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뜨거운 현수막, 오늘부터 더 심해진다…수량∙규격도 무제한 [도 넘은 현수막 정치]

김준영, 전민구 2023. 8. 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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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길거리의 현수막 난립은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같은 해 12월 시행되면서 시작했다.

31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7번 출구 인근에 걸린 정당 현수막. 김경록 기자

여야가 정당 정책을 알리겠다는 명분으로 처리한 옥외광고물법은 정치적 현안에 대한 현수막은 사전 신고나 허가 없이 아무 데나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법안 처리 과정에서부터 행정안전부는 “안전·환경·미관 문제가 우려된다”고 밝혔지만 여야는 “정당의 활동을 알리는 걸 도시 미관이란 이유로 제지하면 되느냐”(김민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당 정책을 알리기 위해 현수막을 걸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정부도) 수용해야 한다”(이명수 국민의힘 의원)며 한편이 돼 밀어붙였다.

그렇게 법이 통과되면서 ‘정당이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하여 표시·설치하는 경우’의 현수막은 옥외광고법에 따른 어떠한 규제도 받지 않게 됐다. 신고·허가가 필요없을 뿐만 아니라 수량과 규격에 대한 제한도 없다. 현수막의 표시 방법 및 기간을 정한 대통령령(시행령) 역시 게시 기간을 ‘15일 이내’로 정한 것 외엔 문구에 대한 규제는 없다. 혐오·비방 문구의 현수막이 경쟁적으로 범람하는 이유다.

각 지자체가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미봉책 수준이다. 전국 지자체 중 인천시가 총대를 메고 지난 5월 정당 현수막 게시를 제한하는 조례를 통과시켜 이달부터 현수막 강제 철거에 돌입했지만 조례가 상위법(옥외광고물법)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있다. 강제철거를 환영하는 일반 국민 여론 속에서도 다른 지자체가 선뜻 인천시처럼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인천시 연수구 관계자가 지난 12일 인천시 연수구 동춘동의 거리에 걸린 정당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인천시는 정당현수막을 규제하는 내용의 '옥외광고물 조례개정안'을 시행하고 12일부터 본격적인 단속을 시작했다. 뉴스1


행정안전부도 힘을 못 쓰긴 마찬가지다. 지난 5월 정당 현수막 설치를 제한하고 각 지자체가 철거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일 뿐이라서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정당 현수막에 대한 철거 명령 및 철거 대집행을 할 수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쉽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현수막 문구가 ‘허위사실을 공표’(250조)했거나 ‘상대방을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비방’(251조)했을 때만 선관위가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지금 문제 되는 현수막들은 정치적 해석의 몫이라 선관위가 판단해 철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난맥을 풀 수 있는 권한을 쥔 건 결국 돌고돌아 국회뿐인 셈이다. 하지만 “개정하자”는 말 뿐 법안 처리는 미적대고 있다. 현행법 시행 후 관련 개정안이 7건 나왔지만 모두 상임위(행안위)에 계류 중이다. 내년 총선을 준비 중인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은 “현행법으로 이득을 보는 건 현수막 게시 권한을 가진 정당 또는 현역 의원 및 당협위원장”이라며 “이들이 자신의 권한을 제한하는 법을 어떻게 통과시키겠냐”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공직선거법 개정까지 무산되면서 1일부터는 전국이 현수막 무법 지대가 된다. 헌법재판소는 선거일 180일 전부터 ‘현수막과 그 밖의 광고물 설치’와 ‘벽보 게시, 인쇄물 배부ㆍ게시’ 등을 금지한 선거법 조항에 대해 지난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2023년 7월 31일까지만 효력을 인정했다. 그러나 여야는 이 시한 내에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새 개정안이 의결·시행되기 까지는 누구나 금지 기간 없이 자유롭게 현수막을 내걸고 유인물을 뿌릴 수 있게 됐다. 국회 관계자는 “안 그래도 옥외광고물법 졸속 처리로 국민이 몸살을 앓는 중인데, 입법공백으로 인해 이를 뛰어넘는 대혼란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오는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무분별한 흑색선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준영ㆍ전민구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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