이는 구청에 구조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구조된 새끼 고양이는 유기동물보호소에 보내지는데, 구조된 동물은 10일이 지나도록 입양이 되지 않으면 안락사 된다. 그런데 보호소로 보내진 새끼 고양이에게 더 큰 문제는 안락사보다 자연사이다. 2020년 통계를 보면 유기동물보호소에 구조된 고양이 중 안락사 된 고양이는 5.2%이고 자연사한 고양이는 49.7%였다. 안락사 되기 전에 면역력이 약한 새끼 고양이들은 자연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끼 고양이는 동물 구조 요청만 한다고 끝이 아니다. 자신이 키울 수 없는 형편이라면 자발적으로 돌봐줄 수 있는 입양처를 구해줘야 한다. 동물 구조는 마음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책임있는 행동이 필수다.
박종무 평생피부과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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