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CEO후보]①대기업·글로벌 경험 갖춘 차상균…"국가에 봉사"
SAP에서 2018년까지 의사결정 관여
국비 장학생 출신…서울대에 10억 기부
편집자주 - 연매출 25조 KT그룹의 수장을 가릴 운명의 한 주가 시작됐다. KT는 다음 달 초 후보 3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진행한다. 김영섭 LG CNS 전 대표, 박윤영 전 KT 기업부문장(사장), 차상균 서울대 교수다. 면접을 거쳐 차질 없이 CEO 단독 후보 추천이 이뤄질 경우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하는 일정이 곧바로 진행될 예정이다. 대표 승인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형태로 주총 참석 지분의 60%를 넘겨야 한다. 본지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업인 KT 후보 3명을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차상균 서울대 교수는 인메모리 데이터베이스(DB) 플랫폼인 HANA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HANA는 한글의 하나를 의미하고, 데이터베이스와 처리장치를 하나로 합친 의미다. 현재 상용화된 HANA 플랫폼은 구글, 아마존, 메타, 인텔, HP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에서 사용되고 있다. 차 교수가 개척한 대용량 메모리 컴퓨팅 시장은 현재의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으로 발전했다.
주목할 점은 차 교수가 단순한 기술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독일 시가총액 1위 회사인 소프트웨어 기업 SAP의 현재를 만든 일등 공신이다. 2005년부터 2018년까지 SAP의 자문역을 맡아 회사가 성장하는 데 핵심 임원으로 활약했다. 그가 SAP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펴보면 일각에서 제기된 '큰 기업 경험이 없다'는 평가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AP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이다. SAP의 시총은 31일 현재 1522억유로(약 213조원)다. 지난해 매출 308억유로(43조원), 영업이익은 48억유로(6조7000억원)였다. 10년 전인 2013년 매출은 168억유로(23조원)였다.
때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서울대 제자 12명과 함께 미국 실리콘밸리에 'TIM'이라는 벤처회사를 창업했다. 대용량 데이터베이스를 메모리에 분산하고 압축, 저장해 실시간으로 분석 가능한 기술을 연구했다. 서울대 교수 시절부터 쌓아온 노하우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2005년 SAP가 이 기술에 관심을 갖고 인수합병(M&A)을 제안했다. 차 교수는 자신의 회사를 넘긴 뒤에도 개발을 주도하며 인메모리 DB 플랫폼 만들기에 앞장섰다. 현재 3만여개의 기업이 사용하고 있는 'SAP HANA'의 시작이다.
차 교수는 SAP HANA 생태계를 만든 핵심 중의 핵심으로 꼽힌다. 또 다른 핵심 인물인 SAP의 공동 창업자 하소 플래트너로부터 멘토링을 받아 경영자 훈련도 받았다.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때 SAP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차 교수를 쫓아내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기술의 핵심을 쥐고 있는 차 교수는 실력으로 극복했다. 2008년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당시 반도체사업부장)을 설득해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도 않은 1TB의 고집적 메모리를 확보했다. 전사적으로 프로젝트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계기였다. 그 결과가 SAP의 인메모리 플랫폼 시장 장악이다. 차 교수의 판단과 뚝심으로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는 말이 나온다.
◆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신념 하나로그가 최근까지도 SAP에 몸담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차 교수는 현직 서울대 교수다. 우리나라 최고의 국립대라는 간판은 업적을 대놓고 드러내기에는 껄끄러운 자리다. 그러나 업계는 차 교수의 업적과 평판을 잘 알고 있다. 지난해 삼성호암상 공학상 분야에 차 교수가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도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차 교수는 그간 실리콘밸리로부터 수많은 재창업 제의를 받았다. 막대한 부가 따라올 수 있는 달콤한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두 포기하고 임지순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이끌던 미래연구위원회의 제언에 따라 빅데이터연구원 설립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준식 연구부총장과 성노현 연구처장이 차 교수를 새 연구소의 수장으로 추천했다.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의 시작이다. 그는 대학원 초대 원장에 올랐다. 디지털 인재 100만을 양성하자는 국정과제인 '디지털 인재양성 종합 방안'도 차 교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가 서울대의 부름에 주저 없이 수락한 이유는 자신의 과거 때문이다. 차 교수는 국비장학생 출신이다. 가정 형편상 외국 유학은 꿈도 못 꾸던 그는 국가의 지원으로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김재익 당시 경제수석이 국비 장학생을 대폭 늘려 가능한 일이었다. 국가로부터 과분한 은혜를 받았다고 항상 생각하는 차 교수는 언젠가는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과거 서울대 총장을 도전했던 것도, KT 대표를 현재 도전하고 있는 배경에도 이런 철학이 깔려있다. 그는 서울대에 10억원을 기부한 공로로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외풍과는 무관한 진짜 전문가KT는 대표를 새로 뽑을 때마다 항상 '외풍' 논란에 시달린다. 차기 대표 3인 중에는 정치권 인사는 없지만 여전히 외압설은 돌고 있다. 경북사대부고 출신과 관련된 의혹이다. 후보 3명 중 차 교수와 김영섭 전 대표가 공교롭게도 이 학교 출신이다.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의 친형인 이종섭씨가 경북사대부고 동문이라는 점이 알려지며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차 교수는 정치권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평생 연구와 글로벌 비즈니스에 전념했던 인물이었다. 오히려 정치권과 인연이 없어 불리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또한 7년간 KT 이사 재직할 당시 '소장파'로 유명했다. 각종 비리에 얽혔던 황창규 전 대표의 연임에 반대했으며 구현모 전 대표와도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거수기'라는 말까지 나오는 일반적인 사외이사와는 달리 자신의 소신과 어긋나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영진으로부터 '왕따'를 당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차 교수의 또 다른 장점은 SAP 등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인맥이다. 그의 경력과 인맥은 KT의 청사진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KT는 AI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집중 육성하고 있으며 내수 위주의 기업에서 벗어나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점에서 차 교수가 다른 후보에 비해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신업계에 대한 이해도 높다. 박사 과정을 밟기 전까지 그의 전공은 통신의 기본인 전기전자공학이었다. AI 전문가인 그는 혁신 창업과 글로벌 시장 개척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차 교수는 주변 지인들에게 국민기업인 KT의 미래 비전과 전략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펼치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고 한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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