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인의 양심... "오염수 탱크가 일본땅 절반을 메우더라도"
[김경년, 유성호 기자]
▲ 일본 시인 가와즈 기요에씨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호텔 라운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파주 임진각 망배단에서 열린 '세계 예술인 한반도 평화선언'에 참가한 이유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 유성호 |
"오염수 탱크가 일본 땅 절반을 가득 메우는 한이 있어도, 오염수를 바다에 버려서는 절대 안됩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바다 방류가 임박한 가운데, 한국을 방문한 일본의 한 유명 시인이 오염수 방류는 절대 안된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저장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자국 어민과 이웃나라 국민들에게 폐를 끼치면서까지 방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발언의 주인공은 가와즈 기요에(61)씨. 시의 아쿠다가와상(일본 최고의 문학상)이라고 일컬어지는 'H씨상(2003년)'을 수상한 일본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힌다. 일제 강점기 저항시인 윤동주의 시에 빠져 그의 고향인 중국 지린성 명동촌까지 방문했고,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무상화 폐지에 반대하기 위해 문부과학성을 항의방문 하는 등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가와즈씨는 지난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아 파주 임진각 망배단에서 열린 '2023 세계예술인 한반도평화선언'에 해외 대표로 참석해 전쟁으로 신음하는 우크라이나의 평화,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자작시를 낭독하기도 했다.
가와즈씨는 최근 오염수 방류, 강제동원 등 이슈에 있어서 한국 정부가 잇달아 양보하는 친일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국민들의 동의 없이 한쪽 정부가 일방적으로 구애한다고 해서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우려섞인 표정을 지었다.
▲ 가와즈 기요에 시인이 지난 27일 파주 임진각에서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자신의 시를 낭독하고 있다. |
ⓒ 오마이TV |
"윤동주 시의 매력은 절묘한 비유... 중국에 있는 그의 고향도 방문했다"
- 임진각에서 열린 세계예술인한반도평화선언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했다고 들었다. 어떤 계기로 참가했나.
"한국에서 30여명, 해외에서 6명의 예술인들이 파주 임진각에서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모였다. 나는 한국의 한성례 시인의 소개로 참가하게 됐다."
- 이날 한 편의 시를 낭독했는데, 어떤 내용이었나.
"대학시절 전공인 독일문학을 공부하다가 우연히 유대인 시인 파울 첼란의 시에 나오는 '민들레야, 우크라이나는 이다지도 초록색이다'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서 200km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으나 2차대전 중 나치의 침공을 받아 어머니는 총에 맞아 죽고 아버지는 감옥에서 병으로 죽었다. 본인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고생했다고 한다. 이 시는 그의 어머니가 죽은 걸 알게 된 뒤에 쓴 시로, 폭격을 받아 문이 없어졌는데도 어머니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비참함을 그리고 있다. 이 시에 영감을 얻어 다시금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평화, 그리로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나의 시를 쓰고 낭독하게 됐다."
- 한국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2003년 'H씨상'을 받았을 때 한성례 시인이 내 시를 번역해서 한국에 발표하고 싶다고 하셔서 그때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코로나도 있고 해서 지난 2017년 이후 처음 방한했다."
- 윤동주 시인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지만, 외국 시인인 그를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그의 시 번역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모즈공방)를 읽고 처음으로 윤동주의 시와 삶을 알게 됐고 감명받았다. 2006년 경 개인적으로 큰 병을 앓고 우울증에 걸렸었는데, 그의 시를 공책에 베껴 써가며 버텨냈을 정도다."
- 윤동주 시의 어떤 면에 이끌렸나.
"그의 시는 비유가 대단히 절묘하다고 생각한다. 하늘, 바람, 별, 시가 무엇인지 역사적 배경과 관련해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다. 아마 직설적인 정치적 언어를 사용했다면 오히려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윤동주 시의 매력은 그 비유에 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의지도 깊이 간직하면서 체념이나 허무감도 느낄 수 있다. 기도와 같은 정신으로 감싸려는 자세가 훌륭하다. 한국,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 윤동주 시인이 거주했던 교토에 사셔서 더욱 공감하는 바가 클 것 같다.
"그렇다. 내 집 가까운 곳에 그가 거주하던 하숙집이 있고 그의 시비도 세워져있다. 그가 체포됐던 경찰서도 그 자리에 남아있다. 그가 다니던 도시샤대학으로 가는 길에 있는 다리를 보면서 그도 나와 같은 풍경을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같다. 2012년에는 중국 지린성 명동촌에 있는 그의 묘소를 방문해 그를 그리는 시 '프로메테우스-윤동주에게'를 낭독할 기회를 얻어 감명깊었다. 그의 고향인 명동촌의 아름다운 자연과 소박한 풍경은 그의 시 세계 그 자체였다."
▲ 일본 시인 가와즈 기요에씨. |
ⓒ 유성호 |
"주간지 <문예춘추>에 윤동주 관련 시를 게재한 것을 계기로 조선학교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은 2010년 2월 하토야마 정권에 의해 조선학교 무상화 제외가 결정됐고, 나는 조선학교로 가는 언덕길을 주제로 한 시 '학교로 가는 고개'를 써 항의 리플릿에 실었다. 재일교포 시인들과 함께 '조선학교 무상화 제외 반대 앤솔로지'란 시집을 출간해서 이를 들고 문부과학성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일본 정부의 방침은 변함이 없고 우리는 계속 투쟁해나갈 것이다."
- 일본 내에서 조선학교에 대한 여론은 어떠한가.
"조선학교에는 북한국적, 한국국적은 물론 일본국적 학생들도 다니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조선학교는 고향과 같은 곳이다. 그러나 조선학교가 북한 내지 조총련과의 연관성이 있다는 이유로 거부감을 갖는 일본인들이 많다. 한 고명한 일본 시인에게 무상화를 위한 시를 써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해 그것을 실감한 적이 있다. 매우 안타까웠다. 그러나 조선학교에 대해 부당한 사설을 게재한 신문의 논설위원에게 직접 전화해 문제점을 지적하자 이후엔 그런 기사가 나오지 않게 된 경우도 있다. 항의전화든 투서든 재빨리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 일본 시인의 양심... "오염수 탱크가 일본땅 절반을 메우더라도" ⓒ 유성호 |
- 일본이 곧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내 여론은 어떤가.
"일본 언론에 한국 사람들이 읽으면 화를 낼 만한 기사들이 많이 실려 우려된다. 즉, '오염수' 문제에 대해 일본인들의 절반 이상은 정부가 인정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인정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도 한국이나 중국이 반대하는 건 악의가 있지 않냐는 것이다."
- 방류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를 볼 수 있는 건 일본 어민들이잖나. 그들을 포함해 당사국인 일본내 여론은 너무 잠잠한 것 아닌가.
"어업 관계자들은 현장에서 반대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오염수에 의한 피해를 진짜 피해가 아닌 '풍평(소문)피해'라고 일컫는 등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과거 후쿠시마 사고가 났을 땐 원전 폐쇄를 요구하는 국회앞 시위도 대규모로 벌어졌었는데, 지금은 많이 사그라지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만 하는 느낌이다. 그들도 대부분 고령화돼 동력이 떨어져가고 있는데, 젊은이들은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는 우익정당을 지지하고 있다. 일본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 한국 정부 및 집권 세력은 오염수 방류에 대해 우려하는 여론에 대해 '괴담'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도 '도시전설'이나 '데마(선동)'라는 말로 반대 여론을 억누르려고 한다. 만약 이게 괴담이고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 일본 정부는 왜 오염수를 일본내 호수나 강 혹은 앞바다에 버리지 않고 해안에 터널까지 만들어 1km이상 먼바다에 버리려 하나. 말이 안된다. 개인적으로는 오염수 탱크가 일본 땅 절반을 가득 메우는 한이 있어도, 오염수를 바다에 버려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유물로 남겨도 된다고 본다."
- 한국에서 시집을 출간할 계획은 없나.
"기회가 있으면 내고 싶고, 실제 제안을 받고 있다. 성원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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