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다룬 '더 데이스'가 보여준 일본 사회의 단면
[지유석 기자]
▲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그린 ‘더 데이스’. |
ⓒ 넷플릭스 |
동일본 대지진 당시 벌어졌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그린 일본 드라마 <더 데이스>를 정주행했다.
이 드라마는 요시다 본부장(야쿠쇼 코지) 이하 원자력 발전소 직원, 그리고 현장에 출동한 자위대원들의 헌신을 그린다. 무엇보다 미증유의 원전 사고를 겪었음에도 일본은 핵 에너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불편하게 비칠 수 있겠다.
물론 원전 사고 직후 반성하는 모습이 보이기는 했었다. 지난 2015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내각 수장이었던 간 나오토 전 총리가 한국을 찾은 적이 있었다. 방한 당시 간 총리는 국회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교훈과 탈원전 과제'란 주제의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에 대한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일본 같이 기술력이 높은 나라에서는 원전 사고가 없다'는, 이른바 원전 안전신화를 품고 있었다. 베트남, 터키 등에 안전한 일본 원전을 사용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이런 생각이 틀렸음을 느꼈다."
하지만 탈핵 기조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동일본 대지진 다음해인 2012년 12월 자민당이 압승하면서 고 아베 신조 총리는 2기 임기를 시작했는데, 2기 아베 내각이 원전 재가동으로 정책방향을 바꾼 것이다.
이어 기시다 내각은 지난해 12월 '그린 트랜스포메이션 실현을 위한 기본방침'을 밝히면서 탈원전 기조를 철회했다.
이 드라마 <더 데이스>는 요시다 소장의 독백으로 막을 내린다. 요시다 소장은 자연의 위력 앞에 핵발전소 역시 무기력했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요시다 소장의 문제의식은 아베·기시다 내각의 탈핵 기조 철회를 비판하는 데까지는 나가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결국 '여기까지'인 셈이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죽음의 문턱을 본 남자'를 모티브로 했는데, 원작자는 카도타 류쇼(門田隆将)로 우리에겐 혐한 인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원작자 성향, 그리고 우경화로 치닫는 현 일본 사회분위기를 감안해 보면 이 정도라도 사실 대단한 성취다.
▲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그린 ‘더 데이스’. |
ⓒ 넷플릭스 저팬 |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일본이 처한 현실이 처연했다. 파국을 막기 위해 종횡무진 활약하는 이들은 얼핏 봐도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 직원들이다. 요시다 소장부터 그렇다. 이들은 절대 젊은이들을 앞세우려 하지 않는다.
요시다 소장의 고군분투에도 사태는 수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자 요시다 소장은 필수인력 외엔 철수하라고 지시한다. 현장에 지원 나온 자위대 역시 철수명령을 이행한다. 이때 한 젊은 대원이 양심의 가책을 느낀 듯, 한사코 현장을 사수하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이러자 군에서 모든 생을 바친 듯한 나이 지긋한 하사관이 이렇게 타이른다.
"너희 젊은 녀석들은 빨리 가. 너희는 이제부터 시작될 길고 긴 회복을 위해 힘을 써 줘야지."
일본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지 오래다. 원전 사고 현장에서도 이런 현상이 엿보인다. 특히 원전 사고가 나자 사고 수습을 위해 중·장년 직원들이 영웅적인(?) 활약을 펼치고, 현장을 사수하겠다는 결기로 가득한 젊은이들을 구슬러 대피시키는 모습은 젊은이가 귀해진 현대 일본사회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드라마 속 토오전력(현실은 도쿄전력)이 대규모 단전이 불가피하다고 하자 내각은 극구 반대한다. 병원과 가정의 전기가 끊겼을 때, 병원에 입원해 있거나 인공 심박기를 달고 있는 노년층의 안위가 위태로워진다는 게 내각의 반대 이유다. 고령화 사회 일본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면이다.
한국이 일본과 마찬가지로 '고령화·저출생'이란 고민을 안고 있음에도, 젊은이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풍조가 만연해 있음은 실로 개탄스럽다.
끝으로, 기시다 내각은 탈핵 공식 폐기에 이어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행태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파국을 막기 위해 헌신했던 이들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임을 기시다 내각이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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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미주 한인매체 <뉴스M>에 동시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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