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철의 이코노믹스] 2050년 노인 비중 OECD 최고…최고 난제는 재정 유지
재정건전성 왜 지켜야 하나
정부와 재정의 존재 이유가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을 위한 것이니 이런 지적이나 주장은 나름의 일리가 있다. 다만,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바로 재정의 유지 가능성 충족이다. 올해와 내년은 물론 중장기적으로도 재정이 지속할 수 있어야만 적극 재정이든 확대 재정이든 가능하고 의미가 있다. 국가와 정부가 영속적인 것인 만큼 재정도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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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 재정 지출 요구 많지만
중장기적 재정지속성 고려해야
현재 국가채무 비율 낮다 해도
복지지출 증가속도 OECD 1위
재정고삐 죄고 확충방안 찾아야
」
재정 자원 고갈한 왕조는 단명
피로감을 느낄 정도로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것은 정책에 실패한 정부는 용서받아도 재정 유지 가능성에 실패한 정부는 용서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무리한 정복 전쟁이나 대공사로 재정자원 고갈을 초래한 왕조는 모두 단명하고 말았다. 재정이 중장기적으로 지속하도록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정부의 선택사항이 아닌 제1의 책무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헌법에서 말하는 국가 수호는 국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재정 기반의 온전한 보존도 포함한다. 채무상환 능력을 상실한 개인이나 기업은 금융기관이나 공적 기관에 의해 구제나 회생이 가능하지만, 국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의지할 곳이 없다. 국가의 소중한 자산을 매각하거나 이를 볼모로 경제적 독립을 희생하고서야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재정이 최후의 보루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다.
소규모 개방경제에 건전재정은 숙명
경제 규모가 작고 다른 나라와 교역 비중이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는 크고 작은 외부적 충격에 노출돼있다. 그런 만큼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두 가지 숙명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충분한 외환보유고와 건전한 재정기반 유지가 그것이다.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대외 지급준비자산의 부족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1997년 외환위기 사태의 쓰라린 경험이 잘 설명한다. 현재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530조원이 넘는 외환을 그저 유사시에 대비한 여윳돈 정도가 아니라 거시경제 안정성 수호를 위한 파수꾼으로 보는 것은 이런 값비싼 역사적 교훈 덕분이다.
외환위기 발생이 일시적인 달러 유동성 부족 때문이라 생각해 못내 억울해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국가신용 관리 부실에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당시는 국제금융시장에 외화표시 국채를 발행해 자본조달을 하는 정상적인 국가신용 시스템이 작동할 수 없는 상태였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신용이 탄탄한 국가라면 달러를 일시 차입하여 용이하게 해결했을 유동성 위기가 국가적 혼란으로 비화한 것이다.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대외신인도 결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가 재정 건전성이다. 소규모 개방경제국으로 분단 상황에서 안보문제까지 안고 있는 우리나라에 튼튼한 재정의 뒷받침은 국제적인 신뢰 확보를 위해 요구되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선도국가 반열에 오르고자 한다면, 건전한 재정 관리는 예산을 얼마나 늘려야 하는가의 단순한 정책적 선택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 악화, 금융기관 파산 초래
국가신인도 외에도 재정 건전성이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많다. 대표적으로 금융부문의 건전성은 재정 상태에 크게 의존한다. 민간은행 발행 채권의 위험 프리미엄은 해당국의 국채 프리미엄에 비례한다. 재정상태가 양호하지 못한 국가는 국채에 대한 요구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고, 덩달아 민간의 금융조달 비용도 그만큼 높아져 은행과 기업의 수익성을 떨어뜨린다. 종국에는 국제경쟁력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낳는다.
재정 건전성의 악화는 예기치 않은 금융기관의 파산 위기를 초래하기까지 한다. 지난해 가을 영국 정부의 감세안이 부른 연기금 파산위기가 좋은 예다. 코로나19 기간 대규모 재정투입으로 부채가 많이 증가했음에도 신임 영국 총리에 의해 재원조달 방안이 결여된 감세안이 강행되자 재정 건전성 악화를 예상한 국제금융시장은 영국 국채와 파운드화의 즉각적인 투매로 응대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순식간에 영국 국채 가격이 곤두박질치면서 이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던 다수의 연기금과 은행이 자산 가치 하락으로 파산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긴축금융의 고삐를 죄던 영란은행 총재가 원치 않는 정책 급선회를 통해 긴급구제 차원의 유동성을 풀면서 사태는 간신히 진정되었고, 총리는 책임을 지고 사실상 해임당했다.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인플레를 겪고 있는 영국의 현재 상황은 당시 헝클어진 중앙은행의 물가 대응 기조에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재정 여력이 부족한 국가가 과도한 재정적자를 누적시키게 되면 금융부문에 어떤 위기를 가져오는지는 남유럽 재정금융위기 사례에서도 다양하게 확인된다. 재정 여력이 충분치 않으면 은행부실에 정부가 마땅히 대응할 수단이 없어 심각한 금융위기로 확대되는 경우가 공통으로 발견된다. 금융 부문에 대한 재정 건전성 악화의 부작용은 우리나라처럼 비기축통화국이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중이 매우 높은 경우 훨씬 크게 나타난다는 점이 많은 실증연구의 결과인 만큼 주의해야 한다.
재정의 힘으로 외환위기 극복
우리나라는 금융위기를 재정의 힘으로 성공적으로 극복한 경험이 있으면서도 재정 건전성의 중요성을 교훈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외환위기 때 금융기관 부실을 털고 구조조정을 신속히 추진함으로써 금융과 외환시장 안정을 조기에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재정에서 나온 공적자금 168조원 덕분이었다. 당시 우리나라가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0%를 갓 넘긴 매우 건전한 재정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외화 비축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재원이 부족해도 중앙은행 외환보유고를 꺼내 쓰자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외환위기 극복의 원동력이자 외환보유고보다 국가적으로 더 신중하게 관리해야 할 재정은 지금 천덕꾸러기 신세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5년 전보다 5배 이상 늘어나 재정 여력 자체가 크게 줄었다. 그런데도 부채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은 점을 들어 재정에 여윳돈이 있다 주장한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대응으로 매년 평균 100조원 대의 재정적자가 있었음에도 재정 자원을 다시 충당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추경을 통해 경기부양이나 일회성 복지비용 지출을 위한 부채 늘리기에 열심이다. 경기둔화 시기에 어려워진 민생은 마땅히 국가가 챙겨야 한다. 그러나 640조원의 세출예산은 도대체 어디에 쓰이고 누가 심의했기에 불과 몇 개월 후에 다시 예산의 5%를 추가하거나 변경하자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2060년 국가채무, GDP 145~161% 추정
주요 선진국은 2000년대 초고령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복지지출이 빠르게 늘어나 부채가 크게 증가하는 등 재정 관리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 우리나라 고령화 이행 과정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빠르다. 2000년 이후 복지지출 증가 속도는 OECD 국가 중 단연 1위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사회보장위원회(2020년)의 제4차 사회복지지출 전망에 따르면, 지금의 복지제도가 유지된다고 가정해도 불과 17년 후인 2040년에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GDP의 20.1%로 늘어난다. 현재의 국세 수입 전부가 복지비용으로 소요된다는 뜻이다. 연금을 비롯한 사회보험료나 세금 인상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나 국회예산정책처는 장기재정전망에서 2060년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이 GDP의 145~161%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2050년부터 노인 인구 비중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서게 되는 한국이 과연 이러한 재정 부담을 견뎌내고 국가적 난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지 국제사회가 의구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실제 국제신용평가 기구나 OECD 및 세계은행은 최근 들어 부쩍 한국의 재정은 아직 건전하지만 고령화로 인해 중장기적 유지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초미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재정개혁과 준칙도입, 그리고 중장기 세입확충 방안을 도출해낼 범정부 기구를 발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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