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의 시시각각]'이동관 탄핵설'의 실체
윤석열 대통령이 이동관 특보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로 지명한 지난달 28일, MBC 뉴스데스크는 관련 뉴스를 첫 꼭지부터 6개 연속 배치했다. 보도 시간은 총 14분48초. 이날 뉴스데스크의 리포트 개수가 18개(단신 제외)였고, 전체 시간이 43분 남짓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3분의 1을 ‘이동관 뉴스’로 도배한 것이다. 이동관이 유력 대선 주자인가. 지상파 메인 뉴스에서 장관급 인사를 이렇게 다룬 적은 일찍이 없었다. 아니면 ‘이동관 지명’이 유독 MBC 경영진에겐 천재지변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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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문회 전부터 야권서 탄핵설 제기
방통위 무력화가 목표인 시나리오
장관 탄핵도 득실 계산밖에 없나
」
리포트 내용은 비판 일색이었다. 2개월 전 내정 사실이 알려질 때부터 나왔던 자녀 학폭, 보도 개입 의혹 등 기존 논란을 되풀이했다. 수신료 분리징수에 직면한 KBS도 비판 위주로 4개 뉴스를 냈지만 ‘오송 참사’ 보도 이후 다섯 번째 순서였다. SBS는 9·10번째 뉴스였다. 최소한의 뉴스 밸류, 공정성, 균형감각 등을 이제 MBC에 기대하는 건 사치인 듯싶다.
왜 이토록 알레르기 반응일까. 혹자는 이명박(MB) 정부 트라우마를 말한다. MB 정부 시절 MBC 김재철 사장은 최승호·박성제 등 11명의 PD·기자를 해고했다. 당시 MBC 노조는 청와대 홍보수석·대변인으로 언론을 총괄했던 이 후보자를 김재철 사장 배후로 지목했다. 그런 의심,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동관-김재철 커넥션의 증거가 여태 나왔었나.
오히려 ‘권언유착’ 정황은 문재인 정부에서 더 노골적이었다. 대표적인 게 2017년 8월 민주당 워크숍에서 배포됐다는 방송 관련 문건이다. 문건에선 ▶언론적폐 청산을 당 ‘적폐청산위’ 최우선 과제로 추진 ▶방송사 구성원 및 시민단체, 학계 중심으로 KBSㆍMBC 사장 퇴진운동 전개 ▶방통위 권한을 활용해 방송사 내부 엄중 조사 등을 적시했다. 문건 내용은 대부분 실현됐다. 고대영 KBS 사장, 김장겸 MBC 사장은 문재인 정부 1년도 안 돼 쫓겨났다. 곧이어 KBS와 MBC엔 일종의 적폐청산위(진실과미래위원회, 정상화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완장 찬 이들은 매섭게 칼을 휘둘렀다. 그렇다면 이동관 결사 반대의 속내는 트라우마보다 ‘도둑이 제 발 저려서’ 아닐까.
이 후보자는 현재로선 20일께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8월 말∼9월 초에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 흥미로운 건 임명 전부터 탄핵설이 공공연히 나온다는 점이다. 시나리오도 구체적이다. 원래 방통위는 위원장 1명, 위원 4명의 ‘5인 체제’인데 현재는 3인(여 김효재·이상인, 야 김현)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김효재·김현 위원은 23일로 임기 종료다. 따라서 후임을 여야가 추천해야 하는데, 이를 민주당이 거부하겠다는 거다. 방통위원은 국회 추천 과정에서 동의를 필요로 하기에 거야(巨野)가 제동을 걸면 추가 인선은 불가능하다. 이미 야당 추천으로 올라간 최민희 전 의원을 대통령이 여태 임명하지 않았다는 것도 민주당엔 명분이다.
이럴 경우 이동관 위원장-이상인 위원의 2인 체제가 불가피하다. 방송법에는 “방통위는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의결된다”라고만 돼 있다. 2인 방통위가 불법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전체 인원의 절반도 안 되는 ‘반쪽짜리 방통위’가 공영방송 등 주요 사안을 결정한다면 민주당은 이를 빌미로 이동관 탄핵에 나설 수 있게 된다. 헌법재판소에서 기각 결정이 나면 역풍 부는 거 아니냐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이상민 장관의 경우에서 봤듯, 헌재 결정엔 최소 5개월이 걸린다. 결국 이동관 탄핵안이 11월에 국회를 통과하면 이동관 궐위-방통위 유명무실-현 KBS·MBC 체제로 내년 총선(4월 10일)을 치를 수 있게 된다.
허황된 소설일까. 꼼수 탈당, 체포안 뒤집기, 본회의 직회부 등 여태 현란한 기술을 써 왔던 민주당으로선 이미 시뮬레이션을 돌렸을지 모른다. 이해득실을 위해서라면 장관 탄핵이 뭔 대수랴. 한국 정치의 타락이 이 지경까지 왔다.
최민우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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