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컷] 한국 아파트 잔혹극…그보다 끔찍한 현실
올여름 한국영화 빅4 중 ‘콘크리트 유토피아’(9일 개봉)는 극한의 재난 속에 아파트로 나뉜 계급, 집단 이기주의의 민낯을 드러낸다. 대지진이 집어삼킨 폐허에서 오직 아파트 한 채만 살아남았다. 살려고 몰려온 외부인을 받아줄지를 두고 입주자들은 충돌한다.
원작 웹툰에 기반한 만화 같은 상상이지만, 실화를 모티브로 한 다른 경쟁작보다 되레 더 현실적이다. ‘아파트 공화국’ 한국의 실정을 은유한 듯한 대목 때문이다. 90도로 꺾어지고 고꾸라진 아파트 무덤 속에 홀로 우뚝 솟은 ‘황궁 아파트’는 배우 이병헌이 연기한 주민 영탁의 말처럼 “선택받은” 곳의 위용을 과시한다. ‘우리 가족 살기도 벅찬데…’ 라는 당장의 볼멘소리 앞에 “다 같이 살 방법을 찾자”는 소수의 목소리는 힘을 잃는다. ‘선택받은 아파트’를 놓고 서로 죽고 죽이는 유혈극이 펼쳐진다. 영화 ‘부산행’ 같은 좀비는 없이도, 사람들이 만든 지옥도가 섬뜩할 뿐이다.
영화의 반어법적 제목은 한국 아파트 문화를 연구한 박해천(동양대 디자인학부) 교수의 동명 학술서에 빚졌다. ‘아파트 만능주의’는 우리를 어떤 결말로 몰아갈까. 연출을 맡은 엄태화 감독은 피카소의 명작 ‘게르니카’를 참고했다고 한다. 한국의 아파트를 보고 나치·파시스트의 폭격에 쓰러져간 스페인 어느 마을 사람들의 절규를 연상하다니….
이런 ‘웃픈’ 얘기도 있다. 최근 언론시사회에서 주연 이병헌은 “세상이 다 무너졌는데 아파트 하나만 남았단 설정을 지인이 듣더니 대뜸 ‘어느 시공사냐’ 묻더라” 했다. 철근 빼먹은 ‘순살 아파트’ 탓이다. 스크린 밖 현실이 때론 영화를 압도한다.
나원정 문화부 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이에게 집안일만 가르쳤다…부족 같은 이 가족이 사는 법 | 중앙일보
- '1조 기부왕' 99세 이종환, 가사도우미 성추행 무혐의 결론났다 | 중앙일보
- 文은 '조국 임명' 꺼냈다…정국 뒤흔든 총선 전 대통령의 휴가 | 중앙일보
- 韓학교에 연봉 넘는 돈 떼였다…한국 가지도 못한 베트남인 무슨 일 | 중앙일보
- 올해 벌써 3명 사망…"검은 옷에 향수 뿌리면 큰일난다" | 중앙일보
- 괌 태풍 두달, 韓여행객 돌아왔다…'인생사진' 비밀 명소 어디 | 중앙일보
- [단독] 유독 '작년 말 올해 초' 몰렸다, 이화영 면회 간 野의원들 | 중앙일보
- 임영웅·BTS 이름 대고 수억 뜯어냈다…사인도 위조한 그들 수법 | 중앙일보
- 누구는 80장 걸고 누구는 0장…현수막도 특권, 희한한 법 [도 넘은 현수막 정치] | 중앙일보
- 사람 잡는 폭염에 진드기·모기까지…'생존게임' 된 새만금 잼버리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