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는 일, 자연과 빛이 인간에게 준 축복 [천현철 원장의 <오팔청춘 눈건강>]
24mm 탁구공만한 작은 크기의 우리 눈은 인류의 어떤 발명품보다 섬세하고 복잡한 기관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전 생애에 걸쳐 눈에 의존한다. 태어나자마자 시력이 0.05에 불과한 신생아라 하더라도, 4주가 되면 15cm 앞 사물의 윤곽을 구분하기 시작하며 8주부터는 초점을 맞춘다. 100일 즈음이 되면 아이들이 부모의 반응에 따라 자주 웃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사람의 얼굴 형태와 색깔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엄마, 아빠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이다. 생후 6개월이 되면 성인의 눈과 비슷하게 시력이 발달한다. 안구의 망막에서 시신경세포가 밀집되어 초점을 맺는 부위인 '황반'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보통 만 2세부터 5세까지는 시력 발달의 가장 중요한 시기로 꼽힌다. 이때 형성된 시력으로 평생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선천적, 후천적으로 눈이 나쁘다고 하더라도 시력교정술이나 안경, 렌즈 등의 착용으로 시력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젊은이는 눈으로 보는 일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 그러나 점점 노화가 진행될수록 시력이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지난 6월 23일에 방송된 TV조선 의학전문 다큐멘터리 '더+메디컬' 2회에 출연해 진행을 맡은 바 있다. '빛을 잃은 그대에게'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가 진행되었는데, 인간의 시력과 사물을 보게 되는 원리를 비롯해 동물과 인간의 시력, 눈 건강과 시력교정술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개인적으로 좋은 경험이었다.
사실 '본다'라는 행위는 꽤 복잡하고 치열한 일이다. 사물에서 반사된 빛이 우리 눈에 도달하는 순간, 수정체는 동공에서 안구로 들어온 빛을 굴절시켜 망막에 초점을 맺게 한다. 망막은 이 시각정보를 수용해 전기신호로 변환시키고, 이 신호는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된다. 시각정보를 처리하여 해석하는 뇌는 이 전기신호를 처리해 상을 생성, 물체를 인지하게 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본다'는 행위를 할 수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보는 순간, 이 치열한 과정이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찰나의 순간이라 인간은 이 작업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 눈은 종종 왜곡된 시각정보를 제공해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는데, 바로 대표적인 예가 '착시 효과'다. 방송을 통해 필자가 소개한 착시 효과는 알버트 에임스가 발견한 '에임스룸 착시현상'으로, 바닥의 높낮이와 깊이에 따라서 같은 공간 안에서 사람의 키가 커지거나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원리다. 이 외에도 인간은 그림 문양의 방향 착시나 기하학적 착시 등을 통해 실제와는 다른 상의 모습을 인지하곤 한다. 물체의 본질은 하나이지만 이 물체를 보는 것은 눈, 인식하고 인지하는 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본다는 것은 정확성을 요구하는 고도의 작업이다. 그렇다면 이 고도의 작업을 담당하는 눈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신경 쓰고 있을까? 눈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걱정을 꽤 높다. 아무래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두려움과 불편함을 초래하는 것을 넘어, 삶의 질과 의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력에 영향을 주는 것은 후천적, 선천적 요인 중에 무엇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했는데,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인 여성에게 100m와 50m 거리에서 글씨를 읽게 했다. 몽골인들의 평균 시력은 3.0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성은 글씨를 제대로 읽지 못했고, 몽골에서 생활할 때는 시력이 훨씬 좋았지만,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시력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몽골인들의 뛰어난 시력은 유목 생활을 하는 환경과 생후 3주간은 신생아를 어두운 방에서만 키우는 전통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가설에 기초한다. 멀고 광활한 곳을 자주 바라보거나, 산에서 자연을 벗 삼아 지내는 환경이 근시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방송 후반부에는 안경을 벗기 위한 인류의 노력과 현대의 시력교정 기술이 소개됐다. 인류 최초의 시력교정술은 스페인의 호세 바라퀘에 의해 시행됐다. 그는 수동 미세각막 절개도를 이용해 각막 앞을 제거, 각막 절편을 만들어 도수를 교정했다. 이후 거듭된 발전을 거쳐, 1세대, 2세대 시력교정술인 라식과 라섹부터 차세대 수술인 스마일라식 등 다양한 수술방법이 등장했다.
그렇다면 우리 눈은 언제부터 늙기 시작할까? 눈은 노화가 빠른 기관 중 하나로, 노안과 백내장이 대표적인 노인성 안질환으로 꼽힌다. 노안은 눈의 노화로 조절력이 떨어지면서 근거리의 시력이 저하되는 현상으로, 포커스의 전환이 빨리 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의 사용시간이 늘어나면서 30~40대 젊은 노안 발병률도 늘고 있다.
백내장은 수정체가 노화로 인해 혼탁해지면서 발생한다. 통과된 빛이 차단되거나 산란이 발생해 시야가 뿌옇게 보이고 눈부심을 느끼게 되며, 실명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노화로 인해 눈의 기능이 약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지만, 저하된 시력을 개선하는 방법은 있다. 대표적인 노안교정 수술법은 렌즈삽입술로, 이는 백내장 수술법에서 고안되었다. 노안렌즈삽입술은 홍채 앞에 교정용 렌즈 알티플러스를 삽입하여 시력을 교정하는 원리다. 백내장 수술법은 혼탁해진 수정체를 제거한 뒤,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방법이다. 인상파 화가 모네 역시 백내장을 앓았는데, 백내장 발병 전후 그린 같은 장소의 그림을 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보인다. 백내장 수술 후, 모네는 다시 자신만 특유한 색감을 살린 그림을 그려냈다.
안질환을 이겨내기 위한 차세대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기술인 '인공망막'은 과학의 힘으로 실명한 이들의 빛을 되찾아주기 위한 시도로 꼽힌다. 망막에서 뇌에 신호를 보내려면 '신경절 세포'를 거쳐야 는데 이 세포가 있어야 인간시각 기술을 적용한 인공시각 구현이 가능하다. 노인성 황반변성, 망막색소변성증 등의 질환은 빛을 검출하는 신경세포인 광수용체 세포를 주로 파괴하지만, 신경세포는 살아있는 경우가 많아 실명한 이들에게 인공시각을 형성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녹내장이 너무 심해 안압이 높아지면 신경절 세포부터 파괴되기 때문에 인공망막 기술을 적용할 수 없다. 현재 전 세계 500명 이상에게 해당 장치가 이식되었고, 장애물을 인지하고 피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물론, 개인에 따라 성능에 차이가 있어 보완해야 할 점은 분명히 있지만, 현재 성능 차이를 줄이려는 연구와 동물 대상의 행동실험 등이 진행되고 있어 향후 성능이 더욱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눈은 그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운 기관이며, 자연과 빛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이라 말하고 싶다. 단순히 사물과 사람을 인식하는 일 외에도 감정과 정서적인 교감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류는 언젠가는 우리 눈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지혜로운 심미안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하며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눈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하였을 것이다. 끝으로, 평소 우리 눈과 관련해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를 소개하고 싶었는데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 기회가 마련되어 안과전문의로서 기쁨을 느꼈다.
/기고자: 밝은눈안과 강남 천현철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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