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비둘기와 사람, 생명 무게는 같아
폭염에도 산중 나뭇가지 끝자락에 바람이 일고, 바위 틈새에서 샘물이 솟는다. 한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정수기 없이 마음껏 샘물을 마실 수 있는 곳에 산다는 건 큰 행복이다.
지난봄부터 넉 달 동안 산책로를 다듬고, 방을 고치고, 너른 마당을 만들었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일곱 명의 수행자가 찾아왔다. 삶이 평화로우면 발걸음 하나에도, 손길 하나에도 여유로움이 깃든다. 모든 것이 소중하고 평등하게 다가온다. 삶을 가꾸는 장소를 아름답게 만드는 하루하루가 그대로 기쁨이다. 하나의 공동체가 평화로움을 만들어 가고 유지하면 세상은 평화롭게 변한다. 세계는 세밀하게 연결되어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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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 전생 다룬 『자타카』 일화
비둘기 살리려 매에 살 떼준 왕
생명 가치는 크기로 잴 수 없어
」
얼마 전 ‘한반도 평화행동’이라는 단체에서 정전 70주년을 맞아 노벨평화상을 받은 달라이라마의 메시지를 받고 싶다는 요청이 있어, 다람살라로 연락을 드리니 곧바로 보내오셨다.
“서로 연결된 의존적인 세상에서 더 이상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경제체제는 다르더라도, 세계 한 지역의 평화와 안녕은 다른 지역의 안정과 평화에 의존해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새로운 세대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된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라며, 여기에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이 달려 있습니다. 우리 안의 증오와 질투의 마음을 줄이고, 연민의 마음과 더 넓은 시야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부터 평화를 발전시켜야만 공동체와 국가, 그리고 세계에 평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결같은 지혜로운 말씀이다. 한국전쟁과 티베트 침공은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망명 중인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가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유달리 깊은 이유이기도 하다.
생명의 무게는 국가, 인종에 상관없이 같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의 무게는 같다.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를 엮은 책 『자타카』에 ‘비둘기와 사람의 생명 무게는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옛적 시바왕은 현명하고 자비롭고, 백성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왕이었다.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는 어느 날, 호숫가를 거닐고 있었다. 그때 무엇인가가 쫓기듯 비명을 내면서 왕의 품속으로 들어왔다. 한 마리 비둘기였다.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왕에게 자신을 보호해줄 것을 호소했다. 바로 그때 발톱이 날카롭고 사납게 생긴 매 한 마리가 뒤쫓아 날아왔다. 매는 비둘기가 왕의 품속에 파묻혀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왕에게 말하였다.
“왕이시여, 그 비둘기는 나와 내 가족들의 저녁거리이니 돌려주십시오. 돌려주지 않는다면 저희 가족들은 끼니를 걸러 배고픔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왕은 선뜻 자신의 오른쪽 다리의 살을 베어 매에게 주었다. 그런데 매는 비둘기와 똑같은 무게의 살덩어리를 요구하였다. 두 다리를 모두 베어내도 조그마한 비둘기의 무게만큼이 되지 않음을 이상히 여긴 왕은 마침내 자신의 온몸을 저울대 위에 올려놓으면서 마음속으로 빌었다.
“모든 중생은 고통과 번뇌와 무지의 바다에서 갈 길을 몰라 헤매고 있다. 나는 이미 그들을 고해로부터 건져내리라고 발원하였다. 지금 내가 받는 육신의 고통은 중생이 받는 고통의 십육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욕망으로 가득 찬 이 육신을 가져가 매의 가족이 배고픔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난다면 이 죽음을 기꺼이 받음으로써 부처가 되는 작은 보살행으로 여기리라.” 그제야 왕의 온몸과 비둘기의 무게가 같아져 저울이 평형을 이루게 되었다.
『자타카』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생명의 무게는 크기와 상관이 없다. 사람과 사람은 더할 나위가 없다. 자세히 보면 물건마다 차이가 없다. 모든 것이 소중하다.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잠깐의 시간도 허투루 흘러버려서는 안 된다. 감정에 휩쓸려 마음을 낭비해서도 안 된다. 매 순간 매 순간이 귀하고 귀한 순간이다. 이렇게 귀한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자신의 마음을 챙겨야 한다.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운문 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마른 똥막대기니라.”
불자들은 부처를 거룩하고 성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운문 선사는 가장 하찮게 여겨지는 물건에 부처를 빗댔다. 왜 그랬을까. 운문 선사가 언급한 말의 낙처(落處)가 그 물건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선사는 바로 성스럽다거나 더럽다는 마음을 내는 그 본질을 드러낸다. 자신의 마음을 잘 챙기라는 태산 같은 가르침이다.
본래 마음은 구름 걷힌 하늘인 듯 맑고, 잔잔한 호수마냥 평화로우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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