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두 개의 문화를 넘어서

2023. 8. 1.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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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우리나라는 학문을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로 양분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공식적 교과과정에는 문과-이과 구분이 없어졌지만, 대학입시의 틀은 아직 그 개념으로 짜여 있기 때문에 실제 교육도 그렇게 이루어진다. 그렇게 나뉜 학생들은 반대편 집단을 이질적으로 여기며 깔보기까지 하는 경향이 있고, 그것이 사회생활에까지 이어진다. 한국 학제에 도입된 문과-이과 구분은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전통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고유 전통에도 선비와 장인을 차별대우하는 경향이 강하게 배어 있었다.

「 고질적인 문과·이과 학제 구분
스노, 문학과 과학 사이 벽 한탄
괴테는 문호이면서 자연과학자
학문 융합의 역사 잊지 말아야

이런 경향은 동아시아에서 좀 심하기는 하지만 사실 세계적인 현상이다. 영국 과학자이자 작가 스노(C P Snow)는 1959년 『두 문화』라는 저서를 통해 문과적 문화와 이과적 문화가 서로를 배격하며 사회적 분열을 일으키는 사태를 한탄하였다. 스노 자신은 이과와 문과 사이의 장벽을 거침없이 넘나들었던 사람이었다.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고위공직자로 다년간 재직하였으며, 소설을 출간하고 문학비평에도 손을 댔다. 스노가 특히 개탄했던 것은 영국 지배층이 대부분 문과적 성향을 가지고 과학 분야에 대해서는 아무런 상식조차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과학, 기술, 의학 전통은 참으로 강했는데도 말이다. 누가 셰익스피어를 읽어본 적 없다면 교양 없는 사람으로 여기면서, 열역학의 제1, 2 법칙이 뭔지 개념조차 없는 것은 왜 문제 삼지 않는가? 스노는 이러한 영국 문화를 질타했고, 진정한 교육이란 이과와 문과를 겸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노의 ‘두 문화’ 논의는 당시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지금까지도 주목받는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교육이나 문화가 개선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스노는 대단한 과학자도 아니었으며, 소설가로서도 그리 훌륭하다는 평가는 받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 뭐라 한다고 해서 다들 선뜻 그 말을 듣지는 않았으리라.

그런데 역사를 좀 더 올라가 보면 스노보다 훨씬 더 명망 있는 지식인들이 문과-이과 분리를 비판하고 그 장벽을 뛰어넘고자 시도했던 것을 볼 수 있다. 한 예는 독일의 괴테(Goethe)이다. 독일문화권의 낭만파 문학을 대표했으며, 지금까지도 독일 문화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거장이다. 그가 남긴 희곡과 소설과 시는 독일인들이 자랑하는 문화유산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서양 문학을 좀 안다는 사람은 『파우스트』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다 안다. 이과생들도 괴테의 이름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과생도, 문과생도 잘 모르는 건 이 괴테가 아주 진지한 과학자였다는 점이다. 독일 낭만파 지식인들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양분하지 않았다. 시를 쓰는 것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일이었다. 이런 정신에 따라 괴테는 식물학에 심취하였으며, 물리학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광학에서 뉴턴의 이론에 정반대로 맞서는 독창적 이론을 펼쳤다.

뉴턴은 무지개에 보이는 모든 색의 빛은 따로따로 존재하며, 그것들이 섞여서 무색의 태양광이 형성된다고 해석하였다. 괴테는 그런 환원론적 이론을 배척하면서 밝음과 어두움이 충돌하면서 여러 가지 색깔이 형성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괴테가 그냥 상상력을 펼친 것이 아니라 수많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발전시킨 이론이었다. 200년 전 괴테가 했던 그 실험들을 현재 재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는 얼마 전 그 학자들이 만든 전시물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다. 가장 간단한 예로, 뉴턴은 햇빛을 슬릿(좁은 틈)과 프리즘에 통과시켜 무지갯빛 스펙트럼을 만들었는데, 괴테는 햇빛의 경로에 슬릿의 정반대 격인 가느다란 막대기 모양의 장애물을 놓음으로써 다른 색들이 배열된 스펙트럼을 만들었다.

괴테보다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프랑스의 베르그송(Bergson)도 좋은 예가 된다. 20세기 초반 프랑스어권 철학계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가졌던 베르그송은 조금은 난해한 형이상학적 이론을 펼쳤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개념은 시간이었다. 시간은 모든 경험의 토대이며, 시간을 수학적 양으로 이해하는 것은 천박하고 잘못된 일이라 주장했다. 그런데 베르그송은 시간의 본질을 형이상학적으로만 논의한 것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포함된 시간 개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런 내용으로 1922년 저서까지 발간했는데, 그 책을 읽어보면 아인슈타인의 최첨단 물리학 이론을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괴테나 베르그송 같은 인문계 지식인들이 펼쳤던 과학적 주장에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있었는지는 복잡한 이야기라 짤막한 신문 칼럼에서 논할 만한 주제는 못 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런 문과의 거장들이 세계 최고의 자연과학자들과 당당히 맞서서 논쟁하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문과-이과 양분법을 초월하고자 한다면 잊어버린 융합의 역사를 기억해 보는 것도 의의가 있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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