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일본도 구애…남태평양 섬나라 총리의 '행복한 고민'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기독교 흑인 국가를 만들겠다."
2019년 6월, 남태평양의 섬나라 파푸아뉴기니의 총리, 제임스 마라페의 취임선서 중 일부다. 파푸아뉴기니는 인구 약 1000만 명, 국내총생산(GDP)은 약 300억 달러(약 38조 원, 2019년 기준)로 112위인 하위권이다. 마라페 총리의 선서에 대해 AFP가 "실현 불가능한 꿈일 수 있다"고 지적한 배경이다. 그러나 약 3년 뒤인 현재, 파푸아뉴기니와 마라페 총리의 몸값은 껑충 뛰었다.
올해 봄부터 마라페 총리와 만남을 청한 국가원수는 미국의 조 바이든,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일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등을 망라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 문제로 방문이 불발되자 대신 미국 외교의 간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보냈다. 지난 27일(현지시간)엔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파푸아뉴기니를 찾아 마라페 총리와 만났다.
파푸아뉴기니의 인구나 GDP에 실질적 변화가 있어서는 아니다. 국력 자체보다는 파푸아뉴기니의 지정학적 위치와 국제정세를 반영한 상황이다. 핵심은 역시, 미국과 중국 간의 헤게모니 다툼이다. 파푸아뉴기니는 미ㆍ중 사이 고래 싸움에 터지는 새우등이 아니라, 그 싸움에 올라타 기회를 누리고 있는 셈.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30일 파푸아뉴기니에 대해 "급작스럽게 높아진 위상엔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숨어있다"고 전했다.
파푸아뉴기니는 인도네시아와 국경을 마주한 남태평양 국가다. 미국령인 괌 및 미국의 주요 동맹 호주와 지근거리다. 미국이 그리는 대중(對中) 견제 큰그림의 핵심, 인도ㆍ태평양에서 요충지라는 의미다. 여기에다 마라페 총리가 주도한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은 이런 지정학적 위치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개별 규모는 작지만 다수인 태평양의 섬나라 국가들을 모아, 그 큰형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셈이다. 중국이 지난해 파푸아뉴기니 인근 태평양 섬나라, 솔로몬제도와 안보 협정을 체결하면서 미국의 위기의식이 높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5월 마라페 총리가 파푸아뉴기니 수도 포트 모르즈비에서 개최한 PIF엔 모디 인도 총리도 직접 참석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같은 계기, 마라페 총리는 미국과는 방위협력협정(DCA)에 서명했고, 마크롱 대통령과는 파푸아뉴기니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계약을 추진했다.
파푸아뉴기니가 가진 무기 중엔 풍부한 천연 자원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니켈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로 주목받는다. LNG 역시 파푸아뉴기니의 핵심 자원이다.
마라페 총리는 1971년생이다. 2007년 정계 입문한 뒤 재무부 장관 등을 거쳤으나 야당의 불신임 투표 위기를 겪는 등, 국내 정치에선 곡절이 많았다. 그런 그에겐 외교를 통한 국제 위상 강화가 국내 경제 발전 및 자신의 지지층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그가 3년 전의 약속을 지키며 파푸아뉴기니의 경제발전을 일궈낼 수 있을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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