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던 그 얘긴 정말 농담이었을까

김성호 2023. 8. 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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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독서만세 194] 허지웅의 <살고 싶다는 농담>

[김성호 기자]

허지웅은 여러모로 '인물'이다. 미디어에 친숙한 사람치고 모르는 이가 없는 그는 글쟁이가 명성을 얻기 어려운 한국 지형에서 드물게 성공을 거둔 작가다. 잡지사 기자로 시작해 평론과 에세이스트로 성공을 거뒀고, 그 정점이라 할 수 있을 때 좌절을 겪었다.

왕성한 방송활동으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만난 건 다름 아닌 질병이었다.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림프종이었다. 불현듯 닥쳐온 위기에도 그는 끝끝내 일어섰는데, <살고 싶다는 농담>은 이 질병 뒤 발표한 첫 에세이가 되겠다.

고통 없는 성장은 없다는 말이 있다. 삶에서 쓸 만한 성취 뒤엔 언제나 고난이 있고, 그 고난으로부터 읽을 만한 이야기가 태어나는 법이라고 많은 이가 믿는 것이다. 무언가를 성취한 이들로부터 그들이 겪어낸 고난의 수기를 듣겠다는 요구가 자주 이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적잖은 이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숨지는 질병과 싸워내고 마침내 일어난 이의 이야기다. 모르는 이가 없는 방송인의 글이니 관심이 쏠린 것도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좋을 때 찾아온 질병, 거기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
 
▲ 살고 싶다는 농담 책 표지
ⓒ 웅진지식하우스
    
2018년 병을 진단받은 뒤 항암치료를 하고 완치에 이르기까지, 또 재발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아나가는 동안 써내려간 스물다섯 편의 에세이가 책으로 묶였다. 시작은 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직후의 이야기다. 매일 살기 위해 알약 스물여덟 알씩을 삼켜야 했고, 물건 하나도 제대로 집기 버거워했던, 하루가 다르게 무기력해지기만 했던 그 모든 후유증을 겪어내면서 그는 작은 생기조차 잃어버린다.

호기롭게 항암치료를 버티겠다고 자신했던 것도 한때뿐이고, 죽음이라는 결론으로 침잠해가기만 했던 것이다. 돌아보면 그 힘든 시절이야말로 가장 도움이 간절한 나날이었겠으나, 손을 잘 내미는 성격도 못 되었던 그는 모든 과정을 오로지 홀로 버텨낼 밖에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꽤나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첫 50여 페이지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닥뜨린 외롭고 나약한 인간의 적나라한 자기고백처럼 읽힌다. '3호실의 무솔리니'라 별명붙인 같은 병실 사내의 무례한 태도에 짜증을 느끼기도 하고, 매일같이 이어지는 고통에 괴로워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결심을 세우기까지의 과정이 솔직하게 쓰여 있다.

어쩌면 삶 전체를 포기하고 싶던 밤도 있었다는 작가의 언급은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절망의 시절을 지내본 이들에게, 또 삶 가운데 다시 일어서기 어려울 만큼의 고통을 겪어본 이들에게 상당한 공감을 살 만큼 진솔하게 와 닿는다.

제 때 전하지 못한 고마움의 무게

그는 병원에서 겪은 일들 가운데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을 꼽는다. 항암으로 머리가 다 빠진 그에게 어느 날 간호사가 건넸다는 선물, 꾸러미에 담긴 검은 털모자를 받은 뒤의 이야기다. 물건을 받고서 기계적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지만 그는 진실로 고마움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느낀다.

"털모자를 생각하면 어김없이 창피하다. 나는 왜 제때에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요는 그렇다. 그리고 그 때문에 여전히 괴롭다. 그 간호사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꾸러미를 받아 들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제때에 제대로 된 고마움이라 부를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여태 살아오면서 스스로 자부했던 것처럼 먼저 인사하고 인사할 때는 확실하게 한다는 익숙한 원칙을 반복한 것뿐이었다.

그 털모자를 준비한 마음이 얼마나 드물고 귀한 것인지에 관해 나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죽음이라는 결론에만 몰두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결론 앞에 다른 것들은 한없이 사소한 소음으로 전락하고 만다." (책 22쪽)

더없이 힘겨운 순간을 지낸 뒤 마음에 남았던 한 가지는, 충실히 대하지 못하고 지나친 감사의 순간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소한 소음처럼 지나보냈던 그 귀한 마음이 위기의 때마다 다가와 저를 일으키는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제 때에 제대로 된 감사를 했어야만 했다는 깊은 인식에 가닿는 그 마음이 장하게까지 읽힌다. 정말이지 사소하게만 느껴지는 무엇들이 실은 더없이 중요한 것이라는 걸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살고 싶다는 농담>이 가진 미덕 중 하나는 인간은 어떤 순간에도 생을 이어가고자 한다는 걸 알게 만든다는 점이다. 고통스러워 포기하고픈 순간에도 생은 살아있음 그 자체를 지켜내려고 발버둥친다. 때로는 그와 같은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하고 사소한 사건들에 마땅한 답을 내어놓는 일, 그것이 인간이 인간을 지켜내는 방법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책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막막한 두려움 앞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던 한 인간의 여러 순간을 진솔하게 그린다. 비록 스물다섯 편의 글이 하나의 주제로 꿰어지지 않고, 중반부 이후부턴 여기저기 쓰인 글을 억지로 끌어다 묶어낸 것처럼 느껴지지만, 몇 편의 글에서 묻어나는 진솔함만큼은 적잖은 독자를 움직여 내리라고 나는 그렇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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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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