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채수근 상병 사고 브리핑 돌연 취소…의문 키우는 해병대
해병대가 31일 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작전 중 순직한 고(故) 채수근 상병 사고 관련 브리핑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군 당국은 민간경찰의 정식 수사 전 조사 내용을 밝히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그렇다면 애초에 언론 설명을 자처한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해병대 측이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이번 사고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겠다고 알려온 것은 지난 28일 오전 10시 50분이었다. 그러다 브리핑을 진행하기로 한 31일 오후 2시를 1시간 남겨 놓고 오후 1시쯤 취소한다고 알려왔다. 이날 오후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설명하기로 한 일정도 함께 취소했다. 해병대는 조사를 더 보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일정은 이미 사흘 전 공지된 데다 해병대 역시 브리핑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해병대 관계자는 이날 오전만 해도 국방부 정례 브리핑 중 관련 질의가 나오자 “오늘 오후 백그라운드 브리핑 때 설명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에 언론과 국방위 의원실의 문의가 잇따르자 군 당국은 추가로 해명에 나섰다. 국방부는 “해병대 수사단은 사고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필요시 군사법원법에 따라 경찰로 사건을 이첩하게 돼 있다”며 “내부 법리 검토 결과 경찰의 정식 수사 전 언론 설명이 향후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이 나왔다”고 밝혔다.
군사법원법상 채 상병 순직과 관련한 정식 수사는 민간 경찰이 담당할 예정인데, 군 당국의 사전 설명이 자칫 수사 ‘가이드라인’ 제시 등 불필요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7월 개정된 군사법원법은 군인 사망 사건을 비롯해 성범죄, 입대 전 범죄 등 3대 사항에 대해 민간 경찰의 수사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군 안팎에선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브리핑 준비에서 가장 우선 이뤄지는 법리 검토 절차가 이처럼 허술하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전례를 찾기 힘든 브리핑 무산에 다른 배경이 있을 가능성은 그래서 제기된다. 야당 국방위 의원실 관계자는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이 직접 국회에 와 설명을 준비하던 중 연락을 받고 돌연 발길을 돌렸다”며 “군 당국이 브리핑을 중단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법리 검토라는 이유를 뒤늦게 찾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해병대 수사단 조사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혐의점이 추가로 발견됐거나 내부 의견 충돌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 예비역 해병대 장성은 “민간 경찰의 정식 수사 전 군 조사는 이들이 파악하기 어려운 지휘 체계 등 책임 소재를 들여다본다”며 “여기에서 내부 의견 조율이 마지막까지 원활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결국 해병대 특유의 폐쇄적 조직문화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여론의 더 큰 비판을 우려해 수뇌부 판단으로 막판에 브리핑을 취소했을 가능성이다.
실제 해병대는 지난 22일 채 상병 영결식 후 김계환 사령관 명의의 ‘지휘 및 강조말씀’을 예하 부대에 하달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해당 문건에는 “유튜브, 육대전, 기타 언론사 기자들에게 제보해주는 내용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임의대로 제공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모습을 방관할 수가 없다”는 등 내용이 담겨 군 수뇌부가 직접 나서 입단속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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