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환자 속출... 저는 피닉스에 살고 있습니다
[신경아 기자]
▲ 뜨거운 햇볕 아래 물을 마시고 있는 피닉스 시민. 7월 내내 미국 남서부를 용광로로 만든 폭염은 8월 초 늦은 비가 오고 나서야 누그러지기 시작할 것으로 미국 기상청은 예보했다. 2023.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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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살고 있는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더위, 불가마 등등 푹푹 찌는 세기적 더위의 상징으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피닉스는 7월 말 현재 일일 평균 기온이 섭씨 39.4도이며, 섭씨 43도를 넘는 날이 20일 이상 연속으로 진행되고 있다.
필자가 글을 쓰는 이곳 시각으로 30일 오전 7시 30분 현재 밖의 온도는 벌써 36도를 넘고 있다. 숫자만으로는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잘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이맘때쯤 피닉스는 파리와 모기가 없다. 여름마다 야외에서 맛난 음식을 펼쳐 놓고 먹을라치면 달려드는 파리와 모기 때문에 성가시고 귀찮은 적이 있는가? 피닉스로 오라.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피크닉 테이블을 만졌다가 화상을 입을 경우는 있을지언정 파리, 모기와의 씨름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곤충마저 외면한 더위이기 때문이다. 오직 살아남는 곤충과 동물은 개미, 도마뱀, 전갈 등이다. 한낮에는 새들도 좀처럼 볼 수 없다. 간혹 볼 수 있다고 해도 이들이 매우 낮게 날거나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이 동네의 야생 동물들은 대체로 날씬하다. 산토끼, 하이에나도 체구가 작고 뭔가 없어 보인다.
▲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한 달여간 이어진 폭염으로 사막 식물인 선인장까지 고온을 견디지 못해 죽어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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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도시에 병원 북새통
이곳 사람들의 일상생활도 요즘의 불더위에 타격을 입고 있다. 피닉스 사람들은 오랫동안 더위에 적응해 온 노하우가 있는데도 작금의 더위는 노하우마저도 먹히지 않는 형편이다.
병원에는 화상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얇은 여름 바지를 입고 더위에 정신이 어질하여 아스팔트 바닥에 앉았다가 그만 엉덩이에 화상을 입은 환자들, 아무 생각없이 야외에 놓인 쇠로 된 물건을 만졌다가 손에 화상을 입은 경우 등등이다. 다른 지역은 온열 환자, 열사병 등으로 병원을 찾겠지만 피닉스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에 더하여 화상 환자들까지 병원이 북새통이다.
피닉스에서는 몸매,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민소매에 반바지 그리고 플립플롭(쪼리)을 신는 것이 용서가 된다. 워낙 덥기 때문이다. 하루 중 기온이 제일 높게 올라가는 시각이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이므로 이 시간대에는 되도록 외부 활동을 안 하는 것이 너와 내가 사는 길이다.
만약 이 시간대에 부득이하게 운전하거나 야외에 나가야 한다면 거의 반나체로 광속으로 움직이든가 온몸을 몽땅 가리고 눈만 빠끔히 내미는 복장으로 나가든가 해야 한다. 이 시간대가 아니더라도 선크림과 선글라스 그리고 모자는 필수이다. 햇볕의 강도가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안과가 많다. 요즘 같은 날에는 찬란한 태양 아래에 15분 정도 서 있으면 하늘에서 압정이 수십 개가 쏟아져 피부에 꽂히는 느낌이다. 피닉스는 매우 건조하기 때문에 후덥지근한 바람이나 기온이 아니라 헤어 드라이의 뜨거운 바람 또는 세탁 건조기 속에 머리를 집어 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더위 덕분에 피닉스의 하루 일과는 다른 지역보다 조금 일찍 시작한다. 새벽 5시가 되면 대부분의 '별다방'과 마트가 문을 열며 새벽 4시부터 형광 운동복이나 광부들이나 둘러맬 머리띠 플래시를 차고 강아지와 조깅하는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방학도 5월 중순이면 시작한다. 공공근로 같은 야외 작업도 새벽에 시작한다. 치과나 안과 등의 병원 진료도 아침 7시부터 시작한다. 오후 3시나 4시경이면 공공기관은 파장 분위기가 된다.
▲ 북반구 곳곳에 폭염이 몰아닥친 가운데 18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전광판이 화씨 118도(섭씨 48도)를 표시하고 있다. 피닉스에서는 화씨 110도(섭씨 43도)를 넘는 날이 20일 이상 계속되고 있다. 2023.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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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나 자선단체 등에서는 노숙자들을 위한 쿨링 센터(Cooling Center)를 도시 곳곳에서 운영한다. 이곳에 가서 물도 마시고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도록 하고 있다. 피닉스는 찬물 한 잔이 매우 자비로운 곳이다. 어느 패스트푸드 음식점에 가든 물 한 잔을 요청하면 기꺼이 준다. 음식을 따로 주문하지 않더라도 무한대로 무료로 제공한다. 물 한 잔으로 삶과 죽음이 갈라질 수 있기 때문이리라.
지구 온난화 시대를 지나 지구 열대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난리들이다. 타 지역의 사람들은 피닉스의 일상을 마치 영화 보듯이 보고 있겠지만 어쩌면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게 될 일을 미리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제발 피닉스의 일은 피닉스에서 멈추기를 기도하지만 "올 것은 결국 온다"는 말에 불길한 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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