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죽은 자의 안식, 산 자의 공포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검은 망토를 입고 가면을 쓴 사나이가 모차르트를 찾아와 ‘레퀴엠’을 써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음산한 장면을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은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첫 곡인 ‘주여! 저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이다.
레퀴엠은 가톨릭에서 죽은 자를 위해 치르는 진혼미사다. 서양문명이 이룩해 놓은 가장 장엄하고 화려한 죽음의 통과의례로 꼽힌다.
레퀴엠은 우리말로 ‘안식’을 의미한다. 하지만 나는 레퀴엠의 ‘진노의 날(Dies irae)’이라는 대목을 들을 때마다 이 미사가 과연 죽은 자의 ‘안식’을 비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진노의 날은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날로 “주께서 재림하는 날, 불로써 세상을 심판할 때, 죽은 자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죽은 자의 안식을 비는 자리에 굳이 무시무시한 최후의 심판에 대한 얘기를 꺼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레퀴엠 미사는 죽은 자의 안식을 비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참석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죄짓지 말고 살아라. 아니면 최후의 심판 날에 무시무시한 불의 세례를 받게 될 거야. 이런 식으로 말이다.
모차르트·베르디를 비롯한 많은 작곡가가 레퀴엠에 곡을 붙였다. 작곡가마다 조금 차이가 있지만 음악에서도 ‘진노의 날’은 아주 무시무시하게 그려진다. 특히 베르디의 레퀴엠 중 ‘진노의 날’은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공포감을 안겨준다. 힘찬 팀파니 소리에 맞추어 합창단이 포효하듯 ‘진노의 날’을 외치고, 여기저기서 심판의 날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려온다. 이 대목을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이거 완전히 사람 겁주고 있잖아?”
진회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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