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곡물협정 파기에 물가 먹구름…‘세계 식량난’ 초읽기 [지금 식량위기④]
우, 수출경로 다변화…물류비용 증가 불가피
국내 물가 ‘악화일로’…정부, 수급상황 점검
“밀·옥수수 국제가 상승 압력…급등 없을 듯”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 중단을 선언하면서 국제곡물가격이 요동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31일 시카고 선물거래소(CBOT)에 따르면 지난해 러·우 전쟁으로 인한 곡물 공급 차질과 미국 등 주산지 가뭄 등으로 국제 곡물 가격이 상승했다.
러시아가 지난 7월 17일 흑해곡물협정 파기를 알린 이후 국제 곡물 가격은 불안정세가 나타났다.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주요 수출항로인 흑해가 봉쇄됐다가 지난해 7월 협정이 체결되고 3차에 걸쳐 연장됐으나 4차 협상에서 연장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흑해곡물협정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우크라이나가 흑해 항구에서 곡물을 수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합의다.
다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지난해 7월 흑해곡물협정을 체결하면서 공급 차질 우려가 점차 완화되며 국제 곡물 가격이 점진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당시 밀 가격은 전쟁 직전 t당 200 달러 후반대 수준이었으나 전쟁 등으로 500달러대에 진입하기도 했다. 흑해곡물협정 체결 등으로 작년 말부터 전쟁 이전 수준까지 내려갔다.
지난달 25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피에르 올리비에로 고린차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흑해곡물협정은 우크라이나로부터 충분한 곡물 공급을 보장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협정이 중단되면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곡물 가격이 어디까지 오를지 아직 평가 중”이라면서 “10~15% 상승 범위가 합리적인 추정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IMF는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탈퇴로 우크라이나산 곡물에 크게 의존하는 북아프리카와 중동, 남아시아 등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흑해곡물협정 중단 초기…“대체 수입국 확보 등 대비 필요”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전날 ‘흑해곡물협정 중단이 곡물 수급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내고 “러시아의 협정 연장 거부 발표 직후 밀 선물가격은 일시적으로 상승했으나, 당일 다시 하락세로 전환되는 등 국제 곡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KREI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흑해곡물협정 연장 거부에 대비해 흑해 이외의 수출경로를 활용해 수출량을 점차 증대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러·우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대체 수출경로인 루마니아 접경지 다뉴브강 하구에 운하 준설 등으로 대규모 선박 운항 기반시설을 정비했다.
이에 지난 5월부터는 다뉴브강을 통한 우회 수출 비율이 기존 20%대에서 50% 수준까지 크게 상승했다.
또 민간 선박 피해 보상을 위한 대책으로 약 5억 달러 보험기금 설립 등을 마련했다.
유럽연합(EU)도 연대 대응 일환으로 우크라이나 농산물 수출을 돕는 등 물류 병목현상 해소를 위한 긴급조치에 나섰다.
수출경로 다변화로 공급 차질이 해소됐으나, 물류비용 증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뉴브강과 루마니아 콘스탄차항을 통한 수출은 기존 흑해를 통한 수출경로 대비 비용과 시간이 각각 3.3배, 1.8배가 소요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한, 지난 20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오데사 곡물 수출기반 시설 공격을 단행했고, 다뉴브항에 대한 폭격 등 주요 곡물 수출 시설이 파괴돼 국제 곡물 시장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모양새다.
흑해협정 중단에 곡물가 상승…식품물가 부담 커지나
밀은 우크라이나 주요 생산 품목 중 하나로 국내 업계에서 주로 수입한다.
우리나라는 흑해 지역 국가로부터 러·우 전쟁 이전 밀·옥수수(식용) 수입 비중을 각각 18%, 50% 들여왔다. 전쟁 직후 수입단가는 오름세를 보였으나 심각한 공급 차질 현상은 없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FIS)에 따르면 CBOT 소맥(SRW·적색연질밀) 가격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t당 258.77 달러로 흑해곡물협정이 무산됐던 지난 7월 17일(240.21 달러) 보다 8.2% 올랐다.
올해 가장 낮은 가격으로 떨어졌던 5월 30일(217.16 달러)과 비교하면 16.1% 상승했다. 지난해 5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t당 419 달러까지 치솟았던 때와 견주면 낮은 수준이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흑해 지역 불안정성에 따라 국제가격은 당분간 오를 것으로 전망했으나 지난해 상반기 수준과 같은 급등세가 보이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밀, 옥수수 생산 전망이 양호하고 우크라이나산 곡물 일부는 육로를 통해 우회적으로 수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2023-2024 시즌 세계 밀 생산량은 전년 대비 0.8% 증가하고, 옥수수는 6.3% 상승할 것으로 봤다.
농식품부는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흑해곡물협정 중단이 국내 수급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평가했다.
올해는 흑해협정을 통해 수입하는 물량이 없고, 제분용 밀의 경우 우크라이나가 아닌 미국, 호주, 캐나다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제분·사료업계는 원료 6개월분을 이미 확보해 둔 상태여서 당장 문제는 없다는 게 농식품부 설명이다.
다만 국제곡물 가격이 지난해 수준으로 급등해 장기화할 경우나 수입 가격이 3개월가량 시차를 두고 영향을 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물가 상승은 불가피하다.
국내 식품업계는 흑해곡물협정 중단 등으로 상황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곡물 가격 강세가 돌아올 것 같다”며 “대부분 업계가 내부적으로 곡물가 상승 대비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던 우크라이나 곡물 사태가 다시 변수로 등장하고 있어 해결되지 않으면 물가 파동이 커질 수 있어 하반기 물가 상승 우려도 제기된다”며 “전쟁이 이어질 경우 국내 식품업계에 미칠 영향도 클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에 농식품부는 국제 곡물 가격과 해외 동향을 일 단위로 모니터링하고, 위기 시 기업에 원료 구매 자금 금리 인하 등 금융·세제 지원을 실시할 방침이다.
KREI 관계자는 “국제 곡물 수급에 영향을 미치는 부정과 긍정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며 “수입선 대체가 어려운 식용 옥수수의 경우 공급 차질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중장기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뜨거운 지구, 전세계 기후위기 비명…극복하기 위한 대책은[지금 식량위기⑤]에서 계속됩니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폭우·폭염에 밥상 물가 ‘직격탄’…불안하던 채솟값 ‘껑충’ [지금 식량위기①]
- 속 썩는 여름 닭고기 값…폭우·사룟값 등 곳곳 ‘빨간불’ [지금 식량위기②]
- ‘1ℓ 3000원 시대’ 앞둔 우유…고개 드는 ‘밀크플레이션’ [지금 식량위기③]
- SK넥실리스, 토요타 통상과 북미 진출 …고품질 동박 장기 공급
- "주호민 부부, 주말 밤낮없이 교사 들들볶아…후임교사도 녹취"
- 여야의정 협의체 2차 회의 열었지만, 여전히 '평행선'
- 한동훈 "이재명 위증교사 재판, 통상적인 결과 나올 것"
- 거주자외화예금 51억 달러↓…원·달러 환율 상승 탓
- 극장가에 부는 팬덤 열풍, 이번엔 뮤지컬 스타다 [D:영화 뷰]
- ‘골반 통증’ 김도영, 천만다행 “호주전 출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