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살’ 쏟아낸 LH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사하라 [현장기자]

강창욱 2023. 7. 3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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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만 문제 아닐 수도… 곳곳 철저히 살펴야
검단 전면 재시공하는데 땜질 공사로 될 일인가
“발주만 했지 관심 없었다”는 LH 사장 물러나야


윤석열 대통령은 3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표 무더기 ‘순살 아파트’ 사태와 관련해 “아파트 지하주차장 부실 공사에 대해 전수조사하라”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발 빠르게 나섰지만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사태의 본질에까지 미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일은 지하주차장만 확인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하주차장을 무량판 구조로 지은 전국 LH 아파트 91곳 중 전단보강근이라는 필수 철근을 누락한 단지만 15곳이다(LH ‘순살 아파트’ 속출… 15개 단지서 무더기 ‘철근 누락’). 6곳 중 1곳을 순살로 지은 것인데 이들 아파트 3곳 중 1곳꼴로 이미 사람이 살고 있다. 아찔한 일이다. 그중 하나인 경기 남양주 별내신도시 신혼희망타운 아파트는 지난해 4월 약 400가구가 입주한 단지다. 사람과 자동차가 숱하게 지나다녔을 바닥이 1년 넘도록 주저앉지 않은 건 천운에 가깝다

국토부와 LH는 순살 아파트 조사 내용을 일요일인 전날 오후 늦게 부랴부랴 발표했다. 앞서 별내 사례가 세간에 드러나지 않았다면, 주말 동안 그 문제로 떠들썩해지지 않았다면 이렇게 서둘러 이실직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별내 순살 아파트 문제는 LH가 스스로 밝힌 게 아니라 아파트 측이 단지에 붙인 안내문 한 장 때문에 들통났다. LH는 인천 검단신도시 LH 아파트 주차장 붕괴 이후 몸을 낮추고 사고 책임에서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래도 만에 하나 사고가 날까 봐 신경은 쓰였는지 다른 LH 아파트들을 대상으로 남몰래 점검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LH는 지난 28일 별내 사례가 알려졌을 때 “(검단과 달리) 이번에는 설계에 오류가 없었다”며 시공사와 감리회사 탓을 했다. 그날 LH 관계자는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는 도면에는 이상 없다는 게 저희 입장”이라며 “시공 과정에서 (철근이) 빠진 걸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했는지 “지금까지 파악된 걸로는”이라고 거듭 전제를 달았다. 시공사는 “발주처가 준 설계대로 지었을 뿐”이라며 LH에 맞서고 있었다.

별내 아파트는 LH 말대로 도면에 보강근이 제대로 그려져 있었지만 설계 오류 사례는 다른 곳에 수두룩했다. 이번에 적발된 15개 부실 단지 중 10곳이 애초 설계서에 보강근이 빠져 있는 아파트였다. LH가 시공사에 “이대로 지으라”며 넘겨준 도면 자체가 엉터리였다는 얘기다. ‘순살 자이’라는 오명을 쓴 검단 아파트도 그런 사례였다.

LH가 설계 오류냐 아니냐를 놓고 시공사와 진실공방을 벌이다시피 한 것은 그 여부로 책임 소재가 크게 갈리기 때문이다. LH는 시공과 마찬가지로 설계 역시 외주를 주지만 그 설계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할 책임이 있다. 설계는 어디까지나 건축주 소관이다. 검단 아파트 붕괴의 1차 원인이 설계 오류인 사실이 드러났을 때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이 정도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할 정도라면 검단만 문제일 리 없다. LH 아파트를 전부 확인해봐야 한다”고 했었다.

LH는 순살 아파트 중 이미 입주한 단지에는 ‘긴급 보강공사’라며 철근을 추가로 넣겠다지만 미봉책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이 정도 땜질로 충분하다면 5500억원을 쏟아붓는 GS건설의 검단 아파트 전면 재시공은 낭비라는 얘기 아닌가. 검단 재시공이 필요한 조치라면 이번에 적발된 15개 아파트 모두 허물고 새로 지어야 옳다.

LH 부실 아파트는 발주·설계·시공·감리 중 어느 단계에 과실이 있든 모두 발주처이자 감독자여야 할 LH 책임이다. 검단 사고가 설계·시공·감리의 총체적 부실 때문이었다는 조사위원회의 결론은 LH의 일 처리가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일갈로 들어야 하지만 LH는 “다 같이 잘못했다”는 뜻으로만 해석했다. 민간 기업들은 이번에도 LH가 내부의 곪은 부분을 찾아내기보다 건축사사무소, 시공사, 감리사 같은 외주사에 책임을 떠넘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한준 LH 사장은 전날 전단보강근 누락 사실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그동안 LH는 주택에 대해서 발주만 했지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집을 짓는 공공기관의 수장이 이걸 변명이라고 하는가. ‘일을 맡은 업체들이 이렇게 엉망으로 할지 몰랐다’는 의미를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LH의 무책임한 태도만 재확인시킬 뿐이다. 이 사장 말대로라면 LH는 존재 이유가 없다. 이런 생각으로 일했던 실무자도, 수장도 옷을 벗어야 한다.

발주만 하고 관심이 없었다면 지하주차장만 문제일 리 없다. LH 아파트 곳곳을 샅샅이 조사해야 한다. 민간 기업은 아파트 한 동을 잘못 짓고 회사가 휘청거리는데 최소 15개 단지를 엉터리로 지은 LH의 말과 표정에서는 그 정도 위기감이나 책임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입주민 재산권 보호를 앞세워 철근 누락 아파트 이름을 거론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는 게 지금의 LH다. 정부가 제대로 된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면 LH라는 조직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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