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피싱범?" 유튜버 발칵…입금된 20만원에 당했다, 무슨일

이영근 2023. 7. 3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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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판슥(본명 김민석·37)은 지난 7일 황당한 댓글을 발견했다. “금융범죄 사고 계좌로 등록돼 있어 후원계좌 입금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은행 고객센터에 전화해 물어보니 더 황당한 답이 돌아왔다. 판슥의 계좌로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 20만원이 송금됐다는 신고가 들어와 모든 계좌가 동결됐다는 것이다. 졸지에 보이스피싱 범죄 용의자가 된 판슥은 일단 은행을 찾아 피해를 입었다는 송금자와 연락해 20만원을 돌려주고 동결된 계좌를 풀었다.

유튜버 판슥(본명 김민석)은 이달만 총 네 차례 보이스피싱 범죄자라는 신고를 당해 모든 계좌가 정지되는 일을 겪었다. 사진 유튜브 '판슥' 캡처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17일 라이브방송 도중 후원계좌가 막혔다는 시청자의 댓글이 또 달렸다. 다시 은행을 찾아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이틀 뒤, 다시 계좌가 동결됐다. 수익창출이 막힌 판슥은 모친의 계좌로 후원을 받았지만 ‘사기이용계좌’라는 딱지가 붙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송금자와 신고자는 동일인이 아니었다. 송금자들은 상선(上線)의 지시를 받고 입금만 담당한 ‘전달책’이었다. 상선은 불법 사채를 사용한 송금자들에게 접근해 현금 상품권이나 사채 탕감을 미끼로 내걸었다. 그리고 “우선 비대면 소액대출을 받아 지정한 계좌에 20만원씩 입금하라”고 지시했다. 송금자들은 “단순 송금이 불러올 결과를 몰랐다”는 취지로 해명했다고 한다.

판슥은 “많게는 하루 500만원 가까이 들어오던 후원금이 막혀 피해가 막심하다”며 “비슷한 일을 겪는 유튜버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 신고 등 법적 대응을 할 생각이지만 배후에 있는 인물이 누군지 몰라 답답하다”고 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악용한 신종 사기 수법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에 이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계좌는 피해자가 신고하면 금융기관이 지급정지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악용해 범죄와 무관한 제삼자의 계좌를 거래정지 상황에 놓이게 하는 것이다. 주로 계좌가 온라인에 노출된 자영업자와 법인 계좌가 표적이 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사기이용계좌 지급정지 건수는 2020년 2만1794명, 21년 2만3750건, 22년 1~3분기에만 1만9846건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신종 수법이기 때문에 명확한 통계는 없지만, 지급정지 요청 건수가 증가 추세이므로 관련 피해도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판슥의 계좌에 입금된 의문의 20만원. 이후 판슥의 계좌는 모두 정지됐다. 사진 판슥 제공

판슥처럼 송금자와 수령자의 합의가 원만히 이뤄지는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다.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는 송금자가 수령자와의 연락과 합의를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때는 은행과 금감원을 통해 이의신청과 피해구제신청 절차 등을 밟아야 하는데 3개월 가까이 소요된다.

그렇다 보니 단순 괴롭힘을 넘어 지급 정지 해제를 미끼로 돈을 요구하는 ‘통장 협박’까지 성행하고 있다. 마음이 급한 피해자에게 “돈을 주면 지급 정지를 풀어주겠다”고 꼬드겨 거액을 뜯어내는 수법이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아닌 범인에게 돈을 보낸 셈이라 거래 정지는 풀리지 않는다.

지난해 말부터 온라인에서는 ‘HE942’라는 입금자명을 가진 이에게 통장 협박을 받았다는 피해 사례가 다수 나타났다. 한 피해 사례에 따르면, 15만원을 입금해 계좌를 정지시킨 HE942는 텔레그램으로 피해자를 유인해 115만원을 요구했다. 성희롱을 일삼기도 했다. HE942는 지금도 텔레그램에서 버젓이 활동 중이다. 그는 “개인 원한·통협연락주세요. (통)장 확실하게 죽여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있다.

통장협박으로 피해자를 양산한 'HE942'는 여전히 텔레그램에서 활동 중이다. 텔레그램 캡처

경찰도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해 10월 통장 협박으로 불법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에게 합의금 8억을 뜯은 보이스피싱 일당 40명을 입건했다. 메신저 피싱으로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원격 제어한 이들은 10~20만원 소액을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 계좌로 옮겨 계좌를 정지시킨 뒤 합의를 유도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자가 다른 범죄자를 등친 수법"이라며 "약점이 있는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점조직 형태로 이뤄져 단속에 한계가 있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과 협의를 통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을 24일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이 입금됐어도 사기이용 계좌가 아니라고 금융기관이 판단하면 피해액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정상 입출금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윤창현 의원실 관계자는 “계좌를 노출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의 타깃이 돼 구제 수단 없이 오래 고통을 겪어야 하는 현행법에 한계가 있어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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