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구리시립합창단 공연이 가져온 ‘나비효과’…노래는 죄가 없다

이도환 2023. 7. 31. 16:4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 선곡 제외, 권봉수 구리시의회의장이 분노한 이유는…
구리문화재단 홈페이지에 게시된 구리시립합창단 콘서트 프로그램.ⓒ

‘노래’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서민들의 애환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면에서 결코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대 중국의 주나라에는 ‘채시관(采詩官)’이라는 관리가 있을 정도였다. ‘채시관’은 글자 그대로 ‘시(노래)를 채집하는 관리’를 뜻한다. 서민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채집해 기록으로 남기고 이를 상부에 보고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채시관이 각 지역을 다니며 채집한 노래는 그 지역의 민심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기록을 편집한 책이 ‘시경(詩經)’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을 정도로 이들이 채집한 노래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여겨졌다.

지난 27일 오전 11시 30분, 구리아트홀 유채꽃소극장에서는 구리시립합창단의 콘서트가 열렸다. ‘7080 갬성콘서트’라는 부제를 달고 열린 이날 콘서트는 시민들을 위해 무료로 진행되었는데 그 시작부터 매우 이례적으로(?) 시끌벅적했다고 전해진다.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소극장을 찾았던 권봉수 구리시의회의장이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공연 관계자들을 불러 큰 소리로 불만을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평소 과묵하고 온화한 것으로 유명했던 권 의장이 ‘문화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분노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가 가져온 논란

자세한 전후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27일 오전 10시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날 콘서트를 알리는 홍보물은 구리문화재단 홈페이지에 이미 게시된 상태였다. 관심이 있는 시민들은 이 홍보물을 통해 이날 공연에 총 7곡의 노래가 준비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7곡 중에 마지막 곡으로 준비된 것이 바로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였다는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구리시민들에게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는 매우 친숙한 노래다. 전임 구리시장의 별명처럼 붙은 것이 바로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였기 때문이다. 전임 시장은 행사 때마다 노란샤쓰를 입고 다녔고 홍보물에도 이 문구는 늘 함께 했다. 구리시민들에게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라는 노래는 단순한 가요에 머무는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구리시립합창단의 공연에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가 포함되었다는 소식은 정치 고관여층들의 관심을 얻기에 충분했다. 각종 단체 카톡에 이러한 소식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구리문화재단과 구리아트홀에 전화가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 노래의 선곡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의 항의 전화였다. 시청 민원실에도 같은 내용의 전화가 이어졌다.

구리시립합창단의 업무를 담당하는 단무장이 구리시청의 문화예술과로 달려온 것은 27일 오전 10시였다. 구리시립합창단의 담당 부서가 문화예술과였기 때문이다. 단무장은 앞서 진행된 일들을 문화예술과장에게 전달하고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은지 협조를 요청했다.

문화예술과장으로 부임한 것이 지난 7일이었던 담당 과장은 구리시립합창단의 공연 프로그램을 결정하는 결정권자인 지휘자에게 연락해 프로그램에 이 노래가 들어간 이유를 물었다. 지휘자는 구리시민도 아니었으며 합창단 지휘자로 취임한지 몇 달 되지 않은 상태였다. 앞뒤 설명을 들은 지휘자는 ‘그런 사정이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라며 프로그램을 변경하는 게 좋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구리문화재단에 올라간 프로그램 홍보물에 ‘상기 프로그램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라는 표기가 있음도 상기시켰다.

결국 구리시립합창단의 콘서트에서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를 제외하는 것으로 결정이 난 것이다.

공연을 그대로 강행해도 문제가 될 것이고 이 노래를 제외해도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담당부서 과장과 합창단 관계자들은 ‘제외’를 선택했던 것이다. 당시 이미 시민들은 이 노래를 정치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담당자들은 그런 노래는 선곡하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민간합창단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시립합창단이 정치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공연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콘서트장에 입장하는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던 프로그램 팜플릿은 나눠주지 않기로 했다.

‘문화 탄압, 시장 눈치 보기’ vs. ‘시민 화합 위한 조치’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소극장을 찾은 권봉수 구리시의회의장은 공연 관계자들에게 팜플릿을 달라고 요구했다. 공연 관계자가 잠시 사무실 안으로 가서 전후 사정을 설명하겠다고 말했지만 권 의장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유채꽃소극장 입구 앞 로비에서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가 제외된 이유를 따지며 큰 소리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미 공연에서 그 곡이 제외된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콘서트 시작 시간이 임박해 상황이 종료되었지만 콘서트가 끝난 후 로비에서는 다시 소란이 이어졌다. 권 의장은 ‘시장의 지시가 있었느냐’, ‘이건 문화 탄압’이라며 큰 소리로 공연 관계자들을 40여분 동안 질타했다고 현장에 있었던 시민의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5~10분 정도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가 가져온 소란의 씁쓸한(?) 전후사정이다.

처음부터 부적절한 곡이 선곡되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구리시민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선곡이었다. 호불호가 갈리는 곡이라면 선곡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소란의 여파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사안을 정쟁으로 몰아가려는 시선이 아쉽다. 시민들 앞에서 큰 소리로 소란을 벌인 상황도 그다지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는다. 많은 시민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권 의장 앞에서 호통을 들어야 했던 관계자들의 인격도 배려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일부에서는 지난해 민주노총에 가입한 합창단원들이 시청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협상을 했던 이력을 언급하며 ‘정규직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에 앙심을 품고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노래를 선곡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또한 아쉬운 시선이다.

노동자들이 정규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 합창단원들이 매우 적은 돈을 받으며 합창단을 유지하고 있음을 안다면 이런 비판은 온당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소란은 소란이고 이제는 정리를 할 때이다. 정쟁으로 몰고 가서 판을 키우려는 의도가 있다면 비판 받아야 한다. 합창단원들에 대한 의혹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노래는 죄가 없다. 노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문제일 뿐이다.

“전임 시장이 아니라 현 시장을 떠올리게 만드는 노래가 선곡되었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와 불만이 접수됐다면 선곡에서 배제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마음이지 전임 시장이나 현 시장의 마음이 아니니까요.”

합창단 관계자의 이야기다. 주나라의 채시관이 노래를 채집할 때에도 황제의 마음이 아니라 서민들의 마음을 기준으로 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시경(詩經)’은 지금까지도 그 권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가 자신의 아들에게 물었다. ‘시(詩)를 배웠느냐?’ 아들이 ‘아직 거기까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시(詩)를 배우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를 나눌 수 없다(不學詩 無而言)’” ‘논어(論語)’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