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는 지구, 리사이클로 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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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회승 기자]
펄펄 끓는 지구이다. 온난화 시대를 지나 지금의 지구를 이르는 말이다.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먼저 산 기성세대로서 책임과 반성을 느끼게 한다.
아기 때부터 줄곧 딸아이 입던 옷이나 용품들을 한 중고사이트에 나눔을 하거나 판매를 해왔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아이이고 첫 아이라 아기 때는 유명브랜드의 좋고 예쁜 옷들만 골라 사주었다. 하지만 유명브랜드의 좋고 예쁜 옷을 오래 입힌다고 한 치수 큰 것을 사더라도 금방 크는 아이를 옷이 따라갈 수 없었다.
아이가 크면 늘 전에 입던 옷을 깨끗이 빨아 옷장에 잘 보관해 두었다. 처음에는 아기때 입은 옷이고, 추억이 깃든 옷이라 판다고 선뜻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옷을 계속 쌓아둘 수는 없었고, 물려줄 동생도 나누어줄 또래 사촌도 없었다.
옷장 정리도 할겸, 나누면 좋을 것 같아 지금까지 이용하는 한 중고사이트에 올려놓았다. 산 날짜, 구매처, 얼마나 입었는지를 정성껏 상세히 써서 올려놓았다. 한 소비자가 올려 놓은 옷을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대부분 다 구매하면서 문자를 보내주었다.
"올려 놓으신 옷들을 보니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느껴지네요. 소중한 옷 어렵게 내놓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쁘게 잘 입힐게요."
나도 문자에 대한 답변을 보내주었다.
"아이와 추억이 많이 깃든 옷들입니다. 구입 할 때마다 아이 입힐 생각에 행복해하며 하나하나 구입해 내놓기 아까웠는데, 저의 마음을 알아주시는 분이 구입해주셔서 외려 기쁜 마음으로 드릴 수 있어 좋습니다."
▲ 중고 사이트에 올려놓았던 아이 장난감. |
ⓒ 엄회승 |
그후로도 중고사이트에 판매를 한다기보다 나눔한다는 의미의 싼값으로 올려놓았다. 거의 하루 이틀 만에 판매가 될 정도로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구독하시는 분도 생겼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판매를 할 때 나름 규칙이 세웠다. 내가 그 물건을 받아도 쓸 만하다고 느끼는 것이어야 하며, 물건의 구입처와 현 상태를 꼼꼼히 체크해 올려 놓았다.
보기에도 사용 횟수가 많아 판매하기 어려운 옷이나 용품 등은 판매를 하지 않았고, 재활용함에 넣었다. 다행히 딸아이가 쓴 것이라 옷은 대부분 깨끗했고, 장난감이나 용품 등은 대부분 새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재활용으로 갈 만한 물건 중에도 쓸 만한 것은 판매한 물건을 산 분들에게 사은품으로 나누어 주었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 아이가 쓴 물건은 버려진 것이 거의 없다. 지금까지도 중고사이트를 통해 판매하거나 나눔을 해오고 있다.
아이가 보는 책도 새 책을 사준 것이 없다. 지금도 여전히 중고서점을 이용해 책을 구입한다. 아이가 보는 새 책들이 비싸기도 하지만 그 나이에 잠깐 보는 책들을 새 책으로 구입하기보다는 그 나이 때마다 필요한 책을 중고서점을 통해 구입한다. 아이가 자라 필요가 없어지면 다시 중고서점을 통해 필요한 이들에게 저렴하게 판매를 하거나 나눔을 한다.
▲ 중고사이트에 올려놓은 아이 전집책 우리아이에게 더이상 핑요없는 책은 중고사이트에 올려놓았고, 내가 필요한 책은 다시 중고사이트를 통해 구입해 쓴다. |
ⓒ 엄회승 |
한번은 아기때 한참 한글을 익혀야 할 때였다. 유명브랜드의 책 전집을 중고서점을 이용해 들여놓았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한글 낱말카드이다. 몇 번의 리사이클이 있었는지 일부 낱말 카드들의 분실로 본래보다 개수가 모자랐다. 그런데 이 책을 전에 쓰시던 한 어머님이신 듯, 똑같은 크기의 낱말카드를 종이에 분실된 카드만큼 만들어 앞에는 글과 뒤에는 글에 맞는 그림까지 예쁘게 그려 넣어 정성껏 색칠까지 해 놓았다. 그 카드를 보고 엄청 감동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정성껏 만든 여러 장의 카드로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다음 아이도 쓸 수 있게 정성껏 만든 그 카드를 그대로 넣어주신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 아이도 그 카드를 너무나 유용하게 잘 썼고, 나 또한 다음 아이도 그 카드를 쓸 수 있도록 판매할 때 깨끗이 써서 그대로 넣어주었다.
아마도 다음 아이도 그 어머님이 정성껏 만든 낱말카드를 유용하게 잘 썼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중고거래의 매력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대로 전해지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과 오고 가는 정 그리고 배려이다.
펄펄 끓는 요즘 날씨를 누구나 걱정스럽게 바라볼 것이다. 이 숨이 막히도록 펄펄 끓는 지구를 식히지 않으면 너와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든 삶을 살지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다. 버리기보다는 다시 쓰고, 필요 없는 물건은 되도록 사지도 쓰지도 않는다.
버려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계속 리사이클이 된다는 점에서 중고사이트나 중고서점은 너무나 매력적인 곳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바람직한 곳이 아닌가 싶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나도 가장 애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 구입한 화장지에 날짜를 기입해 나의 소비패턴을 확인하면 절약에 도움이 된다. |
ⓒ 엄회승 |
적고 먹고 적게 쓰며 불필요한 치장은 더 이상 살아가는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버려지는 것을 줄여야 하며, 다시 써야 하며 버려지는 물건이 없도록 해야 한다. 나 또한 불필요하게 버려지는 물건이 없도록 한다. 내게 필요 없어진 물건은 중고사이트를 통해 나눔을 하거나 판매를 하며, 불필요한 아이 옷이나 용품도 중고사이트를 통해 다시 쓸 수 있도록 한다.
먹거리를 사러 가는 것도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봐와서 일주일 동안 나누어 먹는다. 쌀이나 세제 화장지 같은 자주 쓰는 생필품은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가격 비교로 저렴한 물건을 필요한 만큼만 구입해 쓴다. 화장지를 구입했을 때도 구입 날짜를 비닐 겉면에 메모해 한 팩을 얼마 동안 쓰는지 체크해 놓는다. 날짜를 메모해 두면 나의 생활패턴을 알 수 있어 조금이나마 절약하는데 도움이 된다.
소비가 미덕인 때도 있었다. 지금의 불필요한 소비는 곧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소비가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외려 소비 시간을 줄여 나의 내면을 풍요롭게 쌓는 데 집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옷으로 나의 몸을 치장하거나 나의 집을 꾸미는 것보다 내면의 내공을 쌓을 수 있는 책을 들여다보고, 글을 쓰면서 나를 깊이 있게 되돌아 보면, 나의 미래가 양이 아닌 질로 좀 더 윤택해질 수 있을 것이다.
곧 나의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펄펄 끓는 지구를 식혀줄 가장 큰 묘약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들의 아이들이 살아갈 이 지구가 지금보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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