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연기 인생 손숙의 도전 연극 '토카타'…"극한의 외로움 표현했죠"
"당신 품에 안겨서, 이렇게 당신 품에 안겨 눈을 감고 누워서 나는 가벼워져요. (...) 그 모든 무게로부터 나는 눈을 감아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요."
새하얀 형광등 조명 밑에 이렇다 할 무대도 없는 텅 빈 연습실이었지만 배우 손숙(79)이 첫 대사를 떼자 공기가 변했다. 그가 연극 '토카타'에서 맡은 역할은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혼자가 된 노인. 손숙은 고독이 문신처럼 몸에 새겨진 노인이 혼잣말하듯 독백을 쏟아냈다. 그가 표현하는 일상의 고독은 담담하지만 신산했다.
연극 '토카타'는 원로 배우 손숙의 데뷔 6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창작 신작이다. 중심 줄거리 없이 세 인물의 독립된 이야기를 엮은 독특한 형식의 작품으로 키우던 개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늙은 여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위독한 상태에 빠진 중년 남자, 홀로 춤을 추는 사람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제목 '토카타'는 이탈리아어로 '만지다'는 의미인 '토카레'에서 나왔다. 극작가 배삼식은 "코로나19를 겪으며 관계의 단절 속에서 '접촉'의 의미를 자주 생각하게 됐다"며 "최근 몇 년 동안 희박해진, 때로는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는 '촉각'과 '접촉'의 의미를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극한의 바닥에서 느낄 수 있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1일 서울 서초구 신시컴퍼니 연습실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손숙은 "데뷔 60주년 기념 공연이라고 해서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했는데 대본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덜컥 걱정되면서도 신선하다고 느꼈다. 배우가 채워야 할 공간이 많다고 생각됐고, 이 극이 완성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져서 뛰어들게 됐다"고 했다. 데뷔 60주년 작품으로 기존의 대표작을 다시 선보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손쉽게 올릴 수 있는 잔치 같은 공연을 다시 보여드리기보다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새로운 연극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관객이 손숙의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무대 장치도 최소화했다. 이태섭 무대 디자이너는 "무대 장치라고 할 만한 것은 동상 하나와 낡은 벽이 전부"라며 "모노드라마와 같은 톤을 부각하기 위해 군더더기를 모두 덜어냈다"고 했다. 이어 "배우로서는 연기를 최대치로 끌어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부담이 될 것이다. 손숙 선생님이 '무대에 기댈 곳이 없다'며 불평했다"며 웃었다.
손숙은 "'토카타'를 연습하면서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며 "젊은 시절, 아이를 키우며 행복했던 시절, 남편과 함께했던 아름다운 순간들, 키우던 개까지 먼저 보내고 쓸쓸하게 혼자 남은 마지막….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저도 여든이 다 됐는데 내 얘기구나. 내가 살아온 인생이구나,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손진책 연출은 "보물찾기하듯 볼 수 있는 연극"이라고 '토카타'를 소개했다. 그는 "대사를 곱씹을수록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연극"이라며 "우리 모두 노인이 되고 고독한 순간을 맞게 된다.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는 상태, 누구도 나를 어루만져 주지 않는 상황의 고독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중년 남자 역은 배우 김수현, 춤추는 사람 역은 안무가 정영두가 맡았다. 김수현은 "연습을 하면서도 매일 새롭게 표현하면서 어떤 방식이 가장 맞을지 찾아가고 있다"며 "어렵지만 재밌는 과정"이라고 했다. 정영두는 절제된 안무로 고독을 표현한다.
연극 토카타는 19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볼 수 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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