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들으면 천가지 이유로 방해"...건설 카르텔 핵심은 '이 둘'
윤석열 정부가 '건설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정부는 인천 검단아파트 신축 현장 지하주차장 붕괴 등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크고 작은 부실공사의 근본 원인으로 건설 이권 카르텔을 지목하고, 카르텔을 반드시 혁파하겠다고 했다.
건설업계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건설 이권 카르텔의 꼭대기에는 공기업과 지자체가 있다. 지난달 31일 15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이 무더기로 확인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의 경우 설계 잘못이 누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철근이 구조 계산 잘못 등으로 건설 공사의 근본이 되는 설계단계에서부터 빠진 것이다. 업계에서는 ‘전관’의 폐단으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술사는 “LH 등 공기업 퇴직자 중 ‘끗발 센 전관’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설계업체의 ‘능력’이 차이 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 설계업체당 1년에 3건까지 LH가 발주한 설계를 수주할 수 있는데 이때 설계업체의 기술력 보다는 전관의 ‘실력’이 수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부실 설계’가 나온다는 얘기다.
LH 아파트의 공사현장에서 철근을 배근한 후에는 LH 직원인 감독관과 시공사의 엔지니어, 그리고 법으로 정한 감리회사가 삼중으로 제대로 배근이 돼 있는지 체크를 한다. 그런데도 문제가 생긴 건 이 세 곳이 모두 제대로 일을 안 했고, 특히 최종 감독 책임이 있는 감리가 제 기능을 못 했기 때문이다. 모 건설사의 한 임원은 “설계회사가 감리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역시 LH 전관의 폐단이란 얘기다. 이한준 LH 사장은 “설계, 감리, 시공회사에 LH 전관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공기업 직원이 건설사의 협력업체 선정 등에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건설사의 한 직원은 “기술직 공기업 간부의 경우 건설현장에서는 ‘갑 중의 갑’이다”라며 “‘이 현장의 이 공정은 이번에 이 업체를 써달라’는 식으로 공기업 간부가 부탁하면 후환이 무서워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게 건설 현장의 현실이고, 실제 회사 규정에 어긋나는 청탁을 들어준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수돗물에서 검은색 이물질이 나오고 있는 경기도 시흥시 은계지구 LH 아파트의 경우 상수도관 납품 업체가 자재 계약 때 LH 담당자에게 부정 청탁을 했다고 주장하며, 지난달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지자체 공무원이 건설 이권 카르텔의 정점에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 아파트 시행사 대표는 “아파트 공사 현장에 해당 지역의 특정 업체를 써 달라는 등의 지자체 공무원들의 부탁을 거절하면 해당 지자체는 천 가지의 이유를 들어 인허가를 지연시킨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주택법에 따라 짓는 민간아파트의 경우 해당 지역 지자체가 감리업체를 직접 선정하고, 시행사가 지자체에 예치한 감리비용을 감리업체에 지불한다. 모 건설사 관계자는 “감리업체가 눈치 볼 곳이 지자체라는 얘기”라며 “정부가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을 뿌리 뽑겠다고 하는데 건폭 중 건설업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바로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등의 ‘관폭(官暴)’”이라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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