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기후재난, 경제 정책으로 풀어야
전 세계가 기후변화의 파괴적 현실 앞에 노출되어 있다. 유럽은 최근 섭씨 40도가 넘는 폭염과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호주는 대한민국 국토의 두 배가 넘는 면적이 불에 탔다. 미국 플로리다를 덮친 허리케인은 1000년에 한 번 경험하는 폭우를 쏟아부었다. 파키스탄은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고 1700여 명이 사망하는 대재앙을 겪었다. 이제 극한기상 현상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2020년 54일의 역대 최장 장마, 2022년 서울 강남 침수와 태풍 힌남노로 인한 인명피해와 포스코 가동 중단, 올해 중부와 남부 지방에서의 하천 범람과 산사태로 인한 비극적 상황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는 극심한 자연재해가 일상화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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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재해는 99%가 물과 관련
피해 예방하는 인프라 필수적
예산도 선제적으로 배정해야
」
날로 커지는 재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기후변화 대응 전략은 두 가지다. 첫째, 완화(mitigation) 정책이다.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둘째, 적응(adaptation) 정책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과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찾는 것이다.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 대책은 탄소 감축이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경제 주체들의 노력도 중요하다는 것이 적응 정책의 등장 배경이다.
세계은행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성공적인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서는 재정정책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보고서는 기후변화 피해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상황과 비교해 사전 예방 조치와 사후 복구 조치의 경제적 효과를 거시경제 모형을 통해 분석했다. 그 결과 후자보다 전자로 인한 GDP 성장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부 차원의 사전적 노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홍수에 대비하여 제방을 쌓고 저류지를 만들며 산업시설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인프라를 구축하는 노력은 재정 투자를 필요로 한다. 신규 세원 발굴이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적응 정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여 집행한다면, 자연재해로 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이고 자본 스톡의 회복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보고서는 강조한다.
재난 피해를 주제로 필자 연구팀이 수행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 재해의 99%는 홍수와 폭설 등 물과 관련돼 있다. 장기 강수량 및 경제성장률 예측치 등 다양한 변수를 동원하여 피해 비용 예측 모형을 구축했다. 예상대로 강수량과 불투수층(不透水層) 면적은 홍수 피해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였다. 특히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피해 비용과 음의 상관성을 가졌다. 재정이 튼튼할수록 자연재해에 대비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여력이 있음을 시사한다.
‘적응 금융’이라는 개념이 있다. 국가 혹은 지역공동체가 기후 위험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필요로 하는 금융을 의미한다. 국내·해외·공공·민간 등 여러 원천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기후 재난을 경감하기 위해서는 공공예산 확보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해외 재원은 개도국을 향할 것이며, 적응 정책에는 민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공공재적 성격이 많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적응은 환경정책의 영역을 넘어선다. 중앙과 지방정부 차원의 대규모 예산이 필요하다. 이는 수입 측면에서의 세원 확보와 지출 측면에서의 자원 배분 우선순위로 귀결된다. 세계은행이 발간한 기후적응 보고서의 핵심 독자로 경제 부처 장관을 콕 짚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기후정책은 오랫동안 경제정책의 변방에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역대 기획재정부 수장 중 기후 문제에 진심이었던 장관이 있었던가. 개발 사업처럼 단기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분야에 예산이 집중되는 반면, 장기적이고 편익을 정량화하기 힘든 기후 적응에 재원을 우선 배분하는 용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자연재난으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사전 예방이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시대를 맞아 재정의 우선순위를 근본적으로 돌아볼 때가 되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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