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13년 전 패배 갚는다…EV로 日 재도전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3. 8. 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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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로 간판 바꾸고 절치부심
현대차가 절치부심 끝에 13년 만에 일본 시장 재도전에 나섰다. 사진은 일본 요코하마시에 위치한 현대차의 CXC센터 내부 모습. (현대차 제공)
지난 7월 중순 도쿄 신주쿠역에서 전철로 40분가량 달려 도착한 요코하마역. 요코하마역을 중심으로 둘러본 이곳에서는 ‘자동차 도시’의 면모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일본 닛산글로벌 본사는 요코하마역과 도보로 이어진다. 벤츠 역시 글로벌 최초로 요코하마에 순수전기차 전용 EQ 전시장을 열었다. 요코하마역에서 전철로 10분 남짓 걸려 도착한 벤츠의 전기차 전용 매장에는 큼지막한 ‘삼각별’ 로고와 함께 ‘MERCEDES EQ’라는 영문 글자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요코하마역에서 다시 택시로 20분 달려 도착한 곳은 현대차의 ‘CXC(고객경험센터) 요코하마’다. 이곳은 현대차가 일본 시장에서 철수한 지 13년 만인 지난해 문을 열었다. 차량 시승, 인도, AS까지 고객 관련 모든 서비스가 일괄적으로 이뤄진다. 외관은 차분한 회색으로 톤을 맞췄고 통창 유리로 설계돼 바깥에서도 내부 전시 공간을 쉽게 볼 수 있다. 1층에는 AS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2층은 고객 라운지 공간이다. 친환경 소재로 꾸몄다는 라운지 실내로 들어서자 은은한 나무 향이 느껴진다. 라운지 공간의 편안한 소파에 앉아 시선을 창 쪽으로 돌리면 자신의 차가 정비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고객은 라운지에 앉아 바리스타가 제공하는 ‘아이오닉5·넥쏘’로 각각 브랜딩된 커피도 즐길 수 있다. 고객 동선과 시선, 경험을 세심하게 배려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13년 만에 다시 찾은 일본 시장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글로벌 톱3 반열에 오른 현대차의 지위와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현대차는 전기차를 앞세워 일본 시장 재도전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과거 현대차는 일본 시장에서 뼈아픈 패배를 겪어야 했다. 2001년 일본 시장에 첫 진출한 현대차는 당시 일본에서 ‘겨울연가’로 뜨거운 인기를 구가하던 한류 스타 배용준을 앞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결과는 처참했다. 2001년 진출 이후 2009년 철수 직전까지 판매량이 1만5000대 정도에 불과했다.

확 달라진 현대차 브랜드 평판 실감

현대차가 일본 시장에서 실패한 배경을 두고 여러 분석이 제기된다. 첫째 판매 전략이다. 일본 자동차 시장은 전통적으로 경차가 이끌어왔다. 반면, 당시 현대차의 주력 판매 차종은 그랜저, 쏘나타 등 중형 세단이었다. 둘째는 브랜드 평판이다. 일본은 수출량 기준 세계 2위 자동차 강국이면서 토요타를 비롯 유수의 메이커가 집결해 있다. 2000년대 현대차그룹의 브랜드 평판으로 일본 자동차 시장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절치부심한 현대차가 이번에는 제대로 칼을 갈았다. 첫째, 현대차는 과거처럼 내연기관 메이커가 아니라 ‘모빌리티 플레이어’로 일본 시장 재도전에 나섰다. 조직 정체성을 보여주는 법인명부터 ‘현대모빌리티재팬(Hyundai Mobility Japan)’으로 명명했다. 현대모빌리티재팬은 현재 일본 요코하마에 사무실을 뒀다.

둘째, 판매 전략이 확 달라졌다. 과거 현대차 패착으로 귀결됐던 내연기관 세단 중심 판매 전략에서 전기차 등 모빌리티 중심으로 새판을 짰다. 학계에서는 시장 지위가 높은 기업일수록 기존 지위에 위협이 되는 혁신을 수용하는 데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중요한 모빌리티로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숨 가쁘게 일어나는 것이 일본 업체로서는 달갑지 않다는 것. 달리 말해, 모빌리티 시장에서는 현대차가 톱 메이커 반열에 올라설 ‘기회의 창’이 열릴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단기적인 판매량은 신통찮다. 자동차업계에서는 단기적으로 현대차의 일본 시장 재도전이 단순히 판매량을 늘리는 데 있지 않다고 본다. 과거 롤모델이었던 일본 완성차 업체보다 기술과 디자인, 서비스 면에서 앞서 있다는 점을 본토 한복판에서 입증하겠다는 포부가 깔려 있다.

일본 완성차 회사에서 자동차 설계를 담당했다는 엔지니어가 들려준 일화도 흥미롭다.

“일본 제조사에서 전기차의 공기저항계수를 낮추려 차체의 각진 모서리를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바꾸는 것이 이슈였다. 그런데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원하는 수준의 저항계수가 나오지 않자 프로토 타입 만들기를 사실상 포기했다. 그런데 일본 메이커가 포기했던 수준의 저항계수를 현대차가 맞춰 유려한 디자인으로 내놓자 다들 적잖이 충격을 받은 분위기였다. 당시 엔지니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현대차 디자인을 스터디했던 기억이 난다.”

다만, 일본의 전동화 속도가 경쟁국 대비 다소 더딘 점은 전기차 확산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충전기 대수도 부족하지만 충전기 출력도 낮다. 도쿄전력홀딩스의 계열사 이모빌리티파워가 일본 전역에 전기차 충전기를 깔고 있는데 대부분 50㎾ 이하다. 현대차는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데 주력하며 전기차 시장 확산을 늘릴 계획이다.

(요코하마 = 배준희 기자)

인터뷰 | 조원상 현대모빌리티재팬 법인장
“가치 있는 고객 경험으로 모빌리티 차별화”
조원상 현대모빌리티재팬 법인장
Q. 일본 시장 재도전의 의미는.

A. 첫째, 미래 시장을 개척할 때 일본 자동차 시장을 테스트베드라고 판단하고 재진입을 결정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일본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고르는 기준은 매우 까다롭고 눈높이도 높다. 둘째, 전기차(EV) 등 모빌리티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과 유럽 등 전기차 시장에서 차별적인 명성을 차곡차곡 쌓는 중이다. 주요 선진 시장에서 확보한 탄탄한 시장 평판은 일본에서 전기차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현대차그룹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선순환을 가능케 할 것이라 본다.

Q. 경쟁 업체와 차별화 전략은.

A. 법인명부터 ‘모빌리티’로 구분된다. 현대차가 일본 브랜드 대비 비교 우위에 있는 전기차(아이오닉5)와 수소차(넥소)를 주력으로 판매한다. 100% 온라인 판매망을 구축해 고객이 주도적으로 구매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점도 다른 브랜드와 구분된다. 일본 고객은 차량 구매 온라인 결제를 낯설어한다. 그럼에도 고객 사인도 온라인으로 하도록 온라인 구매 프로세스에 익숙해지도록 돕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미쓰비시와 함께 전기차 구독 서비스 ‘모션’(MOCEAN)을 기반으로 일본 카셰어링 시장 공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Q. 주요 성과를 소개해달라.

A. 아이오닉5가 매해 일본 시장에서 가장 우수한 차량을 선정하는 2022~2023 일본 올해의 차(Car of the year Japan)에서 ‘올해의 수입차(Import Car of the year)’를 수상했다는 점을 꼽고 싶다. 일본 올해의 차는 일본을 대표하는 자동차 시상식으로 북미와 유럽의 자동차 시상식과 함께 세계적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는다. 아이오닉5는 한국 자동차 역사상 최초로 일본 올해의 차를 수상한 자동차로 기록됐다. 일본 기자단을 대상으로 시승회를 열면 “현대차를 다시 보게 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Q. 일본의 전기차 확산이 상대적으로 더딘데.

A. 전기차 인프라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빌리티의 경쟁력은 결국 소프트웨어에서 판가름 난다.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차별적인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본 시장 재진출 1년을 기념해 현지 특성에 맞춰 내놓은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전기차 신차 등록 후 3년까지 매년 정기 점검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3년 차 점검 때 전기차 성능 유지에 필수적인 배터리 냉각수를 무상 교체해주는 서비스다. 차체 보호 서비스와 연간 최대 10만엔의 외관 손상 수리비도 지원한다.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은 이전 구매 고객까지 소급 적용해 새로운 카 라이프를 즐길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했다.

Q. 중장기 목표는.

A. 단순히 차량 판매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고객에게 차별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다. 크게 ‘LIFE MOVES with Smart Experience of Mobility’ ‘LIFE MOVES with Sustainable Mobility’ ‘LIFE MOVES with Freedom in Mobility’ 등 3가지 모빌리티 전략으로 ‘LIFE MOVES’를 구현한다. 모빌리티 전략을 통해 일본 내 탄소중립 사회 실현에 기여하면서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와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0호 (2023.08.02~2023.08.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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