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만 언급되면 급락…금감원 칼 뺐다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3. 7. 31.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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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등치는 사모전환사채

기업 사냥꾼 3명이 허위 사실로 주가를 띄우기로 공모했다. 이들은 A사 전환사채(CB·Convertible Bond)를 미리 보유해놨다. 그리고 A사가 개발한 신약이 임상시험을 통과한다는 정보를 띄웠다. 하지만 그 정보는 가짜였다. 임상은 엎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들 일당은 CB를 주식으로 전환한 뒤 높은 가격에 팔아 12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B사의 전 대표 등 5명은 사모CB를 발행하며 가짜 소문을 퍼뜨렸다. 신규 바이오 사업 추진에 사용할 대규모 자금이 유입된다는 허위 사실을 시장에 유포했다. 이 과정에서 주가가 오르자 일당은 450억원대 부당이득을 얻었다.

기업의 주요 자금 조달 수단이었던 전환사채의 그늘이 짙어졌다. CB를 활용한 사기와 주가 조작 사례가 늘어나면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 25일 ‘사모CB 악용 불공정거래 기획조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금감원은 840억원에 달하는 다양한 부당이득 사례를 적발하고 혐의자 33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지난 1월 ‘사모CB 합동대응반’을 구성한 금감원이 6월 말까지 40건의 관련 불공정거래 의심 사건 중 14건에 대한 조사를 완료한 결과다.

사모CB 발행한 뒤 투자 유치 가짜 뉴스

사모CB 발행 쉬워 기업 사냥꾼 악용

CB를 활용한 불법 사례는 다양하다. 조사 대상 40건 중 25건에서 불공정거래 전력이 있는 기업 사냥꾼 등이 연루됐다. 불공정거래 세력이 투자조합이나 투자회사를 통해 사모CB 등을 인수하는 식의 사례가 40건 중 27건이나 됐다. 부정거래 혐의도 40건 중 32건에 달했다. 시장에서 유행하는 테마 사업에 신규 진출한다고 선언하는 등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다고 투자자를 속여 돈을 끌어모으는 방식이다. 납입 가능성이 없는 사모CB를 발행한 뒤 자금 조달에 성공한 것처럼 꾸며 투자자를 현혹하기도 했다.

불공정 세력이 CB로 ‘장난질’을 치며 개인 투자자 피해가 크게 늘었다. 금감원 조사 결과, 불공정거래에 이용된 기업 39개사 중 29개사가 상장폐지, 관리종목 지정, 경영 악화 등 상황에 빠졌다. 상장폐지된 기업은 4개사, 관리종목 지정 기업은 14개사나 됐다. 매출액이나 영업이익이 30% 이상 줄어든 기업도 11개사에 달했다.

이렇게 사모CB가 악용되는 이유는 발행이 쉽기 때문이다. 현재 사모CB는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이사회 결의만으로 발행할 수 있다. 지난 4월 금융당국이 제도를 개선하기 전까지는 발행결정 주요사항 보고서에 납입 방법을 기재하는 의무조차 없었다. 대용납입(상장사가 CB 발행 대금을 현금이 아닌 실물자산으로 받는 것)의 경우에도 납입자산 상세 내역이나 평가 방법을 적는 의무가 없었다.

원래 CB는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아주 중요한 창구였다. CB는 회사 주식으로 전환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이다. 한마디로 ‘자본’으로 바꿀 수 있는 ‘부채’다. 원래 채권(bond) 성격이 있지만, 일정 기간 이후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게 핵심이다. 재무구조가 다소 취약하거나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코스닥 중소형 상장 기업들이 주로 활용해왔다.

CB는 비교적 안전한 자산인 채권의 성격에다 수익성 높은 주식 특징까지 갖고 있어 투자자에게 인기가 있다. 예를 들어 CB 보유자는 해당 회사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을 누린다. 주가가 하락해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격(전환가액)을 낮출 수 있어 나름대로 ‘안전판’이 마련돼 있는 구조다. 차입자인 CB 발행 기업은 부채가 주식으로 전환돼 갚아야 하는 부담을 덜어낸다는 점에서 CB의 주식 전환이 나쁘지 않았다. 상호 간 윈윈이 가능한 상품인 셈이다.

그러나 CB 발행은 기존 투자자에게는 ‘독’이 되기도 한다. CB 투자자가 전환권을 행사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달라고 신청하면 회사는 그만큼 주식을 더 발행한다. 이 경우 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치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CB 전환가액은 시세에 맞춰 주기적으로 조정(리픽싱)된다. 전환청구권이 행사되는 때는 통상 전환가액이 시세보다 저렴한 경우가 일반적이라, 주가 하락(희석) 요인으로 작용한다.

IPO 이후 CB 물량 대거 출회

뒤늦게 뛰어든 개미 투자자 곤혹

CB는 공모주 시장을 뒤흔들기도 한다. 공모주 가격제한폭이 확대되면서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CB 물량이 대거 쏟아져 나올 수 있어서다.

최근 상장한 필에너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필에너지는 7월 14일 공모가(3만4000원)보다 237%(종가 기준) 오르며 화려하게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장중 13만2000원까지 오르며 공모가 대비 4배에 근접했다. 하지만 장 마감 후 ‘2021년 발행한 160억원 규모 사모CB가 주식으로 전환된다’고 공시하며 하락세가 시작됐다. 대규모 물량이 시장에 풀릴 수 있다는 우려에 시간외거래에서 하한가를 찍었고, 7월 17일 최고 24.17% 떨어졌다. 실제 사모CB에 투자한 기관 투자자의 전환가액은 1만3333원에 불과하다. 이미 상당한 시세 차익을 거둔 기관 투자자가 투매에 나설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7월 27일 상장한 에이엘티도 KDB산업은행의 CB 물량으로 주가가 요동쳤다. 산업은행이 전환할 수 있는 주식 수는 47만588주로, 전체 상장 예정 주식 수(848만9671주)의 5.25%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에이엘티 역시 상장 당일 주가가 큰 폭으로 올랐다 급락하며 요동쳤다. 앞서 기관 투자자 수요예측에서는 1835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흥행을 거뒀다.

기존 주주들은 CB 보유자의 전환청구권 행사가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판단될 경우 ‘전환사채 처분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해 해당 권리 행사를 막아달라고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가처분 소송의 경우 기각당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전환권 행사는 자본시장법상 보장된 정당한 권리 행사로 불법적인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CB 발행과 유통과 관련된 공시의무를 강화할 예정이다. 특히 전환권이나 콜옵션 같은 기업 지배구조와 지분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를 중심으로 투명성을 높일 계획이다. 또한 CB가 무분별하게 발행돼 시장에서 과도하게 누적되며 투자자 피해로 이어지는 문제 또한 검토·개선하기로 했다. 주가 조작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어 적발 시 엄중 제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전환사채 시장 공정성·투명성 제고 세미나’에 참석해 전환사채 악용을 막고 기업 자금 조달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전환사채 발행과 유통에 관련된 공시의무를 강화해 시장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전환사채 발행 회사가 만기 전에 취득한 사모전환사채를 재매각하는 등 무분별하게 발행·유통돼 투자자 피해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CB가 주로 사모로 발행돼 시장 투명성이 낮다”며 “CB를 매개로 한 불공정거래 가능성을 없애는 데 금융당국이 공을 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0호 (2023.08.02~2023.08.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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