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관심없는 대학생, 이렇게 가르치니 달라졌다는 교수

이혁진 2023. 7. 31. 16: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장] 북한 출신 주승현 작가 <조난자들> 북토크

[이혁진 기자]

지난 28일 서울 신촌 히브루스에서 열린 주승현 작가의 <조난자들>(2018, 생각의힘)> 북토크 현장을 찾았다. 사단법인 한반도평화연구원은 지난해 '북에서 온 작가들의 책' 30권을 추천·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이중 8명의 작가를 선정해 책 내용과 작가 인생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북에서 온 작가들' 북토크를 계속해 진행하고 있다.

올해 '2023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지원사업'으로 선정된 북토크 프로그램은 12월 말까지 진행되며, 이번 주승현 작가 북토크는 그 세 번째 시간이다.   
   
군인 부모 아래 나고 자란 탈북 군인의 이야기 
    
 주승현 작가(오른쪽)와 정성철 명지대교수
ⓒ 이혁진
이날 북토크 사회를 맡은 정성철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책 <조난자들(부제: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들에 관하여)>에 대해 "이 책만큼 분단의 현실을 체감할 수 있는 책도 드물다. 책을 통해 탈북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본다"며 작가를 소개하고 대담을 이어갔다.  

주승현(42) 작가는 20대 초반 개성 가까운 비무장지대에서 군복무 중 휴전선을 넘어 탈북했다. 군인(공군)인 부모 밑에서 자라 통일과 분단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함흥이 고향인 주 작가는 연세대 통일학 석·박사를 거쳐, 현재 부산의 고신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써낸 책 <조난자들>은 작가 개인의 탈북을 시작으로 남한에서의 삶과 환경을 포함, 해방 이후 최근까지 탈북한 인물들을 조명하고 있다. 분단체제하 탈북인들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조난자라 정의하고 이들을 통해 분단의 현실을 진단하고 있다. 조난자(遭難者)의 사전적 의미는 '항해나 등산 따위를 하는 도중에 재난을 만난 사람'을 뜻한다.   
     
주 작가는 처음 출판사 측 제의를 받고 당황했다고 한다. 탈북인의 스토리가 궁금한 출판사 의도와 개인사를 상세히 밝히기를 꺼리는 자신의 성정이 서로 충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 오랜 세월에 걸쳐 상처 입은 삶을 산 탈북인들을 발굴함으로써, 그는 개인사를 써야하는 심적 부담을 극복했다.      

개성 비무장지대에서 대남방송요원으로 근무한 주 작가는 "분단은 자신과 필연적"이라 말했다. 분단이라는 사선(死線)을 넘어왔지만 상상이나 기대와 달리 반대의 삶을 살게 됐으며, 스스로를 조난자라 생각하는 탈북인들도 많이 만났다고 했다. 그는 "분단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 모두가 조난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분단은 탈북민과 비탈북민을 구분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으며, 특히 탈북자라는 신분은 차별을 원천적으로 내재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탈북민 관련 두 사건을 상기시켰다. 지난 2019년, 서울 관악구에서 굶어 숨진 '봉천동 모자 기아사건' 중 어머니는 주 작가 자신과 고향·나이가 모두 같은 탈북인이었으며, 이들이 살아온 한국에서의 힘든 삶을 고려할 때 이를 단순한 '아사사건'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하나는 작년에 한국사회에서 나름 성공했던 탈북여성이, 임대아파트에서 백골상태로 발견됐던 사건이다(관련 기사: 통일부, 백골로 발견된 탈북여성 관련 "시스템 재점검" https://omn.kr/21btq ).

주 작가에 있어 이는 고립된 탈북인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고 한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다수 탈북자들이 위와 같은 사선(死線)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MZ세대 눈높이 맞는 '새로운 통일 교육'해야
    
 주승현 작가
ⓒ 이혁진
주 작가에 따르면, 그가 한국에 넘어왔던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탈북인에 대한 인식과 위상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국정원의 탈북인을 대하는 고압적인 자세도 사라지고 탈북인을 지원하는 관련 정부시스템도 어느 정도 완비됐다고.

남한사회에 잘 안착해 다른 탈북인의 롤모델이 되고, 한국에서 태어난 MZ세대 못지않게 훌륭한 탈북인 인재들도 많아졌다. 작가는 이러한 사례들이 탈북인들에게 고무적이며 궁극적으로 북한인권 신장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또한 책에서 말하는 '조난자'들을 줄이는 토양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  
   
다만, 주 작가는 남북의 분단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형적인 상태라며 이것이 지속되는 한 '희생양'을 만드는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수근 위장간첩사건'을 그 일례로 들었다.

이수근 사건은 1967년 전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이수근씨가 위장 귀순한 간첩 혐의를 받고 1969년 7월 사형당한 사건이다. 이후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과거 중앙정보부가 이씨를 위장간첩으로 조작한 사실을 밝혀냈으며, 법원은 2018년 10월 이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한편 주 작가는 한국에 와서 탈북인 교수로서 탈북인들의 힘든 삶과 사선을 살피는 것도 자신의 사명감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출신자로서의 새로운 통일담론 제기도 역할 중 하나라고 그는 설명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성장이 거의 멈춘 가운데, 민족 간 통일이 그 대안과 옵션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통일교육이다. 통일의 당위성과 필요성이 그간 기성세대와 국가위주 교육으로 진행돼 통일인식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통일담론에서 빠지지 않는 동일민족과 이산가족문제도 이제는 그 효용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시대가 변했다는 것이다.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물론 요즘 MZ세대의 무관심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교수인 주 작가는 과거 캐캐묵은 통일담론을 수정하고 MZ세대에 맞춘 통일교육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거대한 통일담론보다, 남북한 실리위주의 비교우위내용으로 대학 커리큘럼을 짜 가르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 학생들의 통일에 대한 인식도 처음엔 부정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요컨대, 북한이 싫어하더라도 대한민국이 통일을 주도하는 환경을 서서히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김여정이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고 한 이유

북토크 뒤 여러 질문이 나왔다. 단순하지만 질문에 내재된 의미는 상당했다. 과거와 달리 탈북민 지원체계가 대폭 개선되고, 현재의 남북상황을 고려하면 민간협력과 지원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조난된 삶보다는 탈북민 스스로 자생력을 키우는 이민자의 삶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제시돼 눈길을 끌었다.

이에 대해 작가는 탈북인 환경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을 인정하면서도, 탈북자의 다양한 삶과 배경을 고려해 탈북에만 복속시키지 말고 널리 포용하는 사회를 기대한다고 답했다.  
   
이날 질문들 중에는 최근 언론에 보도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대한민국 호칭' 언급에 대한 질의도 있었다. 이에 대해 작가의 답은 뭐였을까. 그는 김 부부장이 공식적인 용어인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 표현한 것은 영구 분단의 의도라기 보다는, 그가 해온 거친 막말들 중의 하나일 뿐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북한 인권 문제도 제기됐다. 주 작가는 보수와 진보 모두 인권은 평등하고 그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진보진영이 북한인권에 침묵하는 것은 잘못이라 주장했다. 주 작가는 분단 독일이 통일하는 과정에서, 서독 정권이 바뀌었어도 동독체제 주민들의 인권만큼은 가장 소중한 가치로 견지하고 담론을 유지했던 부분에 대한민국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북토크 말미, 작가가 '자유'를 느낄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그는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라 답했다. 이는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 마실 수 있고 음미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뜻이지만, 북한에서의 커피는 그런 자유마저 보장할 수 없다는 의미로도 읽혔다.

주 작가는 현재 교수라는 자신의 직업이야말로 북한 사회에서의 '교수'와는 전혀 다른 삶이라고 할 수 있다며,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자신은 죄책감이 들 정도로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천신만고 끝에 대한민국을 찾은 탈북민들이 남한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회에 정착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국가 미래와 통일을 견지하는 데 있어 '비주류'인 탈북민의 관점과 생각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조난자로 살아갈 가능성이 큰 탈북민에 대한 이해와 따뜻한 시선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조난자들'을 줄이려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분단 극복을 앞당기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위 내용은 제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