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아버지의 월드코인, 해외선 '홍채등록' 줄섰다는데… [팩플]

김인경 2023. 8. 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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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코인의 홍채인식 기계인 오브가 설치돼 있는 을지로의 한 카페. 김인경 기자

지난달 28일, 직장인 이민호(47)씨는 암호화폐 ‘월드코인’을 받기 위해 을지로의 한 카페를 방문했다. 카페에 설치된 홍채인식 기계 ‘오브’(orb) 앞에 서자 기계는 이 씨의 체온과 움직임을 감지했다. 실제 인간임을 확인하고 홍채 데이터를 암호화한 ‘월드 아이디(ID)’를 발급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단 3분. 월드 ID 계정을 만든 사람은 월드코인 25개를 받게 된다. 이 씨는 “친구 소개로 오게 됐다. 오픈AI 창업자가 만든 코인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다”고 말했다. 뒤이어 홍채를 등록하러 온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윤수영(30·가명)씨는 “챗GPT를 실무에 사용하면서 샘 올트먼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며 “인공지능(AI)이 사람을 흉내내는 시대가 왔을 때 신원의 위·변조를 방지하려는 차원에서 홍채를 등록하러 왔다”고 설명했다.


월드코인이 뭐야


월드코인은 ‘챗GPT 아버지’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2019년 알렉스 블라니아와 공동 설립한 가상자산 프로젝트다. 일반인공지능(AGI·인간 이상의 지능을 가진 AI) 시대에 대비해 월드코인으로 인간임을 인증하고, 일자리를 잃은 이들에겐 훗날 ‘보편적 기본 소득’(UBI)도 지급한다는 게 이들의 계획. ‘월드 앱’을 내려 받고 오프라인 기계인 오브에 홍채를 스캔하면 개인별 ID가 생성된다. 이용자 수를 늘리기 위해 현재는 무상으로 소정의 ‘월드코인’(WLD)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 6월 방한한 올트먼 CEO는 서울에서 열린 월드코인 간담회에서 “블록체인에 기반한 월드코인은 AGI 시대 인류에게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자신 했다. 현재까지 월드코인 누적 가입자는 200만명이 넘는다. 지난달 24일에는 바이낸스, 오케이엑스, 빗썸, 코빗 등 국내외 가상자산 거래소에 정식 상장됐다. 0.15달러(바이낸스 기준)로 상장한 월드코인은 한때 5.29달러까지 폭등했지만 현재는 2.2달러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올트먼 CEO는 트위터에 일본 현지의 홍채 등록 대기줄을 공유하면서, “8초마다 1명씩 (홍채)인증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 샘 올트먼 트위터 캡처

줄 서서 받는다는데, 한국은?


월드코인에 따르면 전 세계 각지에 1500개의 오브가 설치돼 있다. 일본(도쿄), 인도(벵갈루루) 등 일부 국가에선 홍채 등록을 위한 대기줄이 생길 정도로 주목도가 높다. 싱가포르·일본·홍콩 등지에선 하루 평균 1000명 이상이 월드 ID를 발급 받고 있을 정도. 하지만 국내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오브를 찾을 수 있는 곳은 광화문·을지로·역삼 총 3곳, 현장에 직접 가보니 홍채를 등록하러 방문하는 이들은 1시간에 한 명 꼴이었다. 이들은 “개인정보 유출 우려보다 올트먼에 대한 신뢰가 크다”고 말했다. 오브가 설치된 카페의 운영관리자(OM) 김민성(31·가명) 씨는 “코인 지갑을 만들 줄 모르시는 70대 정도 어르신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월드코인 개발사 ‘툴포휴머니티’ 관계자에 따르면 24일 상장 이후 국내서 월드ID를 발급 받은 이들은 300명 이상이다.
카페 한 켠에 설치된 오브. 이 카페 대표는 하루 20여명이 오브 등록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김인경 기자


내 홍채정보, 괜찮나


샘 올트먼의 이름값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홍채정보의 유출·도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 해킹되면 어쩌나: 오브가 인식한 홍채 이미지는 암호화하고 곧바로 삭제돼 유출 가능성이 없다는 게 월드코인의 주장이다. 그러나 삭제를 해도 해시값(파일 특성을 암호화한 것)이 남으면 정보 도용이 가능하다는 반박도 있다. 지난 24일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은 블로그를 통해 월드코인의 신원증명(PoP) 방식에 대해 “홍채 인식은 의도한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다”며 “오브에 백도어가 설치되면 가짜 신원이 생성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데이터 착취 비판도: 월드 ID를 발급한 국가가 주로 개발도상국이라는 점을 들어, 가상자산을 미끼로 가난한 이들의 생체정보를 수집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월드코인 측은 “개발도상국은 금융거래가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코인에 대한 관심이 더 높다. 전략적으로 기회를 본 것”이라며 “유럽 국가인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도 활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 모호한 용도: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급할 계획이라지만, 뚜렷한 사용처가 없다는 것도 논란거리다. 재원 마련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고 있다. 주기영 크립토퀀트 대표는 트위터에 “글로벌 디지털 화폐로서 비트코인을 대체하기 위해 왜 월드코인을 발행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홍채 정보는 전자 지갑 관리에도 사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앞으로는


월드코인은 국내 월드ID 가입률을 늘리기 위해 성수·홍제 등 다양한 지역에 오브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다만 전 세계 가입자가 늘어날수록 월드코인의 홍채정보 수집을 둘러싼 시선은 더 따가워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보기술(IT)매체 테크크런치는 “월드코인이 유럽 데이터 보호 당국의 레이더망에 들어왔다”며 영국·프랑스·독일 등에서 월드코인의 개인정보보호 여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더 알아야 할 건


월드코인이 잘 되면 가장 큰 수혜를 입는 건 누구일까. 업계에선 총 발행량의 25%를 월드코인 내부자들이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조재우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현재 발행량의 대부분은 마켓메이커(MM)가 가지고 있고, 코인이 더 많이 발행되면 월드코인에 투자한 벤처캐피탈(VC)들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라고 짚었다. 이어 “화제가 될 만한 코인에는 다단계 사기꾼들이 유입될 수 있으므로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인경 기자 kim.ink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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