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한 해병대 채수근 상병, 여전히 유효한 'D.P.'의 질문

하성태 2023. 8. 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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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작가의 이야기 따라잡기 시즌2] 28일 공개된 < D.P. > 시즌2

[하성태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 시즌2 스틸 이미지
ⓒ Netflix
 
"여전히 변한 게 없네. 하나도… 내가 부탁했잖아. 책임져 달라고."

< D.P. > 시즌2 속 안준호(정해인)는 자꾸 조석봉(조현철)이 어른거린다. 말도 걸고 채근도 한다. 군대는 하나도 변한 게 없다면서. 안준호는 그 채근이 마치 너한테도 책임은 있는 것 아니냐는 말로 들리는 것 같다. 안준호에게 나타난 조석봉 모습은 안준호의 상상이 만들어낸 비현실이다.

현실은 자명하다. 여전히 변한 게 없다. 누군가는 여전히 탈영을 하고, 또 누군가는 고참들한테 가혹행위를 당하고, 왕따를 당한다. 군대는 군대다. 국방부 시계는 느리게 돌아가고, 군대라는 조직은 바뀔 생각이 없다. 시즌1 말미 가혹행위를 당하다 못해 폭발한 조석봉이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켰음에도 변한 건 없다. 군대 밖 시계만 조금은 빨리 회전한다.

"저는요, 그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너무 싫어요."

시즌1에서 탈영했다 자살한 동생을 왜 지켜주지 못했느냐며 "그렇게 착하고 성실한 애가 괴롭힘 당할 때 왜 보고만 있었냐"던 신혜연(이설)은 시즌2에서 군 인권센터 간사가 됐다. 군이 지켜주지 못한 장병들을 위해 국가를 상대로 건 소송의 주체로 나선다. 신혜연은 군대 밖 일반 장병들의 가족과 사회의 심리를 대변하는 인물일 터다.

그의 입을 통해 삐져나온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은 군 관련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군의 단골 해명일 것이다. 시즌2 말미 신혜연은 동생이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고, 답을 알려주지 않는 군으로 인해 본인이, 가족이 겪은 고통을 끝내 토로해 보지도 못한 채 울먹인다. 군은 변한 게 없고, 군이 쌓아올린 자기들만의 철옹성도 쉽게 무너뜨릴 수 없다.

숱한 군필자들의 군 관련 트라우마를 일깨웠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 시즌2는 그 철옹성에 균열을 내기 위한 대중예술적인 시도다. 시즌1이 탈영병 잡는 ' Deserter Pursuit', 즉 '군무이탈 체포 전담조'인 신참 안준호와 고참 한호열(구교환)의 유사 수사극이었다면 2년여 만에 동일한 배우들과 제작진이 고스란히 의기투합한 시즌2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군이란 철옹성 시스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면서 무언가 바꿔보려고, 책임을 지려고 안간힘을 쓰는 안준호와 육군 제103보병사단 헌병대 D.P. 팀의 분투를 그린다. 서사의 심리적, 물리적 사이즈를 조금 넓히는 동시에 사회파 드라마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한편 본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주제와 소재를 취한 것이다.

< D.P. >의 유효한 질문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고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시즌2 개별 에피소드 내내 바뀌지 않던 오프닝 자막이 딱 한 번 바뀐다. 6화에서다. 그 전까지 자막은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는 대한민국 병영법 제3조였다. 시즌2가 재차, 더 세고 직설적으로 군과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상징적인 장치다.

개별 에피소드의 연번을 새로운 1이 아니라 7로 시작하는 시즌2는 시즌1과의 연속성이 강조되는데 그건 조석봉 사건의 여파 때문이다. 안준호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말을 잃은 한호열은 국군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사건의 책임으로 박범구(김성균)와 임지섭(손석구)은 국군본부 검찰부의 조사를 받는 신세다. 그 와중에 새로운 사건이 터진다. 조석봉의 친구이자 동기인 김루리가 총기 난사 및 무장 탈영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 D.P. > 시리즈의 시간적 배경은 2014년~2015년이다. 선임병들의 가혹행위와 집단구타로 후임이 사망한 '윤일병 사건', 사병의 총기 난사로 병사와 부사관 등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친 '임병장 사건' 모두 2014년에 발생했다. 시즌2 전편을 지배하는 김루리 일병 사건은 이 두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볼 수 있다.

역시나 영민하면서도 필연적인 선택이다. 특히 김루리란 캐릭터는 총기난사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하고 슬픈 설정을 극대화한다. 또 안준호와의 개연성을 놓치 않으면서 시즌1보다 더 구체적이고 거시적인 최종 빌런(악당)으로 군 검찰을 비롯한 군 수뇌부, 그리고 국가를 상정하기 위한 포석이라 할 수 있다.

공개 직후, 일말의 "책임"을 지기 위해 희생도 마다 않는 안준호와 D.P. 식구들의 분투는 다분히 드라마적인 설정이란 비판도 없지 없다. 하지만 사건을 법정으로까지 끌고 가 일정 정도 '국가의 책임'을 이끌어내는 시즌2의 주제는 디테일한 묘사로 호평을 받았던 시즌1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명확해졌다. 그것이 액션을 확대하고 규모를 키우기 위한 속편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주제가 훼손될 정도는 아니다. 이를 테면 이런 장면.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해서 사람을 죽여도 되느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혹행위를 했다고 해서 죽어 마땅하느냐, 물론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 같은 군인 때문에, 눈 앞에 사람이 죽어가는데 명령만 기다리면서 방관을 하는 건 저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그럼 그 개인들은 무엇 때문에 함께 모여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서 군대에 왔습니까. 그들은 모두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를 왔습니다. 같이 생활하다 누가 누구를 죽이는 일이 발생했는데, 나라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증거가 없다?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다. 아니 그럼 그런 나라를 위해서 그들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군인이 됐습니까?"

12화에서 증인으로 법정에선 임지섭 대위가 군에게, 국가에게 묻는다. 명령에 복종하는 일선의 사병들이, 간부들이 무엇을 위해서 군인이 됐느냐고. 헌법 34조를 끌고 들어온 시즌2의 주제다. 이 일장연설에, 현실에서 어려울 법한 내부고발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하여 시즌2는 차근차근 캐릭터와 사건들을 쌓아올리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이 법정극의 의미나 드라마적인 구현만으로도 < D.P. > 시즌2는 제 할 일을 성실히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 D.P. >의 여전한 가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 시즌2 스틸 이미지
ⓒ Netflix
 
제작비 대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들은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한다. 넷플릭스를 먹여 살리고 있는 한국 콘텐츠들이 갈수록 자극적인 소재나 장르물의 함정에 빠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시즌1에 이어 6개 에피소드로 돌아온 < D.P. > 시즌2는 지금, 현재 넷플릭스 K-콘텐츠가 선보일 수 있는 최상의 콘텐츠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웹툰 원작(김보통 작가), 영화감독 출신 연출자(한준희 감독)와 영화로 출발한 제작사(클라이맥스 스튜디오), 정해인, 구교환, 손석구, 조현철 등 핫한 배우들과 김성균을 포함해 새로 합류한 지진희, 정석용 등 안정적인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젊은 기운이 담보된 세련된 연출 등 < D.P. > 시리즈는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가 가져가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들을 빠뜨리지 않은 기성품이다.

여기에 한국 콘텐츠들의 주요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사회비판적인 시선은 물론이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남북이 공히 공유하는 징병제의 모순과 부조리를 파헤치는 소재 선택 만으로도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그래서일지 모른다. 넷플릭스 공개 직후 판타지 액션물인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펀치>가 빠르게 넷플릭스 TV 쇼 차트(플릭스패트롤)에 진입한 것과 달리 < D.P. > 시즌2가 한국이나 인도네시아 등 일부 아시아 국가를 제외하고 순위권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이유 말이다.

그럼에도 < D.P. > 시리즈의 문제제기는 유효하다. 현실로 눈을 되돌려 볼까. 수해 복구를 나간 해병대 장병이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군 수뇌부는 장병들에게 구명조끼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유가족은 "구명조끼가 비싸냐"며 울부짖었다. < D.P. > 시리즈의 주요 배경이 된 2014년으로부터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군은, 국가는 과연 "여전히 변한게 없다"는 < D.P. > 시리즈의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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