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토렴과 탕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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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국밥집에서 주인의 손놀림에 경탄했다.
밥이 든 뚝배기에 가마솥 뜨거운 국물을 붓다 따랐다 반복한다.
국물을 되돌리며 밥을 물들인다는 퇴염(退染)에서 변한 우리말.
국밥으로 치면 국물 간은 세고 밥덩이 속은 냉랭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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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국밥집에서 주인의 손놀림에 경탄했다. 밥이 든 뚝배기에 가마솥 뜨거운 국물을 붓다 따랐다 반복한다. ‘토렴’이다. 국물을 되돌리며 밥을 물들인다는 퇴염(退染)에서 변한 우리말. 골고루 데워진 밥알과 고명이 맛깔났다. 예전엔 급해도 찬밥을 맑게 헹군 후 장국 토렴으로 이웃을 대접했다니 섬세한 상생 노력이었다. 쌀쌀맞은 요즘 국정과 대조된다. 공언했던 처칠·애틀리 파트너십은 요원하고 국민에겐 오만하다. 외쳤던 3대 개혁들도 제자리다. 국밥으로 치면 국물 간은 세고 밥덩이 속은 냉랭하다고나 할까.
토렴은 밥솥 부족 문제를 극복했다. 칼바람 장터에서도 낱알마다 국물이 배게 했다. 몰리는 끼니때 온도 맞추며 밥알은 빼고 국물을 빠르게 따라내려면 높은 숙련도가 필요했다. 다른 방식들도 있다. 뜨거운 국물에 그냥 찬밥을 미리 넣어두면? 자칫 국이 식고 밥도 붇는다. 찬밥을 넣어 같이 끓이면? 전분이 너무 풀려 맑은 국물 맛이 덜하다. 뚝배기 타고 흐르는 국물이 비위생적이라는 불평도 있으나 그릇을 깨끗이 씻고 체로 된 국자를 써도 된다. 토렴은 상충효과들 속에서 효율적으로 진화했다.
국밥에 빗대면, 정부가 만드는 개혁안이 국물이고 설득 대상이 밥덩이다. 그 안의 국민, 이해당사자, 야당이 국물에 데워지며 공감도가 커진다. 토렴으로써 낱알들을 덥혀 동력을 얻을 테고 최종 국밥 맛이 바로 개혁 성과다. 국정에서의 토렴은 뜻을 통하는 소통, 이익을 나누는 양보, 하나로 만드는 통합이다. 이들이 부족하니 찬밥 뭉치를 욱여넣기만 한 듯 겉은 불어터지고 속은 차갑다. 최근 여러 사례에선 국물조차 밍밍하다. 이대로라면 곧 우리 운명을 가를 개혁은 실패다.
반대로 불통 독식 분열이 팽배하다. 여야의 불통은 최고조다. 일본 오염수에 대해서도 원래 입장들에는 입 씻고, 공포만 심는 야에 여는 먹방에 주력하느라 골든타임 다 날렸다. 야는 겉치레 입법들을 일삼고 당정은 대통령 거부권에 기댄다. 전투하는 듯하지만 늘 안락한 상호 기생이다. 집권만 하면 독식하려고 과하게들 덤비며 국정 안정이란 미명 속에 논공행상에 몰두한다. 국민의 93%는 정치이념 간 분열이 심각하다고 본다. 정규직 노사 지역 세대 등에서도 그 비율이 무척 높다. 하지만 여야의 갈라치기는 끝이 없다.
그래도 집권세력의 변화가 먼저다. 법정에선 이기면 끝이나 국정에선 반대편이 다시 친애하는 국민이다. 선악으로 가르려 말자. 참모들의 몰지각한 두둔에 대통령이 현명한 국민으로부터 더욱 괴리된다. 사교육 종사자를 죄다 사회악의 주범으로 몰다가 괴담이 싫다고 고속도로 공사도 팽개치겠다니, 받들어야 할 주인을 공복들이 외려 협박하는 꼴이다. 최고위직들의 책임 회피 또한 일상이 됐다. 이태원 참사 때의 무마와 궤변들을 잘 학습했지 싶다. 이번 집중호우 비극에 중앙과 지방의 기관장들이 벌이는 남 탓, 부하 탓 공방이 그때와 끔찍이 똑같다. 불행히도 이런 태도들의 변화는 원체 더디다.
잘 덥힌 밥알들이 개혁의 동력이다. 현재의 낮은 국정 지지로는 토렴이 시급한데 참 아득하다. 철들자 망령드는 식의 불행을 피하려면 대거 탕평책이 기폭제다. 깨인 시민 국가에서 동종그룹의 배타성 결기만으론 밥알은커녕 국물의 간도 못 맞춘다. 개혁 군주 정조, 얼마나 절박했으면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까지 만들었을까. 1만7000개나 되는 직업의 세계에서 혁신과 품격으로 동료에게 인정받는 일류 국민이 많다. 옥죄기보단 윈윈을 좇는 그들을 애걸해 국정의 토렴을 틔우자고 어렵사리 소망해본다. 유권자들이 화답하리라. 탄핵이 기각된 만큼 이제 행정안전부 장관도 새로 영입할 적기다.
김일중(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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